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간 남편의 머리를 잘랐다.

by 나무향기

누가 내 머리를 만져주면 잠이 스르르 온다. 간지러움과 아늑함의 경계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결국은 잠이 들어 버린다. 어릴 때 누가 내 머리를 쓸어주면 기분이 좋았다. 몸과 마음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엄마가 머리 묶어 주실 때 옆으로 삐져나온 잔머리들을 정리해 귀 뒤로 넘겨주시던 느낌, 외할머니 무릎에서 할머니가 머리를 살곰살곰 긁어주실 때 잠들었던 그 느낌, 미용실에서 손이 부드러운 아주머니가 머리 감겨 주시던 느낌, 누군가의 손이 내 머리에 부드럽게 닿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어느 날 사춘기가 한창인 아들이 엄마는 어떤 남자가 좋았냐며 물어왔다.


"난 머리 쓸어 넘겨주는 남자가 제일 좋아."


그 이야기를 기억한 녀석은 지금도 갑작스레 다가와 내 머리를 넘겨준다. "엄마가 머리 넘겨주는 남자가 제일 좋다고 해서. 헤헤..." 하며 호빵 같은 두 볼에 웃음을 머금고 통통한 손가락으로 내 머리카락을 넘겨준다.




호주에 와 살면서 이런저런 것들을 자급자족하게 되었다. 내가 짜장면집 요리사가 되어야 하기도 하고, 재봉틀을 사다가 옷 수선하는 수선집 아줌마가 되기도 하고, 가족의 머리를 자르는 미용사가 되기도 해야 했다.


내가 처음 호주에 왔을 때 미용실비가 너무 비싸 놀랐던 기억이 난다. 커트 비용이 한국 커트비의 대여섯 배는 되었다. 길들여지지 않은 커트 비용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남자들은 매달 이발을 해야 하니,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어떻게 서든 아껴 살자 주의인 나는 어린 아들을 마루타 삼아 미용 기술을 익혀 보기로 했다. 남편 머리로 연습을 할 순 없어 남편이 미용실 갈 때마다 따라가서 어떻게 머리를 깎는지 매의 눈으로 유심히 살폈다. 그렇게 눈으로 익힌 기술은 아들 머리로 연습을 했다. 그때만 해도 유튜브가 없었으니 배울 곳도 마땅치 않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세 살 아들은 나의 마루타가 되어 머리에 땜빵 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땜빵이 너무 많아 아예 밀어버려야 했던 적도 있다. 그렇게 익힌 미용 기술은 제법 바리깡을 쥔 손목 스냅으로 머리를 깎을 수 있을 정도가 되어 곧 남편 머리까지 깎게 되었다. 커트 비용을 절약하기 위한 목적이 컸지만, 사랑하는 이들의 머리를 내가 직접 만져주며 예쁘게 머리가 이발되었을 때 느끼는 만족감은 내가 계속 가위를 잡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고마운 건 더운 여름에도 커트보를 두르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도 내 손에 머리를 맡겨준 오랜 나의 단골들의 믿음이다. 불평 없이 내 손에 자신들의 머리를 맡겨주었다. 큰 아들은 한창 예민할 나이인 사춘기를 보내면서도 기술도 많이 부족한 엄마에게 늘 머리를 맡겨주었다. 때론 바가지 머리가 되기도 하고, 투 블럭을 만들어야 하는데 쓰리 블럭이 되기도 했지만 아들은 투정 없이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자신의 머리를 나에게 맡겼다.


사실 나도 버겁긴 했다. 남자가 셋이나 되다 보니 이발하는 날이면 목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고 등짝도 아팠다. 부족한 기술로 고객님들의 취향을 최대한 만족시키려 하다 보니 힘이 들어간 모양이었다. 그래도 셋이 말끔해진 모습을 보면 뿌듯했다. 내가 이발을 한 것처럼 시원하고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이젠 나도 나이가 들어 세 명을 한꺼번에 이발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그런 걸 눈치챘는지, 아님 이젠 엄마 미용실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는지 얼마 전, 큰 아들이 이제 미용실을 가겠다고 했다. 엄마도 이젠 힘드시니 미용실을 가겠다고 했지만, 난 못내 서운했다. 둘째도 덩달아 형 따라 미용실 가겠다고 한다. 사춘기에 접어든 둘째는 막을 도리가 없다. 그러라고 했다.


고객이 세 명에서 한 명으로 줄었다. 남편만큼은 날 떠나지 않고 끝까지 단골로 남았다. 16년간 이발을 해 왔다. 오랜 세월이다. 아직 남편의 고등학교 졸업사진이 화장대 한 켠에 꽂혀 있다. 사진 속 남편은 머리숱이 많아 켜켜이 쌓아 올린 웨이브 머리가 멋있는 남자이다. 한껏 머리를 세워 올렸다. 하지만 이젠 그렇게 세울 머리가 없다. 16년 전 내가 만졌던 남편의 머리는 무성하고 힘이 빳빳했는데, 이젠 가위질 몇 번이면 이발이 끝난다. 16년 동안 남편 머리를 잘라 왔으니 머리를 자를 때마다 흩어져 버린 세월을 느끼게 된다. 남편의 머리엔 눈이 내려앉은 곳도 많이 늘었고 공터가 된 곳도 생겼다.


커트보를 두르고 남편의 머리를 자른다. 자를 때마다 가늘어진 머리카락과 듬성듬성해진 머리숱에 마음이 좋질 않다.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곱게 빗질해 이발한다. 이발을 끝내고 남편의 머리를 쓸어 넘겨본다. 내가 어릴 적 느꼈던 잠이 올듯한 기분 좋은 느낌이 남편에게도 전해지기 바라며 머리를 쓸어 넘겨준다. 남편의 얼마 안 되는 잘린 머리를 쓸어 담는다. 쓸쓸한 내 마음도 쓸어 담는다. 내가 늙어 가는 모습을 거울로 마주하는 건 괜찮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늙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힘든 일인 것 같다.


우린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이 늙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사랑하는 엄마, 아빠의 늙어가시는 모습, 사랑하는 나의 배우자가 늙어 가는 모습, 이제 시간이 더 지나면 사랑하는 나의 자녀가 늙어가는 모습도 지켜보게 될 것이다. 그때 사랑하는 나의 사람들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고 싶다. 내 따뜻한 손길로 그들의 머리를 쓸어 넘기며 웃어주고 싶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남편의 머리를 이발해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남편이 살아 있는 한, 내가 살아 있는 한, 내 손으로 남편의 머리를 예쁘게 다듬어 주고 싶다.




<사진: 머리를 맡겨준 둘째 아들, 출처: 나무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