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연은 대학교 2학년때 마케팅 동호회에서 만나 군입대 직전까지 사귀었던 사이다. 커플링을 처음 해봤고 커플통장을 만들어 신촌골목을 헤집고 다니며 알콩달콩 데이트를 했다. 싸이월드에 커플 일기장을 만들어 데이트 사진을 올리고 부모님께 거짓말하고 석모도에서 외박을 했던 사이다.
연아는 내가 첫직장 입사동기로 신입사원 연수원에서 처음 만나 삼년간 남들몰래 사내연애를 했던 사이다. 여의도 내 자취방에는 우리의 칫솔이 나란히 컵에 꽂혀 있었고 퇴근하고나면 간이 심심한 그녀의 요리에 맥주를 마시며 직장상사들을 욕하곤 했다.
일년에 한번 호텔에서 열리는 외국계기업 경영인의 밤에서 그녀들을 그것도 동시에 마주치게 될지는 상상도 못했었다. 같은 테이블에 나란히 앉은 그녀들은 서로 명함을 주고 받았고 두시간동안 이어지는 만찬에서 함께 와인잔을 마주치며 네트워킹을 하더니 서로 언니 동생이라 칭하며 저녁약속을 잡고 있었다.
그녀들을 피해 구석진 테이블에서 알수없이 초초해하는 나에게 행사장 진행연단에서 미연이 눈짓으로 아는척을 했다. 미연은 작년 이 모임에서 만나 와인을 나눠마시고 그날밤을 그 호텔에서 함께 보내었던 사이다.
난 초조하게 만지작대던 와인잔을 벌컥 비우며 생각했다. 다음에는 이 업계를 떠나던가 아니면 외국인과 사귀어야겠다고. 아, 독일여자와 미국동부 출신 여자는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