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만에 책 쓰기로 매주 한 권 책 쓴다(2019년 4월 29일)
4월 말의 남도는 유채꽃들로 질퍽한 향연을 벌이고 있었다. 군 입대 전, 제주도 여행 당시 보았던 그 유채가 분명해 보였다. 사람들은 유채의 원색을 각자 내면의 무채색과 잘 배합하여 카메라에 담느라고 여념이 없다. 가족단위라서 그런지 다들 행복해 보인다. 부럽다는 생각보다는 낯선 외로움이 불쑥 밀려온다. 익숙한 외로움을 유채꽃밭에 살포시 내려놓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길을 재촉한다. 낯선 외로움은 허락도 없이 나를 따른다. 버림받은 익숙한 외로움은 마법사가 만들어내는 연기처럼 흩어진다. 노랑이라는 유채가 뿜어내는 세상 속으로 그렇게 스며들어간다. 나는 나의 익숙한 외로움과 그렇게 이별 연습을 시작하였다. 또 다른 익숙한 자신과의 이별에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또 학습하는 중이다.
세상은 참 재미있고 살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때는 죽을 맛이었다. 그 맛을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요즘 겨우 살만하니까 그때를 돌아보고 글이라는 걸 끄적거릴 수도 있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생뚱맞기는 하지만 죽음이 값지고 필요함을 느낀다. 늘 생각하던 단어에 의미를 부여하고 나니 내 삶이 한결 간결해짐을 느낀다. 심지어 블로그에 묘비명도 적어두었다.
지금 영국이 아닌 한국에 있는 것도 그렇고 남도의 끝자락에 우뚝 솟은 월출산에 와 있는 것도 그렇다. 무슨 인연이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실마리조차 찾을 길이 없다. 하지만 그 인연의 끈들 속에는 모두 나라는 존재가 직간접적으로 관여나 역할을 하였고 앞으로도 할 것이다. 나의 그 행위들이 미세해지기를 바란다. 그 또한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음을 알면서도 인연이라는 추상적이고도 부질없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지금 팔자에도 없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명산이라는 영암 월출산 중턱에서 이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그것도 화사한 4월의 봄날이다. 정확하게는 월출산 암벽 타기 학교 바로 아래다. 학교라고는 하나 운동장도 건물도 없이 커다란 바위가 전부다. 책상도 의자도 없다. 조금만 더 가면 구름다리가 나오고 정상인 구정봉도 위용을 드러내며 목전에 보일 듯하다. 여기서 등반을 중단한 이유는 전혀 등산 준비가 되지 않은 복장 때문이다. 늘 신던 운동화에 면바지와 남방 차림이다. 더욱이 한 손에는 아직도 겨울의 끈을 놓지 못한 얇은 패딩이 들려있다. 월출산까지 내려온 이유는 동생이 운영하는 식당의 서빙 일을 도와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대체 직원이 생겨서 예상치 못한 자유의 몸이 되었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바로 뒤 암벽에서 어린 학생들의 우렁찬 함성들이 들려온다. 암벽 타기 훈련 중인 것 같다. 목소리로 보아 대학생들로 보인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목소리 또한 대학생 교관인 듯하다. 이들의 함성 소리는 힘이 있고 절도가 느껴진다. ”하강 준비 완료“나 ”하강“ 같은 구호성 목소리들이 산 아래 유채꽃 축제장의 끈질긴 스피커 소리와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허공을 맴돌다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성인 남자 한 명은 발목이 골절되어 다른 남자의 등에 업혀서 하산을 하고 있다. 업는 자도 힘겨워 보이지만 업힌 자의 무안함은 내려가는 비탈만큼이나 어색하고 위태로워 보인다. 남자의 오른발은 신발이 벗겨진 채로 흰 압박붕대에 감겨 있다. 주변 사람들의 다급한 통화소리로 봐서 상황이 심각한 듯하다. 광주의 큰 대학병원으로 이송 여부를 두고 119 구조대와 통화 중이다. 너무 선명하게 들려서 마치 나의 지인이나 내가 부상을 당한 느낌이다. 그 와중에도 산 아래의 고성능 스피커는 흥겨운 트로트를 염치도 없이 토해내고 있다. 그것도 쉬지 않고 메들리로 말이다. 산 중턱과 산 아래라는 물리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고성방가와 음악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내가 하루키처럼 오전 집필 후에 오후에는 클래식 음악을 듣는 지적 수준에 미치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천하를 잔인한 4월로 만들고 있는 스피커 소리를 피해 도망치다 보니 예정에도 없던 산 중턱까지 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소리의 놀라운 확장력은 주눅 드는 법이 없다.
얼마가 지났을까? 암벽등반훈련이 끝나고 대원들이 하산을 시작한다. 나도 얼떨결에 따라나선다. 얼추 보아 총 9명인데 그중 3명 정도는 여학생이었다. 내려가면서도 암벽등반가로 보이는 노래를 불러댄다. 저들의 젊음과 용기가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내려오는 길에 연신 뒷모습만 보았다. 잠깐 대화를 나누고 싶지만 그들의 하산 속도를 따를 수가 없었다. 암벽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에게 등산로는 일반 도로처럼 느껴질 것이다. 결국은 천황사 앞마당에서 그들을 놓치고 말았다. 잠깐 대화를 나누려던 나의 의도는 무산되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약수 한 그릇을 먹고 자그마한 절의 암자 주위를 기웃거린다. 스님 두 분과 신도로 보이는 중년의 남녀 보살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실례를 무릎 쓰고 그분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물론 양해를 구하였다. 암자 안의 테이블에는 이미 녹차 3잔이 놓여있었다. 녹차는 벌써 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현성스님이라는 비구니 스님과 잠깐 차담을 나누었다. 하지만 노신사 부부 때문에 그리 환영받지 못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나는 그들에게는 염치없는 불청객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의 이러한 행위는 평소에도 지속되는 일상이다. 하지만 그분들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녹차 한잔 겨우 얻어 마실 시간이었지만 대화 도중 내가 노신사의 나이를 잘못 짐작했다는 이유로 훈계를 들어야 했다. 내가 단정을 잘하는 사람으로 몰리면서 갑자기 죄인이 되어 버렸다. 나는 노신사와 대화할 의도는 없었다. 단지 스님과 차담을 나누고 싶었다.
불편해서 서둘러 일어나서 길을 나섰다. 내가 단정하는 버릇이 있다고 단정하는 노신사를 보며 순간 아버지의 이미지가 오버랩되었다.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슬픔과 마주해야 했다. 40대 중반 어느 날, 갑자기 길을 잃었듯이 또다시 길을 잃고 말았다. 노신사는 나의 아버지와도 결이 비슷한 분이었다. 비록 기분은 상하였지만 그분을 탓할 생각은 없다. 그게 우리의 일상이고 지금까지 살아낸 인생이다. 그분은 좀 더 비약으로 이어졌다. 고향을 물으며 정읍이라는 대답이 나의 입 밖으로 나가기 무섭게 또다시 단정을 지으셨다. 역시 전라도 사람들 특히 남자들은 단정을 하는 못된 습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오늘 타인과의 의미 있는 대화의 시도는 그렇게 의미를 상실해갔다. 아버지의 평소 모습에서 그리고 방금 만난 노신사의 모습에서 억척스럽고 강인한 서글픔이 느껴진다. 서글픔에는 외로움을 한껏 머금고 있었다. 머지않은 미래의 나나 우리의 모습에는 그렇게 부드럽지만 독기를 품은 외로움이 처연하게 똬리를 틀고 있다.
오늘 나는 그렇게 오래 전의 나를 월출산의 자그마한 암자에서 만났다. 내가 힘들어하기 시작한 것은 40대 중반이다. 그때의 나는 느닷없는 외로움과의 전쟁에 돌입하였다. 그다지 기분 좋지 않은 추억을 소환할 이유는 없었다. 오늘은 화창하고 기분마저 좋은 날이다. 모처럼 맑음이다. 그런데 8년 전부터 내가 가슴에 품긴 시작한 하나의 화두를 꺼내 들어야만 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다. 그 아팠던 기억들을 소환하지 않고도 충분히 삶에 충실할 이유는 많았다.
한국에 와서 벌써 반년 째 살고 있다. 그러면서 아버지와 노신사는 또 다른 나와 우리들의 모습이었다. 아픔을 온몸으로 이겨낸 세월만큼 그 아집도 강인 해지며 죽순 자라듯 자라났을 게 분명하다. 강하면 부러진다는 걸 알기 때문에 강하면서도 때로는 약함을 보여주는 유연함을 갖추고 있었다. 약한 죽순이 강한 대나무가 되어가는 과정과 일치한다. 내가 한국에 올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글로 풀어내는 일은 야만적일 만큼 고통스러운 일이다. 나는 그 고통스럽고 부끄러운 과정을 기꺼이 파헤쳐서 까발려보고 싶어 졌다. 그 당시의 나나 내 또래의 후기 청년들이 외로움의 크레바스에 빠지는 이유를 파헤쳐보고 싶었다.
그래야만 하는 뚜렷한 이유조차 없었다. 자연스럽게 내 이야기를 하는 나는 이제는 더 이상 그 아픔을 비약하지도 합리화시키지도 않는다. 누구 탓을 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성장해가고 있는 중이다. 그 일등공신은 물론 글쓰기다. 직업으로서의 글쓰기가 아닌 글들이지만 자부심을 가지고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게 8년 전의 아픈 기억을 소환해서 치유 중이다. 끝으로 부끄러운 이야기들이 책으로 나올 수 있도록 지구 반대편에서 응원해주고 격려해준 아내와 아들 그리고 사냥하는 고양이 둘째 아들 단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프롤로그
1장, 팔자에도 없는 터키 여행
1. 갑작스러운 여행
2. 여행지 도착에서 여행을 떠나다
3. 블루모스크와 고양이
4. 고등어 케밥과 낚시하는 사람들
2장, 결혼이라는 판타지
1. 그럼 나는?
2. 특별한 결혼
3. 파랑새는 없다
4. 길 잃은 후기 청년
3장, 글쎄, 이번 생에는 여기까지
1. 인연의 가벼움
2. 비 내리는 런던 거리
3. 리셋 버튼이 있다면
4. 친구들
에필로그
며칠 동안의 남도 여행은 거의 정확히 8년 전의 나로 돌아가게 만드는 마법을 보여주었다. 45세 후기 청년은 그때 에베레스트의 크레바스 골짜기에 빠지기 직전에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고 허우적대고 있었다. 그 몸부림은 처절하였다. 블랙홀보다 더 무서운 크레바스라는 골짜기는 깊이조차 가늠이 가지 않았다. 거기에 빠지는 꿈을 매일 꾼다고 상상해 보라. 등에 식은땀이 난다. 그러한 시기를 나는 제2의 중2병이라 불렀다. 나만 겪지는 않았을 그 고통을 중2병이라 부른 이유는 또래의 사람들이 겪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 처절한 외로움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그 시기에 왜 남자들은 외로움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일까? 여자들은 저렇게 씩씩해 보이는데 하며 나는 그 궁금증을 꼭 풀어보고 싶었다. 물론 상당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아파하고 외롭다는 감정은 여전히 유효하다. 삶의 동반자로 받아들인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어느 정도 치유가 되기까지는 나름 상당한 노력과 다양한 시도를 하였다.
단지 가장이라는 무게 때문에 나답게 살지 못한 건 아니다. 나에게도 많은 문제가 있었고 그러한 문제들을 합리화시킬 생각은 없다. 합리화시킨다고 합리화되지도 않을 것이다.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그렇게 다짐하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또 다른 모습의 아버지가 내 몸속에 탑재되어 있었다. 그렇게 나는 아버지와 발가락만 닮은 게 아니었다. 아버지와 전혀 다른 방식이지만 결국은 아버지처럼 살고 말았다. 나만 경험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난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를 외치던 소녀나 아가씨들도 결국은 엄마와 같은 인생을 살아간다. 그것이 핏줄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인생 자체의 어쩔 수 없음을 탓하고 싶다. 자기 합리화를 피하려니 인생 합리화라는 자가당착에 빠지고 만다.
외로움이라는 키워드는 이제 겨우 시작한 나의 인생 프로젝트다. 철저하게 외로움을 분석해 보고 그 사례들을 수집하여 수치화해보고 싶은 욕심까지 생겼다. 특히 포인트는 후기 청년기의 남자들이다. 이들은 직장에서 쓰러지면 바로 과로사하는 힘겨운 시기를 지나오고 있다. 그래도 지나 보면 그때가 좋을 때고 그때가 힘이 있을 때이다.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내가 마치 노인이 된 기분이다. 어차피 병원에 가면 아버님이란 호칭으로 불리며 도매금으로 노인들로 분류되는 처지이기는 하다. 지속적으로 이 외로움이란 정체를 파헤쳐보고 싶다. 그래서 이 외로움이 우울증이나 그보다 심한 병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는 사회적 안전장치들을 마련하고 싶다.
2019년 4월 28일
호반의 도시 춘천에서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서울 선정릉 [모두의 캠퍼스] 강의 신청하기 / 월출산 국립공원 카페 [기억] 강의 신청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