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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Dec 05. 2019

영국의 교도소에 가다!

영국의 오만과 편견 1권 이방인

8. 추방 대기 중인 H의 면회   



돌이켜보기 싫은 아픔도 세월이 흐르면서 희석되는 줄 알았다. 강산이 한번 변한다는 10년이 지나면서도 그 아픔은 희석되지 않는다. 또렷한 아픔은 강산이 몇 번은 더 변해야 그나마 추억이라도 될 수 있을까!


H와의 만남은 어쩌면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H는 그의 직원으로 등록이 돼서 work permit 비자를 받은 Y의 친구였다. Y는 어학연수 시절 그의 집에서 방 하나를 셰어 하던 여학생이었다. 그 뒤로도 H는 자주 만났다. 그녀는 자신의 엄마와 나이가 비슷한 남자와 결혼을 하였고 같이 살고 있었다. H의 집은 족히 3백 년은 되어 보이는 오래되고 큰 집이었다. 대문 색이 노란 병아리색이어서 아직도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있다. 흰색이나 진한 와인색이 보통인 영국 집들에서 노란색 현관문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의 집 정원에는 축구골대를 놓아도 될 만큼 넓고 길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H의 남편은 유독 그의 아이를 예뻐하였다. 그녀의 남편은 이미 한국에 장성한 자녀들이 있었다. H는 그의 다섯 번째 부인이라고 태연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벌써 네 번의 이혼 경력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특이한 사람이었다. 그의 과거야 어떻든 한 가지만 빼고는 사람 하나는 좋아 보였다. 그 한 가지는 여기서 밝힐 수는 없지만 중독성이 강한 것이었다.


그는 유독 술을 좋아하는 세프였다. 젊은 부인의 생일이 되면 왕비 못지않게 한상 차려 내는 제법 자상하고 멋진 남편이었다. 그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H의 결혼을 말리고 반대하였지만 둘은 거침이 없었다. 혼인 신고만이라도 나중에 하라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사랑의 힘 앞에서 아무도 그들을 제지할 권리도 힘도 없었다. 20년 가까운 나이 차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실제로 H의 남편은 그녀를 극진하게 대해 주었다. 왕비가 따로 없었다.        


불법체류자나 불법 노동자가 수용되어 있는 수용소는 무늬만 수용소였지 실상은 교도소였다. 3일간의 짧은 기간 동안 그들이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없었다. 추방당하는 편도 비행기표마저도 자비 부담이었다.   


H와 그의 남편은 10년 가까이 알고 지내는 몇 안 되는 한인 가족이었다. 그의 아내 또한 H를 친동생처럼 좋아하고 챙겨주었다. H를 생각하면 뭐를 먹다가 걸린 그런 아픔이 전류처럼 흘렀다. 그런데 어느 날 H의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H남편의 목소리는 희미하게 떨리면서 다급하였다. 그녀가 식당에서 일하다가 급습한 이민국 직원과 경찰에게 끌려갔다는 것이다. H는 정식으로 일할 수 있는 비자가 없는 상태였다. 한인 타운이나 런던 시내의 한인 식당에 이민국의 직원들이 급습하면 불법체류자는 아니지만 일할 수 없는 비자일 경우 그 자리에서 끌려가서 수용소에 수용된다. 말로만 듣던 그 수용소에 그녀가 억류되어 있다는 것이다. 3일 이내에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한국으로 추방된다고 하였다. 그날 당장 그는 아내와 함께 그 수용소를 찾아갔다. 런던에서 3시간 정도 거리의 북쪽에 있는 수용소는 말이 수용소였지 완벽한 교도소였다. 교도소를 수용소의 일부로 사용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들어갈 때 신분증 카피와 신분 확인은 기본이었다. 그들은 국가에서 고용한 일개 직원임에도 불구하고 태도는 상당히 강압적이었다. 2단계의 지문과 생체인식 시스템에 동공 사진까지 찍어야 했다. 수용자를 바꿔치기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이었다. 기분이 상당히 나빴지만 미소로 그 참담함을 표현해야 했다. 면회를 시커 줄지 말지는 전적으로 그들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이었다. 모래알 같은 개인은 국가권력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다소곳까지 해야만 한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었지만 여전히 미소를 유지해야만 했다.


면회 시간은 딱 2시간이었다. 면회소에 들어가자 이미 H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H는 그의 아내를 붙잡고 대성통곡할 줄 알았다. 나이 차이는 제법 나지만 친언니처럼 따르던 언니가 그 먼 곳까지 면회를 온 것이었다. H는 의외로 담담했다. 그녀의 남편과 식당의 사장이 변호사를 통해 손을 쓰고 있다고 하였다. 그녀의 얼굴에는 근거를 알 수 없는 불길한 여유가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희망이 전혀 없음을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수용소 면회소에서 H와 먹은 컵라면은 아직도 상표까지 또렷하다. 안락한 소파에 앉아서 먹었던 컵라면이 그녀와 영국에서의 마지막 식사가 될 줄은 그녀가 잡혀가가기 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못 했다. 2시간 동안 어깨를 짓누르는 현실은 무겁고 아파왔다. 꿈이기를 바라기에는 상황 설정이 너무 선명하고 각자의 역할들이 완벽했다.


그는 이미 이민국 직원들을 여러 차례 상대한 경험이 있었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흐르고 있음을 촉수들이 먼저 알아차렸다. 영국에서는  법망이라는 그물을 빠져나간다는 일이 한국처럼 녹녹지 않다. 변호사가 아니라 총리라도 불가능하였다. 두 시간의 면회는 넓은 면회소에서 접견이 이루어졌다. 면회소는 수백 명의 수용자와 면회객들로 정신이 없었다.  면회소 내에서는 간단한 음식도 사 먹을 수 있었다. 대학의 구내식당 같은 분위기였다. 플라스틱 의자 대신에 소파들이 놓여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한국의 S라면이 먹고 싶다고 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구내식당에서는 S라면을 팔고 있었다. 그는 S라면 3개를 사서 컵의 뚜껑을 열고 뜨거운 물을 받아다가 부었다. 작은 컵라면이어서 겨우 허기를 면할 정도였다. 생각해 보니 그와 그의 아내도 그날 먹은 것이 거의 없었다.  

    

H와 수용소에서 S라면을 먹으며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그녀의 해맑은 얼굴 속에서 보일 듯 말 듯 한 슬픔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녀 스스로도 방법이 없음을 알고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한 듯 보였다. 주변에는 많은 면회자들이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있었다. 그들 자신도 면회자들도 말은 하지 않지만 이미 결과는 나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루가 지나고 있으니 이틀 후에는 H의 국적기인 대한항공을 타야 한다. 영화에서 많이 본 장면 그대로다. 항공료는 추방당하는 자들이 결제해야 한다. 그 정확한 절차까지는 그도 알지 못하였다. 마지막 탑승 수속이 끝나면 이민국 직원과 경찰이 내리면서 항공기 문이 닫힌다. 형사범이 아니기 때문에 경찰이 한국까지 동행하지는 않는다. 그도 어학연수 시절 런던 히스로에서 억류되어 그 절차 직전가지 간 적이 있다.        


H와의 작별 시간이 되자 담당 경찰인지 이민국 직원인지 신분을 알 수 없는 사람이 와서 H에게 면회시간 종료를 알린다. H는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본다. 그러고 보니 H가 입고 있는 것은 사복이 아니었다. 추방 대기자들은 죄수복은 아니지만 마치 한국의 찜질방에서 입는 것처럼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그 옷들은 헐렁하였고 벨트나 지퍼가 없었다. 색상은 연한 스카이 블루였다. 면회를 마치고 나오는 절차 또한 간단치 않았다. 들어올 때와 지문과 동공 사진이 일치하지 않으면 수용소에서 나갈 수 없다고 안내판 곳에 표기되어 있었다. 수용자를 바꿔치기할 생각은 애당초 말라는 것이었다. 그 수용소에는 대부분 영국의 식민지 국가들의 국민들이었다. 인도계와 중국계가 가장 많아 보였다. 한국인은 그녀가 유일해 보였다.     


몇 해전 크리스마스이브에 두 번째 영국 입국시도가 있었지만 그녀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다시는 영국 땅을 밟을 수 없는 이방인이 된 것이다.


수용소를 나오면서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하였다. 사이드 미러로 보이는 수용소 하얀 담장 위로 둘러 싸여 있는 철조망의 두께가 그녀의 꼬인 인생만큼이나 슬퍼 보였다. 이틀 후 그녀를 태운 대한항공 비행기는 선명한 태극 마크를 보여주면 그의 지붕 위를 지나고 있었다. 시간은 저녁 7시경이었다. 그 비행기 안에는 H가 타고 있었다. 물론 그녀는 더 이상 스카이 블루의 헐렁한 옷을 입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녀도 그와 자신의 집을 내려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의 집과 그녀의 집은 1마일도 채 안 되는 거리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몇 년이 지난 뒤 미국에 살다가 남편을 만나기 위해 영국 입국을 시도하였지만 런던 히스로 공항 문턱을 넘지 못하고 다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고 한다. 그 소식은 이웃에 사는 친구인 Y를 통해 들었다.  

    

우주에서 보면 개미보다 작은 점 하나인 곳이 지구별이다. 그곳에서 누군가는 주인이고 누군가는 이방인이 되어 추방되어야만 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지구별에는 권력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들로 나뉜다. 권력에서 멀어진 자들은 각종 형태의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겪는 아픔은 때로는 상상을 초월한다. 언제부터 지구라는 행성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고 부족을 만들고 국가체계를 완성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구 상의 돌 하나 풀한 포기에도 주인이 생겨났다. 누군가는 주인이고 누군가는 이방인이 되어 추방되어야만 하는 지구별의 작은 섬나라가 무서워지기 시작한 시점도 그때부터였다. 그렇다고 그의 아내보다 더 무서운 것은 결코 아니다. 그 작은 섬나라가 H를 두 번이나 추방시킨 것이다. 권력을 전혀 갖지 못한 이방인들의 삶은 언제든 추방될 수 있다. 추방되지 않아도 아웃사이더로 살아간다는 일은 불안하고 고통스럽다. 그래도 그들은 자신의 삶을 이방인이라는 아슬아슬한 경계 위에 올려놓을 수밖에 없다. 자신들의 선택이었기 때문에 자신만이 그 무게나 고통을 안다. 그래서 더욱 애잔하고 안쓰럽다.

이방인이 설 자라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국경을 넘나드는 이방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하나의 국가나 사회 도는 기업집단 내에도 이방인들로 가득하다. 기득권에서 아득하게 멀어진 그들의 삶은 내일이 보장되지 않는다. 권력을 향해 몸부림쳐 보지만 아직은 모래알일 뿐이다. 그들에게는 물과 시멘트가 필요하다. 물과 시멘트라는 매개체를 거머쥔다면 더 이상의 나약한 모래알이 아니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은 꿈마저도 사치라는 현실을 알고 있다. 슬프고 고통스러운 현실이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담담하게 견뎌내야 한다.





영국의 오만과 편견 1권 이방인 (2019년 11월 25일 / 하루 만에 책 쓰기로 제작된 책의 일부임)


참고로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반부터 9시 반까지는 삼성동 아지트리에서 "나는 매주 한 권 책 쓴다" 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루 만에 책을 쓰고 매월 또는 매주 책을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 저자처럼 매주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이 15명 이상 되었다. 앞으로도 그 숫자는 늘어날 것이다. 강의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https://www.onoffmix.com/)에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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