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음식을 유독 좋아해 김치도 사 먹는 호주 친구가 한국 여행을 다녀왔다. 그녀의 남편은 한국을 워낙 좋아하는 내 친구 때문에 그냥 따라간 셈이었지만, 한국 여행을 다녀와서는 남편까지 한국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인들의 친절함에 반하게 되었고, 식당에서 나오는 리필되는 갖가지 반찬들에 홀딱 반했다고 했다. 한국에 대해 칭찬을 늘어놓는 친구 부부에게 난 장난기가 발동해 한국에서 문화 충격받은 건 없었냐고 물었다. 솔직한 이 부부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놀란 게 한 가지 있기는 해. 개개인으로 만나면 너무나 친절한 한국 사람들이 차만 타면 돌변하는 것 같아. 어쩜 그렇게 경적을 울리는지, 길을 가다가도 깜짝깜짝 놀랐지 뭐야. 여기선 웬만하면 경적을 울리지 않잖아. 그게 좀 놀랍더라고..."
한국 여행을 다녀온 친구들에게 정말 하나같이 듣는 칭찬의 말은 사람들이 너무 따뜻하고 친절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친절한 사람들이 어떻게 차만 타면 돌변하는지 친구들은 의아해했다.
호주에서는 위급한 상황에서 경고성으로 경적을 울리는 일 외에 경적을 사용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음주운전을 하는 것처럼 보이거나 위험한 상황에서 사용하는 경적 이외의 사용은 불법이고 만약 그랬다가는 벌금까지 물게 되어있다.
꼭 그것을 법으로 정해 놓았기 때문이 아니라 양보하고 여유를 갖는 생활 방식 때문에 호주에서는 웬만해서는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앞 차가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가지 않고 있으면 한참은 경적 없이 기다려 준다. 갑자기 끼어든 차량에게 화풀이로 경적을 울리진 않는다. 보행자에게 비키라고 경적을 울리는 일은 찾을 수 없다. 이런 환경에 익숙한 호주 사람들에게 한국에서 다반사인 경적 소리는 놀랄만했을 것이다. 소음이 익숙한 한국에선 어쩜 사람들이 경적을 소음으로 생각하기보다 의사소통 수단으로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음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의 입장에서 그것은 분명 깜짝 놀랄 만큼의 소음이다.
한국에 살 땐 몰랐는데 호주에 살면서 소음에 민감해졌다. 조용한 생활환경이라 살다보니 시끄러운 차 소리나, 기계 소리가 영 성가시게 들린다.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청소기 돌리는 소리, 에어프라이어 돌리는 소리, 심지어 후드 소리까지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 모든 기계 굴러가는 소리들이 나에겐 불편한 소음이 되었다. 어느 순간 편리함을 사기 위해 불편한 소음을 견디며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이 어처구니없게 여겨졌다. 내 몸 조금 불편해도 마음의 고요를 찾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어졌다.
이런 생각을 한 건 남편이 먼저였다. 남편은 청소기를 돌려도 청소기에서 먼지가 나고, 돌리는 동안 시끄러운 소음을 견뎌야 하고, 지구에 해가 되는 플라스틱 덩어리를 더 생산하게 되니 그냥 비질과 걸레질을 하면서 사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처음엔 그 제안이 두려웠다. 정말 청소기 없이도 살 수 있을까?
남편은 자신이 한 제안인 만큼 매일 비질과 걸레질을 도맡아 했다. 청소기 없이도 집이 깨끗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나를 설득하려는 것 같았다. 나 역시 청소기에서 나는 웽~~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니 마음의 고요가 흐트러지는 일이 없었다. 사실 청소기를 돌리는 게 더 불편한지도 모를 일이다. 비질을 하면 무겁게 이리저리 끌고 다닐 기계 덩어리도 없고 선을 여기저기로 뽑았다 옮겼다 할 필요도 없다. 발에 걸리는 전깃줄도 없다. 소박한 몸놀림과 손놀림만으로도 집은 윤이 났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모든 기계들은 편리함이라는 미명 하에 나를 괴롭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소음으로 내 귀를 괴롭히고, 빛으로 내 눈을 괴롭히고, 어쩌면 내 정신까지 괴롭히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무언가를 사기 전에 신중해졌다. 이 물건은 정말 지구에게도, 다른 이들에게도 나에게도 해가 되는 물건은 아닐지 생각하고 소비를 하게 되었다. 요리를 할 때도, 청소를 할 때도 내가 사용하는 물건들이 불필요한 소음과 공해를 생산하는 것은 아닌지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차라리 내 마음의 고요를 지키며 불편함을 감수하는 편을 택하게 되었다.
내가 진정 사는 것은 나의 몸과 나의 정신을 평화로운 상태로 지키는 것이다. 그런 몸과 마음의 평화를 편리함이 주는 공해로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편리함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나의 모습은 미련스럽게 비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모습 속에서 아들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무엇을 얻어야 하는지, 무엇을 감수해야 하는지 지혜롭게 선택하는 사람으로 커 주길 바랬다. 시대의 흐름을 좇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흐름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자신이 지켜야 할 것들을 꿋꿋이 지켜나가는 사람으로 커 주길 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