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비주류?

알코올류? 비알코올류?

by 나무향기

알코올은 비알코올의 세계를 잘 몰랐다. 단지 알코올을 사랑해 주는 알코올류의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알코올은 비알코올의 존재조차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랬다. 내가 그랬다. 내가 주류였을 땐 비주류의 삶을 알 수 없었다. 비주류가 되고 나서야 비주류의 세상이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주류 시절의 삶은 어렸을 때다. 딱 국민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12년의 삶을 주류로 살았다. 내가 주류일 땐 난 사실 주류 인지도 몰랐는데, 비주류가 되고 나서야 내가 주류의 삶을 살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참 세상이 불공평한 게, 아니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참 불공평했던 게, 당시 교육은 성적과 등수가 최고였다. 지금은 많이 나아져 그렇진 않지만, 내가 어렸을 땐 공부만 잘하면 쉽게 선생님들의 이쁨을 받고, 쉽게 모든 특혜를 누리게 되고, 쉽게도 정상의 짜릿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난 너무나 쉽게 세상의 온갖 단맛을 그때 다 보았다.


그래서 난 아주 오랫동안 정말 내가 잘 난 줄 착각하며 살았다. 선생님도 아이들도, 나를 정말 대단한 사람으로 취급해 준 탓에 난 무서울 것도 없고, 아주 잘 난 인간인 줄 착각하며 오랜 기간을 보냈다.


그나마 그것이 가능했던 것도 내가 지방, 지방 중에서도 시골인 안동에 살았기 때문인데 대학에 입학해 서울로 올라가면서 나의 주류 인생은 막을 내렸다.


주류들은 약간의 알코올 기를 당연히 가지고 있다. 알딸딸하면서도 뭔가 다 잘 되고 있는 듯한 허황된 착각. 술이 주는 붕 뜨는 느낌. 그런 알코올기가 주류들에겐 있다. 나도 그 알딸딸한 알코올기 속에서 12년의 주류 생활을 보냈다. 실상은 아무것도 아니면서 내가 뭔가 대단한 듯한, 취기가 올라오면서 자신감도 생기고 안 하던 짓까지 해보일 수 있는 당당함이 주류들에겐 있다.


하지만 술이 깨면 머리만 아프고 속이 쓰려 오바이트를 해야 하는 것처럼, 주류에서 벗어나 비주류가 되어 알코올성이 떨어졌을 때, 난 참혹한 현실로 내동댕이쳐졌다. 날 우러러보던 이들이 싸늘하게 식은 눈으로 날 홀대하고, 알코올기 하나 없는 비주류가 된 나는 처참이 구석에 쳐 박혀야만 했다. 그랬다. 내가 비주류의 세계로 접어들고, 아무런 존재감 없는 사람이 되었을 때의 느낌은 술에서 깨어나 두통과 메스꺼움에 고통스러운, 감당하기 힘든 느낌이었다.


처음 맛보는 비주류의 고통은 꽤나 컸다. 하지만 내가 비주류임을 깨닫게 되었을 때 난 존재감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그냥 비주류로 남기로 했다. 그게 뭔가 마음 편하고, 더 이상 주목받지 않아도 된다는 약간의 안도감(?)까지 들었다. 날 바라보는 사람이 없으니 타인이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와 진 것도 있었다.


그래서 세상을 보는 방식이 달라졌다. 비주류가 되고 보니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흔하디 흔한 안개꽃에 둘러싸인 장미 꽃다발을 볼 때면 이젠 장미꽃 보단 안개꽃에 눈이 간다. 멋지게 노래를 부르는 조수미 뒤에 열심히 소리 죽여 반주하는 반주자가 누군지 궁금해졌다. 현란한 아이돌을 장식해 주는 백댄서들이 누군가 궁금해졌고, 오케스트라 협연에서도 피아노를 치는 조성진 보다는 협연에 참여해 저 끝 뒷자리에서 북치는 사람에게 눈이 갔다. 미팅에 참석해서도 활발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무리 보단, 혼자 떨어져 앉아 있는 사람에게 말 걸고 싶어졌다.


내가 비주류가 되고서야 오랫동안 존재해 왔던 비주류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세상이 볶은 땅콩 껍질 비비면 두 조각나듯 그렇게 주류와 비주류가 두 부류로 동강 나 있진 않지만 그래도 난 그 어느 언저리 비주류의 무리에 존재해 있다. 이민 온 사람들은 다 ‘한국사회 부적응자’라고 하던데 그러니 난 비주류일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술을 좋아하지 않는데 잘 된 일이다 싶기도 하다.


주류들이 열심히 달려주고 있어 고맙기도 하고 다행이란 생각도 들지만, 비주류도 함께 있어 주류를 잘 뒷받침해 주고 있으니, 그들의 수고에도 고맙다. 알코올이라 우월하고 비알코올이라 열등하지 않다. 알코올과 비알코올은 다를 뿐이다. 하지만 함께 있어야 삶의 단 맛도 보고, 쓴 맛도 볼 수 있다. 알코올뿐인 세상, 비알코올뿐인 세상은 재미가 없다. 어떤 날은 알코올이 당기기도 하고, 어떤 날은 맨 정신으로 살아야 하는 날도 있는 것처럼 주류도 필요하지만 비주류 없인 살 수 없는 세상이다.


내가 인싸든 아싸든 상관없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인싸든 아싸든 상관없다. 주류이든 비주류이든 알코올류이건 비알코올류이건 나는 나고, 소중한 이들은 소중한 이들이다.


하지만 주류들이 알아줬음 한다. 아싸도 '앗싸!' 할 수 있다. 술 안 먹고도 '앗싸!' 할 수 있는 , 알코올 없이도 흥에 겨울 수 있는 비알코올류야 말로 멋진 사람들이라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드러내지 않았다고 감춰진 게 아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게 아니다. 여전히 존재하는 그들의 삶도 살펴보면 상당히 멋있다.




<사진출처: stocksy.com>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