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온 지 9개월이 되어간다. 흐르는 시간만큼 시아버지의 치매 증상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처음에는 그저 말 수가 줄어들기만 하셨는데, 이제는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지셔 온 동네 사람들이 찾아 나서야만 하는 일도 있게 되었고, 화장실도 혼자 못 가실 지경이 되었다. 손주가 급격히 성장한 이유도 있겠지만, 시아버지는 손주를 알아보지 못해 낯선 사람에 대한 위협을 느끼고 나가라고 소리칠 때도 있었다. 옆에서 치매 환자의 증상이 점점 나빠져가는 것을 보는 것은 참으로 고통이다. 두려움이고 슬픔이다.
한국에 와서 AI와 관련된 곳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작업도중 AI에게 치매와 관련된 동시를 적어달라는 부탁을 하게 되었다. 평소에 AI가 생성해 낸 시와 소설들을 자주 접했기에 인간이 만들어낸 창작물에는 현저히 못 미치는 AI의 작품에 별 기대가 없었다. 그런데 막상 작업물을 읽고서 그만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우리 할머니는 어디 가셨나요?
엄마, 우리 할머니는 어디 가셨나요?
어제도 같이 앉아서 이야기했는데,
오늘은 저를 못 알아보세요.
처음엔 작은 실수였어요.
밥을 안 먹었냐고 다시 물어보시고,
우리 집 주소도 가끔 헷갈려하셨죠.
걱정이 되어 손을 잡았지만,
할머니는 그냥 웃으셨네요.
"아직 괜찮아, 걱정하지 마" 하시며.
시간이 흐르자 작은 실수들이
거대한 그림자가 되었어요.
사진 속 할머니 미소가 사라졌죠.
할머니는 방 안에서 길을 잃으셨어요.
저를 이름 대신 '꼬마야'라 부르시고,
이야기 속에서 길을 잃고 마세요.
매일매일 조금씩 흐려지는 기억,
그리고 저는 할머니를 다시 찾아요.
언제쯤 우리가 만나게 될까요?
엄마, 치매는 왜 이렇게 슬픈 건가요?
할머니가 매일 떠나는 꿈을 꿔요.
두려움 속에, 오늘도 손을 꼭 잡아요.
물론 여전히 AI가 생성한 작업물은 작품성이 사람의 것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하지만 이 시의 화자인 어린아이가 느꼈을 상실감과 슬픔, 두려움이 고스란히 전해져, 난 그만 울고 말았다.
시아버지를 보고 슬픈 게 아니라, 그저 사람 사람의 인생이 슬픈 것 같다. 시아버지가 치매시라 슬픈 게 아니라, 인간이 겪을 수밖에 없는, 어찌해 볼 수 없는 나약함이 슬프다. 나에게도 일어날 일일 것만 같아 두려운 게 아니라, 인생이라는 것이 참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이 두렵다. 매일매일을 많은 것들과 이별하며 살고 계신 시아버지를 보며, 인생이란 게 이별의 연속이라는 것이 날 울게 했다. 어느 길 잃은 사람의 모습을 고스란히 옆에서 지켜보면서도 길을 찾아 줄 수 없는 절망감이 날 울게 했다.
치매가 아닌 나는 길을 잃지 않고, 길을 잘 찾아가고 있을까? 길을 잃어 헤매시던 시아버지가 느꼈을 두려움보다 우린 어쩌면 더 큰 두려움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진 않는 걸까? 언어를 잃어버려 자신을 말하지 못하는 시아버지보다 우리는 자신에 대한 많은 말들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진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