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단골손님입니다

by 이남우

저의 주말은 평일보다 더 규칙적입니다. 늦잠을 자고 느지막이 시작하는 하루이지만 정해진 순서의 일과가 있습니다. 먼저 창가로 쏟아지는 햇볕에 눈이 부셔 저절로 눈이 떠지는 시간에 일어납니다. 그리고 부스스한 모습으로 양치질만 한채 비몽사몽 동네 헬스클럽으로 향합니다. 혼자 사는 연예인들이 나오는 예능프로의 재방송을 보며 등이 축축해질 때까지 러닝머신 위를 달리고 상쾌한 샤워로 온몸을 깨웁니다. 이제 주말을 제대로 보낼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아직 머리가 덜 마른 상태로 신간 소설 한 권을 들고 집 근처 커피숍으로 향합니다. 유명한 프랜차이즈 커피숍이지만 테이블이 열개가 되지 않는 소담한 가게입니다. 가게 앞에는 이차선 도로를 마주하는 작은 테라스 좌석도 있습니다. 봄가을에는 벚꽃과 단풍이 테라스 위로 우거져 계절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따뜻한 커피와 고소한 머핀을 먹으며 한 시간 남짓 책을 읽는 것이 저의 주말 일과 중 하나입니다.


제가 이 동네에 이사오고부터 거의 매주말을 이렇게 보냈으니 이제 이 가게가 저한테는 꽤나 익숙합니다. 집과 회사 다음으로 익숙한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항상 서글서글한 인상에 단정하게 머리를 망으로 묶은 매니저분은 오 년 전 처음 가게를 찾았을 때만 해도 어시 매니저셨는데 이제 스토어 매니저로 매장을 노련하게 책임지고 계십니다. 교대로 일하는 네다섯 명의 바리스타분들도 매니저분의 인덕 때문인지 지난 오 년간 거의 바뀌지 않았습니다. 번화가가 아닌 주거지역 근처에 위치해서인지 손님들도 낯이 익은 분들이 많습니다.



이 정도 익숙함이면 나름 전 이 가게에 단골인 셈입니다. 개인이 운영하는 동네 커피숍도 아니고 프랜차이즈 커피숍인데 단골이 어딨겠냐만 싶지만 나름 여기 직원분들도 저를 단골로 알아봐 주는 것 같습니다. 카운터 앞에서 주고받은 인사에는 의례적이지 않은 반가움이 느껴지고 명절이나 연휴에는 몇 마디 안부 인사를 더하게 됩니다. 가끔 마카롱 한두 개나 새로 나온 베이커리 메뉴를 공짜로 챙겨주시기도 합니다. 매니저님도 저 못지않게 수줍음 많은 성격이신지 오랜 대화를 나누지는 못하지만, 가게를 들고나갈 때 인사 한마디 더 나누려 서로 신경 쓰는 것도 느껴집니다.


단골이 된다는 것, 왠지 모르게 뿌듯한 일입니다. 가게 주인 입장에서도 단골손님은 가게 운영에 아주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일단 단골은 가게의 안정적인 수입을 유지하는데 큰 기여를 합니다. 새로운 손님 한 명을 가게로 유인하기 위해 들어가는 마케팅 및 홍보 비용은 기존 고객 한 명을 유지하는 비용에 비해 다섯 배에서 스무 배까지 더 높다고 합니다. 많은 비용을 들여 손님 한 명을 새로 유치하는 것보다 단골손님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훨씬 수익이 높습니다. 세계적인 경영 컨설팅사인 베인 앤 컴퍼니의 연구에 따르면 기존 고객을 5퍼센트만 유지해도 수익은 25퍼센트에서 95퍼센트까지 높아질 수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홈플러스가 자사의 온라인몰 고객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단골고객의 구매빈도는 평균적인 고객보다 22퍼센트 높았고 한번 구매할 때의 금액도 25퍼센트 높았다고 합니다. 이 정도 근거라면 가게 주인이 단골손님에게 최대한의 친절을 베풀고자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겠네요. 그러고 보니 저도 이 커피숍의 최고 등급인 VVIP 멤버십 레벨을 유지한 지 3년째입니다. 매년 120잔의 커피를 마셔야 주어지는 멤버십 레벨인데, 올해는 반년만에 벌써 그 기준을 충족시켰습니다. 저도 몰랐는데 올해는 거의 하루에 한 번씩 이 가게를 찾고 있었던 격이네요.


가게 주인 입장에서 단골손님이 소중한 이유는 수익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단골손님에 들어가는 감정노동의 수고가 일반 손님에 비해 월등히 적다고 합니다. 커피숍에서의 감정노동이라고 하면 뭐 특별한 게 있을까 싶지만, 자영업자 분들이 경험하는 감정노동의 수고는 정말 어마어마하다고 합니다. 저야 사무실에서 비슷비슷한 회사원들하고 일하느라 잘 느끼지 못하지만, 가게를 찾는 손님들 중에는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컴플레인을 하는 손님은 다반사이고 주문도 안 하면서 주인에게 욕설과 폭력을 행사하는 비정상적인 손님들도 꽤나 있다고 합니다. 얼마 전 커피숍에서 파마 연습을 한 미용사 손님들의 이야기가 뉴스에 보도되기도 했었죠. 커피 한잔 시켜놓고 몇 시간씩 자리를 차지하는 카공족들은 이상한 손님 축에도 들지 않습니다. 제 단골 커피숍에서도 이상한 손님을 직접 목격한 적이 많습니다. 주말마다 닭강정을 싸들고 와서 냄새를 풍기며 먹는 대학생이 있는가 하면 아이들을 서녀명 데려와서 앉혀놓고 몇 시간 동안 아이들을 방치한채 볼일을 보러 가는 아주머니도 있습니다. 저녁시간에는 술에 거나하게 취한 아저씨들이 들어와 커피가 너무 쓰다고 왜 오래된 커피를 쓰냐며 행패를 부리는 모습도 종종 목격합니다. 이런 진상 손님들을 경험하는 가게 주인 입장에서 단골손님들은 천사 같은 존재들이겠네요.


한 번은 저도 보다 못해 진상 손님에게 쓴소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손님은 쿠팡 이츠 같은 앱으로 배달대행을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아침에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커피숍 테이블을 베이스캠프 삼아 배달을 갔다 왔다 하시더군요.. 그분이 놓아둔 커피잔 때문에 그분이 배달을 나간 동안에도 그 테이블은 아무도 앉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카페에 사람이 붐벼도 덩그러니 놓여있는 커피잔 때문에 비어있는 테이블을 보고 있자니 저도 짜증이 폭발했습니다. 저는 그분이 배달을 나간 사이에 그 커피잔을 치워버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그 자리에 앉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삼십 분쯤 지나자 그분이 돌아오시더군요. 저에게 여기 있던 커피 못 봤냐며 화를 내시기에 전 바로 사과를 하고 자리를 비워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두고 간 것과 같은 아이스커피 세 잔을 사서 테이블에 놓아드리며 말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전 자리를 아예 비우신 줄 알았어요. 앞으로 더 계실 거면 이 정도는 드셔야 염치가 있으실 거 같아서 제가 샀습니다.”


얼굴을 붉히지만 아무 말 못 하던 그분은 다음 배달을 나가신 뒤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소심하기로 유명한 제가 이렇게 용기를 낸 이유는 그 진상 손님에 대한 짜증이 커서였기도 했지만 제가 이 공간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입니다. 가게 주인의 입장에서 단골손님이 소중한 만큼, 단골손님도 가게가 소중합니다. 제 단골 커피숍은 그 동네에 있는 여러 커피숍 중에 가장 맛있는 커피를 파는 곳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행복한 주말을 보내는 루틴의 일부가 된 장소입니다. 만약 제 주말 루틴이 다 똑같고 장소만 다른 커피숍이라고 한다면, 전 지금 누리고 있는 행복만큼을 느끼지 못할 것 같습니다. 과하지 않고 진심이 담긴 반가움이 느껴지는 인사, 바리스타들이 소곤소곤 나누는 대화에서 느껴지는 훈훈한 분위기, 그 장소와 방향에서만 느낄 수 있는 햇볕의 따스함과 포근함, 탁월하지는 않지만 늘 한결같은 커피의 맛, 데워낸 머핀에서 풍겨오는 고소함, 이 모든 것들의 조화가 제가 그 커피숍을 특별하게 느끼게 만듭니다. 그리고 지난 오 년간 그 장소에 익숙해진 저와 저를 익숙하게 느끼는 매니저님과의 일종의 신뢰 같은 것이 저로 하여금 특별한 감정을 가지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단골가게는 쉽게 대체될 수 없는 곳 같습니다.


올해 초 제가 오랫동안 드나들었던 단골 만화방이 폐업했습니다. 놀숲, 벌툰 등 프랜차이즈 만화방이 들어오기 전부터 영업을 해오던 나름 현대식 카페 분위기의 만화방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코로나의 파도를 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사장님의 얼굴에서 그늘이 지기 시작하고 책꽂이에 신간만화가 채워지지 않는 것을 보면서 전 슬슬 슬픈 예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감정은 마치 마음이 멀어지는 연인으로부터 헤어짐을 예감하는 감정과 비슷했습니다. 설마 아니겠지 라는 의미 없는 바람과 부정할 수 없는 이별의 신호들을 느끼던 날들이 지나고 정말 벼락같이 이별은 찾아왔습니다. 주변에는 단골 만화방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만화방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곳도 단골 만화방의 빈자리를 채울 수 없더군요. 일요일 오후에 라면과 만화로 보내던 제 루틴은 단골 만화방의 폐업과 함께 그대로 사라져 오랫동안 휑하게 빈 시간으로 유지되었습니다. 이별한 애인의 빈자리를 쉽게 매울 수 없는 것처럼 단골손님에게 단골가게는 대체할 수 없는 특별한 존재인 것 같습니다.


나에게 단골가게가 있다는 것은 일상 속에서 특별함을 느끼고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나만의 루틴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단골가게라서 서비스를 더 받고 특별 할인을 받는 그런 특별함이 아니라, 이 가게를 찾으면 나의 하루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스위치가 켜지는 듯한 특별함입니다. 여러분은 누군가의 단골손님인가요? 전 오늘도 단골 커피숍을 찾습니다. 그곳에는 따뜻한 커피와 고소한 머핀과 그리고 단골만이 느끼는 소중한 행복이 있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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