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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Nov 20. 2019

#41주 차, 슬럼프! 너도 내가 처음이지?

매주 한 권 책 쓴다(2019년 11월 18일)

#41주 차, 슬럼프! 너도 내가 처음이지?


Note: 하루 만에 책 쓰기로 매주 한 권 책 쓰기 프로젝트는 나의 평생 프로젝트로 2019년 2월 11일 월요일에 춘천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죽기 전날까지 멈추지 않을 것을 소망한다. 만일 이 프로젝트가 중단되었다면, 나는 이미 질병과의 전투에서 1패를 기록하며 다른 별로의 고독한 여행을 시작하였을 확률이 아주 높다.




@ 부제: 가장의 어깨는 무거웠고 마음의 무게는 더욱 무거웠다. 그는 결국 번 아웃되었고 매일 글쓰기로 충전 중이다.

@ 분량: 이북 기준 총 200페이지(폰트 22)

@ 판매: 블로그 서점(https://blog.naver.com/jebyi)





프롤로그


쇼펜하우어가 말했다. "인생 여정의 99%가 비극의 연속이다."


와인 잔이 출렁였다. 깊고 제법 밝은 밤이었다. 외로움은 노크도 없이 갑자기 그가 들고 있던 와인잔에 드리웠다. 크기나 깊이를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길고 긴 런던의 겨울이 막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겨울의 터널에는 어둠과 우울이 일상의 리듬을 타고 있었다. 겨울을 견디어내는 일은 리듬을 타는 것이었다. 리듬을 잃지 않은 대가는 해마다 찬란하였다. 아름다운 봄이 그 리듬을 밀어내기 때문이다. 수선화와 시작되는 런던의 봄은 겨울을 견딘 보상이자 선물이었다. 봄의 리듬은 겨울의 그것과는 다른 경쾌한 비트였다. 그 또한 봄의 리듬을 즐길 생각에 마음이 부플어 오르고 있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화창한 봄날이었다. 이미 어두워졌고 밤이 찾아왔지만 봄의 밤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정원으로 난 거실의 창을 통해 봄밤과 대면하려던 찰나였다. 별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갑자기 이상한 감정과 대면해야 했다.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감정은 묵직하였다. 그 감정은 닫힌 정원의 창문을 통해 거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무단 침입이었다. 그 감정은 사정없이 그의 와인잔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40대 중반의 에너지가 넘치는 그였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가족도 친구도 직원도 의미 없는 타인이라는 생각이 강타했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느낌이 이런 거였구나! 그는 혼자서 와인 잔을 기울이며 살짝 흔들었다. 그 안에 작은 파도가 일렁였다.
 
 그 파도 속에 일렁이는 감정은 외로움이었다. 외로움의 파장은 불규칙했고 길지 않은 파동을 남긴 채 잔잔해졌다. 그는 끝내 와인 잔을 비우지 못하고 내려놓았다. 감자기 명치 부근에 통증이 오면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신선한 산소가 필요했다.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도망치듯 뛰쳐나왔다. 어둡지도 환하지도 않은 봄 밤과의 첫 조우였다. 그의 불규칙한 심호흡이 몇 차례 지속되다 진정이 되었다. 들숨에는 슬픔이 날숨에는 외로움이 묻어났다. 그는 습관처럼 밤하늘의 북두칠성을 찾고 있었다. 그의 아내와 아이는 2층에서 잠들어 있었다.
      

"It is what it is" 
인생은 그렇고 그렇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에너지가 넘치던 그에게 슬럼프가 찾아왔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피로가 엄습하곤 하였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와도 만사가 귀찮아졌다. 물론 아무도 반겨주지 않았다. 서열 3위의 고양이마저도 그 시간에는 잠을 잤다. 퇴근해서 그가 첫 번째 하는 일은 고양이를 깨우는 것이었다. 야행성인 고양이는 낮에 자고 밤에 활동한다. 그런데 그의 고양이는 깨우지 않으면 어둠이 찾아와도 일어나질 않는다. 녀석은 마지못해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켠다. 사지를 늘어뜨리며 스트레칭을 한다. 겨우 일어나서도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하나마나한 고양이 세수를 마치고 어슬렁거리며 밖으로 나간다. 고양이가 나간 그의 집에는 적막으로 가득하다. 식사시간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으면서도 웃음소리도 대화도 없다. 물론 대화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유독 침묵에 맥을 못 추었다. 침묵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거보다 어색하고 불편했다. 그리고 그를 끝도 없이 괴롭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그의 아내가 쓰러졌다. 구급차가 왔고 병원으로 실려 갔다. 그런 일이 잦아지면서 그 또한 알 수 없는 우울로 시달렸다. 그렇지 않아도 힘이 들었는데 아내마저 쓰러지면서 그는 삶의 의미를 곱씹어보기 시작하였다. 그의 아내 못지않게 그도 힘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아내의 마음속에서 희미해져 가는 남편이었다. 그것도 무늬만 남편이었다. 그가 경제력마저 없었더라면 그는 더 일찍 포기를 당했을 것이다. 가장이라는 자리는 그의 어깨를 짓누를 뿐이었다.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가장은 돈이나 벌어오면 그만이었다.      


죽음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죽고 싶었지만 죽는데도 용기가 필요하였다. 세월이 지나면 어차피 죽을 것이다. 죽는 것은 좀 더 먼 미래일로 남겨두었다. 그는 삶의 의미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아내는 아내대로 그는 그대로 슬럼프를 견뎌내야 했다. 그 일마저도 각자의 몫이었다. 다독여 주고 공감해 주지 못하는 아픔은 더욱 큰 상실로 다가오기 시작하였다. 그는 자신마저도 토닥이며 위로해줄 힘조차 없었다. 최악의 슬럼프는 그를 더욱더 깊고 촘촘한 늪으로 빨아들였다.      


선택은 언제나처럼 그의 아내 몫이었다. 몇 년 후 그는 결국 퇴출 명령을 받았다. 아내 성씨를 사용해야만 했던 것도 모자라 버림까지 당한 것이다. 기가 차고 하늘이 무너졌다. 아내의 선제공격은 매서웠고 무서운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세상이 허무했다. 그는 길거리의 버려진 개나 고양이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신세가 버려진 개나 고양이와 다를 바 없었다.      


 가장들도 남편이기 이전에 남자다.


40대 중반부터 시작되는 가장들의 수난은 아내들의 호르몬 변화와도 관련이 있어 보였다. 그렇다면 아내들은 왜 남편을 바퀴벌레 보듯 하거나 폐기 처분하고 싶어 하는 것일까? 그 이유가 궁금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는 여러 경로로 그 과정들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자칫하면 거대담론에 빠질 수도 있다. 성대결로 수많은 여성들로부터 뭇매를 맞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기로 하였다. 수많은 중년 가장들의 힘든 어깨에 올려진 벽돌들을 내려주고 싶었다. 그들의 가슴속에 한으로 남아있는 응어리들을 풀어주고 싶었다. 여자만 한이 맺힌다는 편견을 깨 주고 싶었다. 가장들도 남편이기 이전에 본능과 감정을 가진 남자다. 한 때는 꿈 많던 소년들이었고 건강하고 혈기 왕성한 청년들이었다. 집에서는 아무도 무시하지 못하는 귀한 아들이었다. 그런 가장들이 죄인이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이제라도 그 가장들의 서러움을 대변해주고 싶다.      


 최소 1주일에 한 번은 배터리를 충전을 해야 살아갈 수 있다. 


그는 정말 방전된 폐 배터리였다. 버리기에는 아까워서 충전을 해서 쓰고 있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그렇다고 휴대폰처럼 새로운 배터리로 교체할 수도 없다. 그는 최소 1주일에 한 번은 충전을 해야 살아갈 수 있다. 그 충천 방법은 전기 플러그에 전원을 연결하는 것이 아니었다. 좀 특별한 방식으로 충전 중이었다. 그 방식은 바로 글쓰기였다. 매주 한 권 책 쓰기 프로젝트는 그만의 충전 방식이다.      


그가 중점을 두고 싶은 글쓰기 대상은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중년의 가장들이 느끼는 압박과 서러움들이다. 세상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그들이 타깃이다. 요즘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가장의 어깨만큼 무겁고 고달픈 어깨가 또 있을까? 이제라도 그 가장들의 무거운 어깨에서 벽돌 한 장이라도 내려 주고 싶다. 그들이 왜 그토록 외롭고 힘든지에 대한 지극히 사적인 분석도 잊지 않았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이 보는 다른 가장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페미니즘이나 남성우월주의 같은 성대결 양상에는 관심조차 없다. 늠름하고 믿음직해야 만 했던 가장들도 힘들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그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제법 많은 가장들을 만났다. 그 가장들의 솔직한 심경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여성 가장도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남편이자 가장인 남자 사람들로 한정하였다. 끝으로 이 황당하고 거대 담론이 될 수도 있는 이야기들이 한 권의 책으로 나오기까지 지구 반대편에서 응원을 아끼지 않은 그와 그의 가족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목차:

  

프롤로그     

1화. 번 아웃

2화. 죽을 용기

3화. 충전 Please!

4화. 가장들의 어깨

5화. 한여름 밤의 꿈

6화. 버림받는 것들

7화. 잃어버린 세월

8화. 구석기시대

9화. 파트너십

10화. 공공 돌봄 서비스

11화. 불편한 진실

12화. 바람은 혼자?

13화. 아내들은 떳떳하다!

14화. 일탈을 꿈꾸다

15화. 글쓰기로 일탈하다     

에필로그




에필로그     

대부분의 가장들은 어깨가 쳐 저 있다. 강하지만 약하고 당당하지만 외롭다. 언제나 혼자이고 불안하다. 누구라도 좋으니 손이라도 한번 따뜻하게 잡아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세상에는 많은 부류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성별부터 인종과 국적은 물론 사용하는 언어까지 다르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가정을 이루고 사회를 이루고 국가를 이룬다.  그 국가들이 모여서 동서양을 나누고 지구촌이라는 행성 하나를 완성해낸다. 그 지구촌의 일중 하나의 이슈조차 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바로 가장들의 문제다. 오랫동안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의 상징처럼 묘사되어온 그들이다. 도매금으로 매도되어 손가락질당하는 그들이지만 그 흔한 노조 하나 없다. 오롯이 혼자 그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가장의 어깨가 무거워질수록 마음의 무게 또한 무거워졌다. 대부분의 가장들은 힘들지만 하소연할 때도 없다.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한마디 하는 정도가 전부다. ”세상 뭐 있어!” 그렇게 가장들은 자포자기한 상태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다. 직업전선과 사회에서 심지어 가정에서도 누구 하나 토닥여주는 사람이 없다. 그들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외롭고 불안하다. 생각지도 않던 질병까지 몰려온다. 존재 자체가 위태롭다. 쓰러지면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가 엄습해 온다. 그 공포마저도 강한 사람이 되어 그들이 감내해야 할 몫이다.      


그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그는 결국 번 아웃되었고 다른 별로 여행을 떠날 수도 있었다. 그 또한 외로웠고 몸과 마음은 흘러내려서 감당할 수 없었다. 희망이라는 단어는 고문이었을 뿐이었다. 그런 그가 살아갈 수 있는 돌파구는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다른 가장들 또한 무언가를 찾아 나서야만 했다. 살기 위한 동아줄 하나를 잡지 못하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한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가장들은 다양한 방법들로 무서운 현실에서 각자도생을 하고 있었다. 그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매일 글쓰기로 충전 중이다. 그 충전의 과정은 지난하고 언제까지일지 모른다. 아마도 그가 죽을 때까지 평생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만큼 모든 것이 무너졌고 고갈되었다. 그 평생이 내일이 될 수도 있다.     


살아가야 할 이유조차도 죽을 용기가 없어서였다.


그의 삶 또한 마찬가지였다. 다른 가장들 못지않게 우여곡절이 많았다. 질병으로 인한 우울이 극에 달한 적도 있었다. 살아가야 할 이유조차도 죽을 용기가 없어서였다. 죽음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그는 인생의 항로를 틀 수밖에 없었다. 그 용기의 끝을 알 수는 없지만 죽을 용기로 다시 살아보고 싶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뭐라도 해보고 싶어 졌다. 어렸을 때부터 뭐라도 될 놈이라는 소리를 듣고 자란 그였다. 그렇게 선택한 그의 항로는 기존의 모든 길들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목숨보다 소중했던 가정에서도 벗어났고 용기가 부족해서 포기했던 죽음에서도 벗어났다. 그리고 오롯이 자신의 소리와 감정에만 귀를 기울이며 살아가고 있다. 그는 자신마저 사랑하지 못했던 강한 척하는 나약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사업을 하고 가정을 경영했던 것이다. 그것도 온갖 잘난 채는 다하며 소신이랍시고 주장 또한 굽히지 않았다.  

   

참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고 세상이다.     


한마디로 최악의 남편이자 가장이었다. 열심히만 산다고 좋은 남편, 좋은 가장이 되지 않는 사실도 뒤늦게 깨달았다. 형광등처럼 언제나 한 템포 늦는 그였다. 아내 말만 들었어도 그의 인생이 이렇게까지 제로에 와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운명이었다. 제로라는 인생에 감사하게 될 줄은 선견지명이 있다고 자부하는 그도 몰랐다. 이제는 잃을 것도 두려울 것도 없다. 진정한 자유인이 된 것이다. 참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고 세상이다.     


그는 오늘도 돈키호테처럼 자신만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간다. 많은 사람들의 손가락질도 받고 비웃음을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다. 글을 쓰면서 바닥을 친 자존감이 벌써부터 정점을 찍으려고 발버둥 치고 있다. 글을 쓴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는 더 이상 우울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그의 사전에 더 이상 절망도 포기도 없다. 그는 사냥감을 포착하면 결코 놓치지 않는 지구력과 끝까지 소화해내는 끈기가 있다. 그는 오늘도 카페에서 엉덩이로 글을 쓰고 있다. 세상의 온갖 고정관념과 편견에 맞서고 있다. 거대담론을 건드려 뭇매를 마저도 포기할 생각이 없다. 어차피 그는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었다.      


모든 사회 문제는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이제는 그동안 금기시했던 주제들을 꺼내 들고 싶다. 그 첫 시도가 이혼이었고 두 번째는 외도다. 사회 문제는 결국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건강하지 못한 가정은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없다. 건강하지 못한 사회는 건강한 나라를 만들 수 없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만큼이다 말이다. 그러한 사회문제들을 들춰내서 빨랫줄에 널어보고 싶다. 물론 빨래집게를 사용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래서 토론의 장으로 끌어내려한다. 사회가 바뀌려면 가정부터 건강해져야 한다. 건강한 가정을 통해 사회변혁에 일조하고 싶다. 지질한 에세이도 좋지만 뜨거운 감자들을 하나씩 꺼내어서 만지작거리고 싶다. 화상 좀 입어도 상관없다. 화상이야 오래가겠지만 뜨거운 감자는 금방 식는다.      


방전된 그의 배터리를 충전해가는 그만의 방식이다. 그래서 오늘도 카페에서 엉덩이로 발칙한 일탈을 꿈꾼다. 정의는 불의를 이긴다는 사실을 글로서 보여주고 싶다. 사회의 약자들을 위해 사회변화와 변혁을 꿈꾸고 있다. 그는 오늘도 진부하지만 이 말을 하고 싶었다.      

“펜은 검보다 강하다.”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       

    

2019년 11월 18일

의정부 신곡 별 DT에서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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