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난 엄마를 닮았다는 말을 제일 좋아한다. 이유는 단 하나, 엄마는 예쁘기 때문이다. 이건 엄마를 사랑하는 여느 딸이 하는 말이 아니다. 우리 엄만 정말로 예쁜 여자였다. 엄만 왜 그렇게 예쁘냐고 물으면 엄마는 웃으며 예쁜 게 아니라 그냥 얼굴에 균형이 맞아 그런 거라고만 하셨다.
엄마는 외모로 대단한 존재였다. 외모에 대한 개념이 나에게 자리잡기 훨씬 전부터 엄마는 외모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곤 했다고 한다. 좁은 안동 바닥에 엄마가 나타나면 우아하고 고고한 학 한 마리가 출현하는 것 같았다고 어느 아주머니가 말씀해 주셨다. 조그만 시골 동네였던 안동 바닥에서 우리 엄만 유명 인사였나 보다.
그렇지만 그게 너무 싫었다. 어렸을 때부터 난 왜 얼굴이 엄마만 못하냐는 말을 들으면서 컸다. 학교를 가면 친구들이, 선생님이 "엄마는 정말 예쁘시던데 넌 엄마만 못 하구나." 하는 말을 했다. 심지어는 커서조차 시어머니도 "딸들 중 엄마만 한 딸이 없네."라고 하셨다. 딸이 셋이나 있는데 이런 말은 굴욕이었다. 정직하신 남편님도 엄마가 더 예쁜지 내가 더 예쁜지 물으면 '주관적인 답? 객관적인 답?' 하며 '객관적으로는 어머님'이라고 못을 박아주었다.
그래서 난 어렸을 때부터 열등감에 시달려야 했다. 내가 그리 못난 것도 아닌데, 단지 엄마가 너무 예쁘다는 이유로만 이렇게 외모를 비교당하니, 나중엔 엄마 얼굴을 남들에게 보여주기가 싫어졌다. 어디 내놓아도 자랑스러울 엄마가 어디 가서도 숨기고 싶은 엄마가 되었다. 이런 외모 열등감은 다른 분야에서라도 엄마를 치고 올라서야겠다는 나의 의지를 불태웠고, 다른 방면으로 뛰어나 볼 궁리를 하게 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아무리 공부로 1등을 해도 엄마에 대한 열등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여자는 공부 잘해봤자 소용없고, 예쁘기만 하면 된다는 어른들의 말에 나의 자존감은 다시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래서인가 보다. 내가 '빨강머리 앤'과 '제인 에어'를 사랑하게 된 이유 말이다. 중학교 때 읽은 '빨강머리 앤'과 고등학교 때 읽은 '제인 에어'의 주인공은 둘 다 외모가 썩 예쁘지만은 않지만 당당하고 매력적인 여성이다. 내면의 아름다움과 솔직함, 당당함이 외모를 뛰어넘은 경우이다. 그래서 난 그때부터 일찌감치 외모를 포기하고, 예쁘지는 않아도 당당하고 매력적인 여성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때 이후로 난 나의 외모에 대해 엄마와 비교하며 이러쿵저러쿵하는 사람들을 보면, 속으로 말했다.
'두고 봐. 난 빨강머리 앤과 제인 에어 같은 사람이 될 테니..'
사실 얼마만큼 내가 빨강머리 앤이나 제인 에어 같은 사람이 되었는진 나도 알 수 없지만, 좀 당당하고, 약간은 괴팍하기도 하고, 앤처럼 다혈질적인 솔직한 구석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은 앤도 아니고, 제인 에어도 아니다.
'아름다운 사람'이다.
'예쁨'이란 엄마가 내게 했던 말처럼 '균형'에서 온다. 모든 게 균형이 잘 잡혀 제 자리에 있으면 그것이 예쁨이 된다. 미인의 조건을 황금비율에서 찾는 것처럼 모든 이목구비의 크기와 자리가 균형 잡히게 배열되었을 때 비로소 '아름답다'라고 느낄 수 있다. 그곳엔 질서가 있기 때문이다. 눈송이를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도, 피보나치수열의 꽃잎 수를 가진 꽃들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도, 삼각 구도로 날아가는 새의 무리를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도, 소라의 소용돌이치는 나선형 무늬를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도 모든 것이 질서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내적 아름다움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사람이 아름답다고 느껴질 때는 사람이 꼭 갖추어야 할 좋은 특성들이 균형 있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이다. 주어진 외모는 내가 뜯어고칠 수 없지만 마음은 내가 가꾸어 갈 수 있다. 좋은 특성들이 균형 있게 배치되어 자기 자리를 잘 지키고 있을 때 빛나는, 매력적인 사람이 된다. 이런 매력적인 사람은 얼굴에서도 빛이 나고, 예쁘진 않아도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 마치 미인의 조건이 황금비율을 가진 사람인 것처럼, 사람도 균형 잡힌, 질서 있는 사람일 때 우린 그에게서 아름다움을 느낀다. 피보나치수열로 배열된 꽃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듯, 성정이 질서 있게 운용되는 사람에게선 아름다움이 풍겨져 나온다. 씨앗이 빈틈없이 꽉 채워진 해바라기를 보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속이 꽉 채워진 사람에게선 아름다움이 풍겨져 나온다.
엄마는 늙으셨고, 나도 늙어가고 있다. 얼굴의 외적 균형은 무너질 수 있지만 우리 마음의 내적 균형은 죽을 때까지 지켜낼 수 있다. 나의 얼굴 위에는 어느새 무질서가 내려앉았다. 하지만 영원히 젊은 이 마음만은 나의 의지로 질서 있게 지켜낼 수 있다.
‘미인’은 그런 것이다. 균형 있고, 질서 있는 아름다운 사람. 젊으나 늙으나 모두에게 주어지는 美人이 되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 아직 더 채우고, 더 바로잡아야 할 구석이 많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나를 아름답게 만들어 갈 것이다.
<사진: 넷플릭스 빨강머리 앤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