점심시간을 넉넉히 앞둔 11시를 막 지난 시간이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아무도 없는 공간에 저는 마음을 놓은 채 발을 옮겼습니다. 엘리베이터 벽에 머리를 기대자 벽면의 차가운 기운이 뜨겁게 달아오른 머리를 식혀주었습니다. 항상 월요일 아침은 주말 동안 밀려있던 일들로 혼이 나갈 듯이 바쁜 시간입니다. 점심시간 사람들이 몰리기 전에 얼른 근처 카페에서 커피와 토스트를 먹으며 한숨 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는 몇 층 내려가지 않고 주춤하더니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상기된 표정의 두 여직원과 남직원 한 명이 대화를 하느라 앞도 보지 않은 채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몰래 사무실을 빠져나오는 기대감과 설렘으로 이들의 목소리는 잔뜩 높아져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부터였습니다. 저는 이 세명에게 집단 폭행을 당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할 때까지 이들은 저를 멈춤 없이 폭행했습니다. 한 명이 저를 때리는 동안 남은 두 명은 이를 지켜보고 있기도 했고, 세명이 동시에 저를 때리기도 했습니다. 갇힌 공간에서 저는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습니다. 엘리베이터 구석에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눈을 꼭 감은채 이 폭행이 끝나기를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1층에서 문이 열리고 이들은 큰 목소리로 웃으며 건물 밖으로 사라졌습니다. 저는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와 비틀거리며 지하주차장으로 계단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이 상태로는 도저히 점심을 먹으러 갈 수 없었습니다. 지하 주차장에 주차된 제 차를 찾아 들어가 어둠 속에서 천천히 제 상처가 아물기를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벌써 이번 달에만 세 번째 당한 엘리베이터에서의 집단폭행입니다.
대낮에 서울시내 건물에서 벌어진 집단폭행 이라니 왜 저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못했을까요? 그건 그 폭행이 저만 느끼는 폭행이기 때문입니다. 주먹으로 발로 상대를 때리는 것이 여러분들이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폭행이지요. 하지만 저에게는 저만 느끼는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 있습니다. 바로 소음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소리에 아주 예민했습니다. 이른 아침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하는 어머니의 도마 소리, 밥솥에서 뿜어 나오는 증기 소리를 여러분들은 따뜻한 아침의 소리로 추억하실 겁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그런 소리들이 뒤통수를 후려치는 고통이었습니다. 길을 걷다 덮쳐오는 오토바이의 귀를 찢는 배기음 소리, 카페에서 높은 톤으로 깔깔대며 박장대소하는 아주머니들의 웃음소리, 핸드폰 매장에서 손님을 끌기 위해 길거리를 향해 크게 틀어 놓은 최신가요 들은 저에게 단순히 불쾌함을 넘어 눈앞이 캄캄해지는 통증을 안겨줍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니까 저도 소음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름 적응하기 위해 애써왔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는 가급적 피하고 소음을 줄여주는 여러 도구들을 사용해왔습니다. 지금은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있는 이어폰을 많이들 사용하지요. 저는 10년 전부터 당시 돈 많은 비즈니스 맨들이나 사용하던 고가의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100만 원 가까이 주고 사용해 왔습니다. 지하철에서 사람이 적은 칸을 찾는 능력과 덜 붐비는 시간대와 장소의 카페를 찾아내는 능력은 친구들이 감탄할 정도랍니다.
하지만 이번처럼 엘리베이터와 같이 갇힌 공간에서 갑작스레 닥친 소음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할 수가 없습니다. 세명의 직장인들이 깔깔대며 나누는 대화를, 저에게는 폭력을, 어쩔 수 없이 눈을 질끈 감고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밖에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저는 지하주차장의 어둠과 적막 속에서 온몸의 긴장과 통증이 누그러질 때까지 스스로 치료의 시간을 갖곤 합니다. 저에게 보이지 않은 폭행을 한 그 세 명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남들보다 예민한 저 때문에 그들에게 엘리베이터에서 침묵을 강요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강요이자 폭력일 수 있으니까요.
세상에는 저와 같이 소리에 예민한 사람들이 소수이지만 살아가고 있습니다. 청각이 예민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소리를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고, 같은 소리라도 뇌에서 더 크게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보통 소리에 짜증이나 불쾌감이 생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저와 같이 두통, 아득함, 구역감 등의 통증이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치료를 받는 정신과 의사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저와 같은 사람들은 신경전달물질, 그중에서도 도파민의 분비가 과다한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 도파민의 양을 조절해주는 약을 복용하면 예민함의 증상이 완화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저의 예민함이 원망스러울 때가 많았습니다. 저도 사람들로 꽉 찬 스포츠 경기장이나 콘서트장의 함성을 고통이 아닌 희열로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소중한 사람들과 유명한 맛집을 찾아다니며 벅적거림 속에서도 맛있다고 맞장구 쳐보고 싶었습니다. 온몸을 뒤흔드는 음악 속에서 춤을 추는 일탈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도 아쉬움이지만 무엇보다 저의 이런 예민함을 아는 사람들이 저 때문에 눈치 보는 것이 더 힘든 점이었습니다. 친구들과 약속 장소를 잡을 때마다 다들 제가 힘들어할까 봐 눈치를 보게 되더군요. 저를 신경 써주는 친구들이 고마우면서도 많이 미안했습니다.
"너랑은 이렇게 조용히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아"
어느 날 제 친구가 말했습니다. 웬만한 식당들은 저녁에 붐비기 마련이라 친구와 저는 호텔 조식을 먹으며 오랜만에 만나던 참이었습니다. 저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난 친구가 제가 미안해할까 봐 배려해서 하는 말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이야. 너랑 이렇게 조용한 아침에 여유롭게 만날 수 있어서 좋아. 난 너랑 만나면 더 솔직하게 되는 것 같아.”
친구의 말처럼 우리는 한 시간 남짓한 아침식사 동안 근황과 고민을 깊게 나눌 수 있었습니다. 따스한 햇볕이 테이블 위에 가득 펼쳐진 채 딸그락 거리는 접시 소리마저 차분하게 느껴지는 아침이었습니다. 평온하고 따뜻한 시간, 우리는 주변의 소음에 방해받지 않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평안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저는 시끄러운 소음을 피하기 위해 사람들과 이런 식의 조용한 만남을 자주 가져왔습니다. 오늘처럼 호텔에서 아침을 같이 먹기도 하고, 단둘이 조용히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별실이 있는 식당을 주로 이용했습니다. 날씨가 괜찮을 때에는 한강이나 공원에서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함께 걸으며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런 식의 만남에 대해 사람들은 처음에는 오해를 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성과 만날 때에는 왠지 폐쇄된 공간에서 단둘 이만 만나려는 제가 뭔가 사심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닌지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하지만 제가 이유를 정중히 설명드리고 한번 그렇게 조용한 만남을 가지고 나면 대부분 상대방은 이해를 잘해주셨습니다. 오히려 저와의 만남에 대해 더 긍정적으로 생각해주시고 다음번 만남을 기꺼이 약속해 주셨습니다.
고요한 대화는 서로에게 더 솔직한 마음을 열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가끔 의아하게 생각했던 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저와 대화하다가 눈물을 흘리시는 분들이 많다는 점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 근황을 나누다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시는데, 제가 무슨 잘못을 한 건지 많이 당황스러웠습니다. 눈물을 닦으며 민망한 표정으로 왜 사람을 울리냐고 핀잔을 주시는데, 전 그저 듣고 끄덕이기만 했었거든요. 이런 경우가 여러 번 있어서 왜 그럴까 고민을 했었는데, 그건 고요한 대화의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주변에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상대방에게만 집중하게 되면 서로 더 솔직하게 되고 깊은 감정까지 나눌 수 있게 되는 것, 그것이 고요한 대화의 힘인 것 같습니다. 저의 약점을 가리기 위한 저만의 방법이 오히려 남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진실한 교류를 하게 해 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송년회 모임을 잡기 위해 단체 카톡창이 분주해지는 연말입니다. 저는 일찌감치 일이 바빠서 참석 못한다고 메시지를 남겨놓아 사람들이 저 때문에 어디서 만나야 할지 고민 안 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저도 저 나름의 송년회 모임으로 바쁜 연말이 될 것 같습니다. 20년 지기 친구와는 조용한 카페에서 아침을 함께 하기로 했고 한해 고마웠던 비즈니스 파트너 분과는 점심때 여의도 공원을 함께 산책하기로 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직장동료와는 폐점시간이 가까운 한적한 서점에서 서로 책 선물을 골라주기로 했고 사랑하는 사람과는 호캉스를 하며 오래전 추억의 영화를 함께 보기로 했습니다.
예민한 사람이지만 저도 나름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왁자지껄하고 활기찬 삶은 아니지만 고요하고 깊은 삶을 사람들과 나누며 나름 저만의 즐거움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를 위해 즐거운 대화를 멈추거나 흥겨운 음악을 줄일 필요는 없습니다. 저를 위해 아이의 울음소리를 멈추게 하거나 한여름 목청껏 울어대는 매미를 다 잡아버릴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가끔 세상에 저 같은 예민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