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고 자란 안동은 양반 도시라고 하지만, 점잖다기보다는 감정표현에 서툰 곳이다. 아무리 좋아도 씨익 웃고 말고, 아무리 슬퍼도 소리 없이 운다. 아무리 반가워도 "왔네." 이 한 마디가 다이고, 아무리 서운해도 "됐다."가 다인, 감정 표현이 너무 자제된 곳이다. 이런 안동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으니 나 역시 그런 사람이 되었다. 마음속으로는 무지 반가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아도 누굴 한 번 안아 준 적도 없고, 너무나 슬퍼서 숨죽여 등을 들썩이며 울어도 엄마는 "고마, 됐다."가 다였다.
이런 내가 서울에 올라가서 받은 문화 충격은 지구별 사람이 외계인을 만났을 때와 맞먹을 것 같다. 사람들은 그리 친하지 않아도 만나면 손을 잡고 팔짝팔짝 뛰었고, 반가움이 얼굴에 차기도 전에 말로 반가움을 다 쏟아부었다. 신기했다. 나의 감정은 1cm/s밖에 안되는데 서울 사람의 감정은 1km/s 까지나 되어 보였다. 나는 이제 마음에 반가움이 차오르고, 얼굴에 반가움이 묻어나려 할 때, 서울 사람들은 반갑다며 발을 동동 구르고, 서로 얼싸안았다.
아무리 반가워도 "왔네."가 다인 안동에서 자란 나는 스카이 콩콩이라도 탄 것 마냥 폴짝폴짝 뛰는 사람들을 보면 어색해서 숨어버리고 싶었다. 내겐 익숙하지 못한 반가워하는 상황을 어색하게 견뎌야 했고, 그 레벨의 반가움에 동참하지 못하고 뻘쭘한 내가 부끄럽기도 했다. 정말 저 정도일까 의심이 들기도 했다.
이런 나를 변화시킨 건 남편이었다. 남편은 남해에서 태어났어도 서울 사람이다. 경상도의 무뚝뚝함을 이해할 정도의 서울 사람이라 남편은 이런 날 이해해 준 것 같다. 남편은 살가운 사람이다. 살갑기가 평양 나막신까지는 안되어도 남자 치고는 살가운 편이다. 내가 어색해 않을 정도의 살가움을 표현해 주어서 남편은 날 천천히 살가움의 세계로 인도해 주었다. 나의 살가움이 서울 사람의 살가움에 천천히 이르도록 해 주는 다리 역할을 하는 사람이었다. 청혼하고 날 배웅해 주던 날, 한 번 안아봐도 되겠냐고 물어보고선 따뜻이 안아준 이 남자에게서 오래 남을 살가움을 배우게 되었다.
살가움은 살을 갖다 대어 느껴지는 보드라운 감정이다. 날 누가 안아주는 것처럼, 내 손을 누가 잡아주는 것처럼 온기 있는 살의 느낌이 전해질 때 느끼는 따뜻함이다. 아기 볼과 엄마 볼이 스칠 때 느껴지는 그런 감정이랄까? 이런 살가움은 무뚝뚝한 내 마음도 편안하게 매만져 준다. 나풀나풀 날아갈 것 같은 가벼운 그런 감정이 아니라 보드랍지만 내 곁에 오래도록 남을 것 같은 벨벳 목도리 같은 감정이다. 파르르 끓고 식어버릴 감정이 아니라 뭉근한 팥죽을 쑤듯 천천히 깊어지는 감정이다. 그래서 난 이 살가움을 좋아한다.
호주는 인사를 포옹으로 한다. 어떨 땐 볼에 입을 맞추기도 한다. 안동 촌사람이 포옹 인사를 하려니 처음엔 어색해 죽는 줄 알았다. 하지만 하다 보니 어색한 순간의 몇 초가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다. 그리고 이젠 포옹에 묻어난 그 사람의 마음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정말 그냥 가벼운 인사로 포옹하는 사람도 있고, 정말 반가움과 사랑을 농축시켜 찐하게 포옹하는 사람도 있다. 유쾌하고 가볍게 끝나는 포옹도 있고, 손을 떼기가 아쉬운, 여운이 남는 포옹도 있다. 인사이지만 그 속에 살가움이 담겨 있어 그 살가움으로 하루가 행복해진다.
아직도 난 여전히 본능적으로 포옹을 할 때면 쑥스러워진다. 사랑하는 아들을 안아줄 때도 뭔가 쑥스럽다. 하지만 이제 더는 부끄러워 피하지 않는다. 쑥스러워도 안아주고, 쑥스러워도 손잡아 주고, 쑥스러워도 사랑한다고 말한다. 아직 부끄럽지만, 그래도 살가움에 천천히 다가가려 한다. 경상도 여자가, 안동 촌 여자가 살가움에 다가가기란 이렇게나 무겁다. 살가움을 여러 번 말하다 보면 '살굼'이 된다. 내가 살가움에 다가가는 모양도 그렇다. 좀 굼뜨긴 해도 열심히 가고 있다. 살굼살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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