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만에 책 쓰기로 매주 한 권 책 쓴다(2019년 5월 20일)
@ 책 소개: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세상이다. 설사 알아도 관심이 없다. 관심을 주고 싶어도 상대방이 싫어하는 경우가 더 많다. 우리는 이미 1인 가구 시대에 살고 있다. 혼밥이나 혼술이 자연스러워진 지 오래다. 옆집에 사는 사람이 갑자기 죽어도 알 길이 없다. 흔히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한다. 친구들도 연락이 안 되면 같이 연락을 끊어버린다. 직장에서는 한두 번 전화해보고 무단결근 처리한다. 그래도 연락이 안 되면 퇴사 처리해 버린다.
남의 일이라고 치부하고 넘겼던 일이 실제로 나에게 벌어졌다. 비현실의 세계가 현실의 세계로 넘어왔다. 나는 그 슬픔의 깊이를 아직도 가늠하지 못한다. 어떻게 사망 후 100일 만에 발견될 수 있는지 나는 알 방법이 없다. 그것도 서울 한복판에서 직장 여성이 말이다. 부검을 해도 사인조차 알 수 없는 사인불명으로 나왔다.
가족의 부끄러운 치부를 드러낼 수 있어서 책으로까지 낼 생각은 없었다. 시간이 약이다. 세월이 흐르다 보면 잊히면 그만이다. 그 슬픔의 깊이도 어느 순간에는 평지가 될 것이다. 이번 사건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굳이 자랑도 아닌데 책으로 집필하는 이유는 제2의 테오도라를 한 사람이라도 줄이려는 것이 나의 첫 번째 목적이다. 그다음이 동생의 억울한 넋을 달래주는 것이 두 번째이다. 세 번째는 오빠로서 동생에게 속죄하는 일이다. 이 책은 총 3권으로 구성되었다.
“하나님 아버지 미안합니다. 저희 딸을 아버지께 맡기오니 영생으로 받아주세요! 딸아 편히 잠들 거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부디 하늘나라에서는 영면을 취해라”
볼펜으로 또박또박 써 내려간 테오도라 어머니의 편지는 A4 용지의 절반을 채우지 못하였다. 딸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써 내려간 편지에는 어머니이기 이전에 나이 든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가 가득하였다. 힘이 잔뜩 들어간 글씨체는 진했고 많이 흔들려 보였다. 부모와 자식 간의 정을 하나님 앞에 호소하고 있었다. 또박또박 써 내려간 활자들은 저마다 간절함을 품고 흐느끼고 있었다. 마지막 미사에서 엄마는 딸에게 미안함을 편지를 읽으며 애절하게 전하고 있었다. 그렇게 사랑하는 나의 동생은 우리 곁을 떠나갔다. 테오도라라는 이름으로 된 납골 항아리에 담긴 채 서울 외곽의 한 추모공원에 안치되었다.
검은색 정장의 흰색 장갑을 낀 직원의 손에는 스크루 드라이버가 쥐어져 있었다. 4개의 나사가 4개의 모서리를 조이는 데는 채 1분이 걸리지 않았다. 직원의 손길은 무겁고 정중하였지만 능숙함을 잃지 않았다. 퇴근시간이 임박해서인지 나사를 조이는 속도와 정교함은 놀라웠다. 그렇게 테오도라는 천주교실 2층 라인의 중간쯤에 한 장의 사진과 한 장의 편지와 함께 영원히 잠들었다.
금요일 저녁 1박 2일의 무인도 여행을 마치고 일행과 함께 유진상가 근처에서 삼겹살로 뒤풀이를 하였다. 오랜만에 소주에 삼겹살로 금요일 저녁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 순간에도 동생은 서울이라는 거대한 무인도의 어느 건물 4층에 100일째 미동도 없이 잠들어 있었다. 건물 주변에는 악취가 진동하기 시작하였다. 갑자기 초여름 날씨로 변하였고 경북 영천은 30도를 넘어섰다는 것이 뉴스가 되었다. 4층에서 악취가 난다는 주민의 신고는 한 달 전에도 있었지만 무시되었다. 무시된 악취는 다시 주민들에게 신고를 하게 만들었다. 테오도라의 죽음은 30도라는 온도를 빌어서 마침내 세상에 알려졌다.
어린이날 황금연휴가 시작되는 토요일 아침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샤워를 하고 전주의 결혼식장으로 향하였다. 시간은 7시를 약간 넘어서고 있었다. 정체를 예상하여 서둘러 출발하였다. 황금연휴와 겹쳐서 7시인데도 정체가 시작되었다. 평소 이용하던 구리 판교 간 고속도로를 포기하고 중부고속도로로 진입하였다.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반대로만 따랐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내비게이션을 따라 운전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경기도를 벗어나는 데만 3시간 이상이 걸렸다. 간밤의 악몽은 숙취보다 더 나를 괴롭혔다. 도로는 설 명절의 정체를 능가하였다. 결국 전주에 도착하니 결혼식은 끝났고 연회장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다.
점심식사는 갈비탕이었다. 호텔 음식이 그렇듯이 갈비탕의 갈비는 뼈를 서너 개 발라내면 먹을 게 없었다. 두 그릇을 게 눈 감추듯 비우며 오랜만에 만난 친지들 간에 인사를 주고받았다. 물론 신랑 신부와의 인사도 식당에서 이루어졌다. 서울에서 내려온 하객들은 나처럼 그렇게 늦게 도착하고 있었다.
사고는 식사가 끝나갈 무렵에 전해졌다. 호텔의 테이블은 원탁이어서 테이블 당 8명 정도가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늦은 시간이어서 하객은 다 돌아가고 가족과 친지들만 남았다. 내 바로 옆에 앉아있던 사촌 여동생이 전화 통화를 하다가 갑자기 대성통곡을 하며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나의 촉수는 빠르게 더듬거리기 시작하였다. 간밤의 악몽과 아침의 두 개의 넥타이가 먼저 촉수에 반응하였다. 넥타이중 하나는 검은색이었다. 나는 그 넥타이를 한참 동안 만지작거리다 둥글게 말아서 옷장 한쪽에 찔러 두었다. 기분이 참 묘하였다. 악몽 또한 평소에는 꾸지 않던 진기한 것이었다.
그렇게 테오도라의 사망 소식은 경찰서에서 가족에게 전달되었다. 서울이라는 무인도에서 세상으로 나오는 방식은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순간 호텔의 식당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울음바다로 변한 호텔의 식당에서 나는 무언가를 해야만 하였다. 나는 동생의 전화기에 찍힌 번호로 다시 확인 전화를 하였다. 동작 경찰서 경찰관과 통화가 이루어졌다. 010으로 시작하는 휴대전화 번호였다. 그래서 보이스피싱을 의심하였다. 제발 보이스피싱이길 바라던 나와 가족 친지들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렇게 해서 100일 만에 테오도라의 죽음은 가족들에 알려졌다. 화창하고 화사하기만 한 봄날의 하늘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아무튼 토요일 오후에 나의 하늘은 무너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그것도 나에게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사촌들은 전주역에서 입석으로 서울로 급히 올라갔다. 나는 테오도라의 어머니를 태우고 집에 들러 장례준비를 할 수 있는 채비를 갖추기까지 기다렸다. 테오도라의 어머니는 생각과는 달리 침착성을 잃지 않았다. 믿음의 힘으로 버티고 있었다. 7시간을 운전한 나에게는 잠깐의 휴식이었다. 다시 서울로 4시간의 운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허리디스크 통증은 나를 계속 압박하고 있었다. 4시간 만에 서울의 동작경찰서에 도착하니 테오도라의 오빠 부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신원 확인은 끝난 상태였다. 1시간 이상의 진술 조서를 작성하고 바로 시신이 안치된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 시신의 훼손 상태가 심하여 차마 볼 수가 없었다. 빈소도 차리지 못하고 테오도라는 떠나갔다. 피붙이 하나 없는 가엾고 처량한 영혼이었다. 무신론자인 내가 신의 가호를 빌고 있었다. 안타깝고 있을 수 없는 죽음 앞에서 나의 영혼도 무너져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녀의 죽음은 처절하고 아프게 비참함을 유지한 채 슬픈 현실로 나오고 있었다.
어린이날 황금연휴가 끝나고 화요일 오전에 부검이 이루어졌다. 부검의들도 연휴를 즐겨야 했기 때문이었다. 예상대로 사인불명이었다. 오후에 발인과 동시에 새로 생긴 서울의 화장장에서 화장이 이루어졌고 서울 외곽에 안치되었다. 새로 생긴 화장터는 주민의 반대로 납골당은 없었다. 단지 화장만 가능하였다. 시설은 현대식으로 깨끗하고 위치도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서울시민이어서 화장 비용은 저렴하였다. 모든 절차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었고 산자는 각자의 몫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었다. 깊은 슬픔은 여기저기 허공 속에서 흐느끼듯 허우적거릴 뿐이었다.
테오도라는 화장을 마치고 벽제로 향하는 버스의 기사 뒷좌석에 실려 있었다. 납골 항아리에 담겨 보자기에 싸인 채였다. 나는 서초에서 벽제까지 버스로 이동하는 동안 그 항아리를 안고 있었다. 항아리가 깨질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동생이 들어있는 항아리는 처음에는 미지근하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뜨거워졌다. 그렇게 본인의 억울함을 체온으로 전해오고 있었다. 나는 온몸으로 그 체온을 느끼고 받아들였다. 산자가 죽은 자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인사였고 대화였다. 죽은 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벽제 인근에 오자 그 체온은 싸늘해지고 있었다. 나는 끝까지 눈물을 눈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다. 어머니 죽음 때와 마찬가지였다. 나에게 죽음은 삶의 연장이고 또 다른 시작일 뿐이다.
한 사람의 죽음이 갖는 의미는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 달려있다. “어머니가 죽었다”로 시작하는 까뮈의 이방인에서 느낀 무책임하고 비도덕적인 절망이 엄습하였다. 뉴스나 소설책에서 접할 수 있는 일이 지금 내 앞에서 현실이 되어 펼쳐지고 있었다. 그 현실은 테오도라와 나와의 관계를 집요하게 연결하고 있었다. 그렇게 연결된 관계에서 눈물도 없는 절망의 늪에 빠져들고 있었다. 지금 내 앞에 펼쳐지고 있는 세상에는 나와 타인이라는 두 가지 부류의 인간만이 존재하였다. 테오도라는 철저하고 비참하게 타인으로 죽어갔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무인도는 젊고 아름다운 테오도라의 몸에서 사정없이 악취를 뽑아내고 있었다.
슬프고 부끄러운 가족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내기까지는 많은 고심이 있었다. 하지만 제2의 테오도라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용기를 내었다. 책은 총 3권으로 제작되었다. 끝으로 부끄러운 이야기들이 책으로 나올 수 있도록 지구 반대편에서 응원해주고 격려해준 아내와 아들 그리고 사냥하는 고양이 둘째 아들 단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100일간이나 무단결근을 해야만 했던 테오도라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한 속죄의 마음을 가족을 대신해서 전한다.
프롤로그
6부, 아카시아 향기
1장, 짙어지는 계절
2장, 분홍색 수의
3장, 직업으로서의 장의사
7부, 인구 천만의 무인도
1장, 사승봉도
2장, 검은 머리 물떼새
3장, 외로움
8부, 100일간의 무단결근
1장, 간호사
2장, 퇴사
3장, 상실
9부, 1시간 20분
1장, 떠나는 자
2장, 남은 자들
3장, 강변북로
10부, 체온과 메시지
1장, 추억
2장, 복대 내놔!
3장, 퇴로 없는 퇴로
에필로그
알고 있니? 벌써 5월이야! 아카시아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어. 그 강렬한 향기는 살아있음의 몸짓이야. 너에게 100일 동안이나 내일이 오지 못하게 해서 미안하다. 멈춰버린 시계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 하늘나라에선 매일 빠짐없이 너의 몫의 내일을 맞이하기를 바란다. 5월의 아카시아는 그 진하고 강한 향기를 여지없이 뿜어내고 있다. 주렁주렁 매달린 하얀 꽃들은 탐스러운 포도송이처럼 보인다. 그 향기가 테오도라의 몸에서 나왔던 악취를 빨아드려 중화시켜주기를 바라본다.
오후 한 시에 장례식장을 출발한 버스는 양재 IC에서 긴 정체로 비상등이 깜빡이는 소리만 요란하였다. 왼편에는 현대와 기아의 사옥이 쌍둥이 빌딩처럼 붙어있다. 기아빌딩 옥상에는 생뚱맞게도 태극기가 홀로 나부낀다. 애국심이 대단한 회사다. 버스는 청계산 터널 우측 편에 서울 추모공원으로 가는 터널로 진입한다. 상당히 긴 터널이었다. 터널을 나오자 마침내 추모공원의 화장장이다. 이미 한 대가 와 있었다.
화장을 마치고 일부는 집으로 돌아가고 일부는 다시 버스에 오른다. 버스는 벽제의 납골당으로 향한다. 기사의 바로 뒷좌석에 놓인 테오도라는 보자기에 싸여있다. 나는 항아리가 깨질까 봐 벽제까지 테오도라를 안고 갔다. 화장 후 냉각과정을 거쳐 차가웠던 테오도라는 다시 열을 발산하기 시작하였다. 항아리는 점점 뜨거워졌다. 버스는 서울을 남북으로 관통하려고 애쓴다. 강변북로에 접어들고 나서야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벽제에 도착해서야 동생은 다시 싸늘해졌다. 버스에서 한 시간 정도 뜨거운 온기로 체온처럼 내뿜던 그녀의 몸짓들의 언어를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테오도라가 오빠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15개월 전 마지막으로 만나서 택시를 타고 떠나가던 그때 커피숍에서 껌을 뱉어내듯 내뱉던 그 언어 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언어들은 슬픔이었고 외로움이었고 우울이었다. 그래서 더욱 가슴이 아프다. 붙잡아주고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속죄하기에는 너무나 먼 길을 떠나버렸구나! 2번 화로 7호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너는 그렇게 떠나버렸다. 남겨진 자들은 무언가를 붙들고 살아갈 힘을 찾아 나설 것이다. 5월의 아카시아는 너무나 강렬하기만 하다. 물론 그 향도 조만간 너처럼 스멀스멀 어디론가 세어나갈 거야. 그래서 더욱 아카시아 꽃과 향이 서러워 보이는구나! 그 하얀 꽃송이들을 너에게 전하고 싶다. 향기와 함께....
2019년 5월 20일
호반의 도시 춘천에서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서울 선정릉 [모두의 캠퍼스] 강의 신청하기 / 월출산 국립공원 카페 [기억] 강의 신청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