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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향기 Jun 12. 2024

본인인증 없인 살기 힘든 나라, ‘나’라?

한국은 나에게 외국이고, 나는 여기서 외국인이다. 외국인이 한국에 입국해서 가장 먼저 부딪히게 되는 장벽은 다름 아닌 '본인인증'이다. 한국에선 본인인증이 참으로 기본이고도 기본이지만, 나 같은 외국인에게는 그 '본인인증'이라는 것이 넘고 넘어야 할 커다란 산이다. 나는 입국하고도 거의 한 달여 가량을 이 본인인증의 굴레에서 허덕여야 했다.


본인인증을 하기 위해선 휴대폰이 필요하고 휴대폰 개통을 하기 위해선 본인인증이 필요하다. 이 무슨 말 같지 않은 말인가. 은행에 가서 본인인증이 필요하다고 하니 휴대폰부터 개통하라고 하고, 휴대폰 개통을 하려고 통신사에 갔더니 본인인증이 된 본인 명의의 계좌나 신용카드가 필요하다고 한다. 은행과 통신사는 토스를 끊임없이 해대었고, 나는 그 사이에서 '나'를 잃어버리는 형국이 되었다. 본인인증 하려다 본인이 사라져 버리게 생겼다. 도무지 '나'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결국 어디서도 본인인증을 위한 제대로 된 절차를 찾지 못했고, 다행히 불법이 아닌 편법으로 간신히 휴대폰을 개통하여 본인인증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 편법이라 함은 한국 국적의 가족이 가지고 있는 신용카드를 통해 가족 카드를 발급받아 내 명의의 카드를 발급받은 후 휴대폰 개통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본인인증에 성공하다 보니 그 '본인인증'이란 네 글자에 한이 맺힐 정도가 되었다. 휴대폰 개통하러 갔다가 퇴짜를 여러 번 당하고 한 달 여 만에 휴대폰을 개통하고 보니 그 '본인인증'에 감계가 무량할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고작 휴대폰 하나로 전송되는 인증번호에 내가 나임이 증명되다니 너무한 거 아닌가?

내가 '나'라는 걸 증명하기가 이렇게 간단히 된다고?


본인인증이 뭐라고 나를 이리도 괴롭혔던가.

하지만 생각해 보면 본인인증은 사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 중의 이슈다. 나는 여태껏 나를 제대로 본인인증하며 살아왔을까? 본인인증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도 않고 내 인생을 산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함이 갑자기 엄습했다. 내가 아닌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사는 건 아닌지, 내가 바라는 '나'가 아닌 누군가의 기대에 의한 '나'의 삶을 산건 아닌지 잠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 중 하나는 분명 내가 '나'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다른 사람과 다른 나만의 '나'로서 살기 위해 이러저러한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했던 게 아닐까.


은행과 통신사에서 본인인증이라는 공을 끊임없이 토스하다가 '나'라는 사람의 존재가 부정되어 버릴 뻔한 것처럼, 인생에서도 수많은 공들이 내 손이 쥐어지지 못하고 계속 토스만 하다가 '나'를 잃어버리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손에 잡힐 듯하다가도 공은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리고, 내게로 던져진 공인 듯 싶다가도 다른 사람이 낚아 채기가 일쑤였다. 그러는 사이 나는 '나'라는 공마저도 손에서 놓쳐버리게 된 경우도 있다. 본인인증을 제대로 못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나'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나 혼자 만의 힘으로 어찌해 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워낙 마이크로 사회가 되어서인지 일인용품이 늘어나고, 일인 가구가 늘어나고, 일인 식당도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나'만을 위한 사회가 되어가고, '나'만을 위한 삶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이다. 남들 신경 쓸 거 없이 '나'만 생각하자는 주의가 팽배해 있다. 하지만 정말 오롯이 '나'를 증명해 줄 사람은 '나'로 충분할까?


본인인증을 위해서는 '나'로 충분하지가 않다. 나를 둘러싼, 나를 지지해 줄, 나를 증명해 줄 내 곁의 사람들이 필요하다. 가족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고, 이웃일 수도 있다. 내 곁에 나를 증명해 줄 사람들이 있어야 내가 '나'임을 증명할 수 있다. 내가 가족카드를 발급받아서 겨우 본인인증에 성공한 것처럼, 나와 얽힌 사람들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나'중심의 세상에서 휴대폰으로 전송되는 문자 하나만으로도 '나'임을 손쉽게 증명하는 진정성이 사라진 사회가 된 것 같아 왠지 모르게 씁쓸해졌다. '나'는 '너'가 있기에 '나'가 될 수 있고, '나'는 '우리'가 있기에 '나'가 될 수 있고, '나'는 사람들이 있기에 '나'일 수 있다는 것을 너무 쉽게 망각하고 사는 것 같아 안타까워졌다. 늘어나는 '일인 용' 속에서 우린 '나'를 증명하긴커녕 '나'를 소실해 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서늘해졌다.


진정한 본인인증은 제 아무리 내가 '나'라고 외쳐보았자 이루어지지 않는다. 내 곁의 사람들이 '나'를 '나'로 알아줄 때 진정한 '나' 자신이 증명되는 것이 아닐까?


한국에 와서 본인인증에 학을 떼다 보니, 본인인증의 절실함을 느끼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본인인증이 필수다. 인생에서도 본인인증이 필수다. 한국에서 본인인증 절차를 끝냈으니 이제 내 인생에서도 본인인증을 하며 한국생활을 하려고 한다. '나'를 잃어버리지 않게 해 줄 사람들을 만날 한국에서의 생활이 더 기대된다.


<사진출처: 김한나 ‘신은 양말로 로그인’. OKNP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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