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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Dec 06. 2019

영국에서 용모단정, 미혼여성은 금기어다!

영국의 오만과 편견 1권 이방인

9. 인종차별은 명백한 범죄다!


그림 : 남다현

        

가끔 해외여행 중 또는 해외 체류 중 인종 차별을 당했다는 글들이 올라온다. 어떻게 그런 일들이 있을 수 있느냐며 분노한다. 인종차별은 반 인륜적인 갑질이자 명백한 범죄다. 해서도 당해서도 안 되는 것이 인종차별이다.
 


"인종차별이란 사람들을 여러 인종으로 나누고 특정 인종에 대하여 불이익을 주는 것"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이제 해외여행은 제주도 가는 것만큼이나 쉬어졌다. 오히려 제주도보다 더 많이 간다. 해외여행 패키지를 홈쇼핑이나 심지어 쿠팡에서도 팔고 있다. 그는 한국에 돌아온 지 1년이 넘었는데도 꿈에(?) 그리던 제주도도 못 가고 있다. 심지어 그가 사는 곳은 엎어지면 코가 닿을 수도 있는 김포공항 인근이다. 제주도는 물가도 비싸고 이미 육지와 대륙 사람들의 때를 많이 탔다는 이유다. 제주도를 갈 바에야 동남아가 비용이 적게 들 수도 있다. 그는 이미 상당한 마일리지도 비축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소멸될 수 있는 마일리지를 어떻게든 사용하려 잔머리를 굴리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 베트남의 영웅 박항서 감독이 인종 차별당하는 모습을 TV 화면으로 지켜봐야 했다. 마치 자신이 당하는 것처럼 가슴이 아팠다. 그러면서 과거의 아픈 기억들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해외여행이나 어학연수 또는 유학을 통해 외국에 체류하면 흔히 겪는 문제가 있다. 전부는 아니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겪는 일이기도 하다. 바로 인종차별이다. 그도 20년 동안 영국에 살며 많이 당하였다. 가슴 한편에 한(?)으로 남아있다. 언젠가는 인종차별 문제를 꼭 짚어보고 싶었다. 인종차별이라는 단어 자체가 불편하게 다가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단지 그 행위 자체가 비도덕적이어서만은 아니다. “차별” 이란 단어는 옳고 그름이 아닌 "우열"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에게만 자존감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동물처럼 인종이나 민족은 물론이고 국가에도 자존감을 부여한다. 동물들이 낯선 동물을 만나면 누가 강한지 본능처럼 촉수가 먼저 알듯이 말이다.      


영국에서는 "용모단정", "몇 년생 이상", "미혼여성" 등의 용어들을 구인광고에 사용해서는 안 되는 문구들이다.


영국에서 인종 차별은 엄하게 법으로 다스린다. 한국에서는 인종차별 금지법이 어떻게 시행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영국에서는 인종차별과 관련된 발언이나 광고도 할 수 없다. 예를 들면 구인광고에 인종이나 나이 또는 결혼 여부 등을 명시하면 큰일 난다. 인종차별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흔히 사용되는 “용모단정”, "몇 년생 이상", “미혼여성” 등은 절대 사용해서는 안 되는 문구들이다. 하지만 현지에 살지 않는 관광객들은 인종 차별을 당해도 대처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일단 경찰에 신고하고 증거를 수집해야 한다. 휴대폰 녹취록이 가장 좋은 자료다. 증인을 확보해도 그 사람이 적극적으로 나올지는 알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변의 CCTV 여부도 확인하는 것이 좋다.   


유색인종과 백인우월주의의 관계

  

그 또한 이민 초기 수많은 인종 차별을 당하였다. 잡탕밥이나 비빔밥처럼 지구별의 모든 인종이 모여 사는 런던에서는 그나마 차별이 덜한 편이다. 지방이나 시골로 가면 유색 인종 자체가 거의 없다. 물론 버밍햄이나 맨체스터 또는 리버풀처럼 대도시들에는 런던만큼은 아니지만 다수의 유색인종이 살고 있다. 도시에서 벗어나면 거의 토박이 백인들뿐이다. 참고로 백인도 유색인종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기들은 투명인간 행세를 한다. 흰색도 엄연한 하나의 색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피부색이 하얗지도 않다. 거의 붉은색이다. 색으로만 따지자면 오히려 한국 아가씨들의 피부가 더 흰색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색인종“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참고로 영국과 아일랜드의 후손들이 건설한 호주도 마찬가지다. 호주가 오랫동안 유지했던 정책이 백호주의였다. 그 단어 자체에 이미 투명인간들이 때깔 있는 인간들보다 우월하다는 백인우월주의가 깔려 있다.      


영국의 시골 마을에 가면 유별난 아이들이 많다. 호기심에 가득한 눈망울로 자기들과 다른 동양인들을 구경한다. 어린아이들이 특히 심하다. 일단 아이들은 모든 동양인은 중국인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어렸을 때 한국에서도 백인은 미국인이나 양키라고 했던 것과 유사하다. 사실 차이니스라고 하는 말은 인종차별 발언이 아니다. 하지만 ”칭키 “라고 하면 그땐 인종차별이 된다. 예전 서울에서도 2층짜리 양옥집이던 시절 연탄을 난방연료로 사용하였다. 골목마다 연탄재들이 널 부러져 있었다. 그 시절에는 흑인이 서울의 횡단보도에 서 있으면 어린아이들이 ”연탄“이라고 실제로 손가락으로 찔러보기도 하였다. 어른들, 특히 노인들은 ”깜둥이 세끼“라고 놀렸다.      


자칫 잘못하면 가해와도 피해자도 될 수 있는 것이 인종차별의 민낯이다.


인종차별은 어느 나라나 존재하고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인종차별을 당하고 당하지 않고는 안타깝게도 운에 달려 있다. 세상을 호령하는 스포츠 스타들도 예외가 아니다. 몇십 년을 외국에서 살아도 인종차별에 대한 기억이 없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인종차별을 당하면 기분이 좋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자신도 마음속에는 자신도 모르게 쌓여 있는 인종차별 요소들이 숨겨져 있다. 표현만 하지 않을 뿐이다.      


백인을 보는 시각과 흑인을 보는 시각은 그래도 많이 낳아졌다. 하지만 우리보다 경제력이 많이 떨어지는 동남아 사람들을 보면 불법체류자 생각이 먼저 들었던 게 사실이다. 지금이야 많은 동남아인들이 들어와 있지만 20년 전만 하여도 상황은 달랐다. 산업연수생 비자로 들어와 대부분 출국하지 않고 눌러앉았다. 그러면서 불법체류자로 살아갔다. 정부에서는 3D 업종에 종사하는 그들을 묵인하면서 그들이 겪는 것은 인종차별이 아니라 인간 이하의 대접이었다. 툭하면 맞고 월급도 받지 못하는 달이 더 많았다. 신체 일부가 훼손 당하거나 심지어 일하다 죽어도 보상 한 푼 받지 못하였다. 그는 이민전 한국에서 그러한 과정을 지켜보았고 그들의 인권을 위해 현장에서 뛰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들이 가장 잘하는 한국말은 ”사장님 때리지 마세요! “ 와 ”밀린 월급 좀 주세요 “였다. 20년이 지난 지금의 한국에서는 그런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동물들은 낯선 상대를 만나면 자연스럽게 힘겨루기부터 한다. 자신보다 강한지 약한지 직감으로 안다. 강하면 피하거나 굽신 거리지만 약할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우리 인간의 마음에도 이러한 근성이 남아 있다. 그래서 인종차별 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솔직히, 한국인들이 동남아에서 온 노동자들과 미국이나 영국에서 온 백인을 같은 선상에서 놓고 대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상식이 된 지 오래다. 불편하지만 사실이다. 그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이다. 굳이 표현은 하지 않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이미 인종에 대한 우열이 존재한다. 그것이 느껴질 때는 극히 드물지만 가끔은 스스로도 깜짝 놀랄 정도로 그런 감정들이 꿈틀거린다. 물론 전혀 그런 감정이 없는 천사 같은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영국 이민 초기에 실제로 인종 차별을 당하던 악몽은 지금도 생생하다. 하지만 그때에 지금처럼 자존감이 높았더라면 인종차별을 가해오던 아이들과 오히려 친구가 될 수도 있었다.

 

그가 이민 초기당한 인종 차별 한 가지를 예로 들어보겠다. Oxford에서 조금 더 가면 Bicester village는 아주 작은 도시에 명품 아웃렛이 있다. 차가 없던 시절 그곳에 처음 갔을 때의 일이다. 그러니까 거의 20년 전쯤 일이다. 런던에서 Bicester village까지 가는 기차를 타고 내려서 아웃렛까지는 걸어가야 했다. 지금이야 셔틀버스가 자주 운행되지만 그 당시에는 셔틀이 없었다. 문제는 아웃렛에서 볼일을 보고 기차역으로 돌아올 때 발생하였다. 아웃렛에서 기차역까지는 제법 멀었다. 큰길을 따라가면 별 문제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나름 지름길을 찾다 보니 외진 공원과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그 공원은 라운드 어바웃 바로 옆에 있는 펍 뒤에 있었다. 그 펍은 지금도 영업 중이고 테스코가 대각선에 위치해 있다. 음식 맛도 나쁘지 않은 곳이다.       


마침 그 시간이 오후 3시 반쯤이었다.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는 시간이다. 저학년들은 부모나 부모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들이 반드시 픽업을 해야 하지만 5학년이 넘어가면 혼자 다녀도 된다. 그 5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들 서 너 명을 만난 것이다. 그들은 재색 바지에 흰색 셔츠를 입었다. 딱 보니 초등학고 교복이었다. 앞에서 한 아이가 얼쩡거리더니 칭키 칭키를 외치며 약을 올리기 시작하였다. 빠른 걸음으로 공원을 가로지르려는 순간 뒤에 있던 아이들도 따라오기 시작하였다. 3명의 꼬맹이들은 하이에나처럼 집요하였다. 하는 수 없이 착하고 여린 그는 사자가 되어야만 했다. 사자 한 마리가 세 마리의 하이에나를 상대하는 방법은 한 놈만 공격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장기전에서 체력에서 밀린다. 빼도 박도 못하고 영국 꼬맹이들에게 둘러싸여 조롱을 당하고 있었다. 이래 봬도 강원도의 무서운 기갑여단 출신의 그였다. 비록 행정반이라는 사무실에서 근무했지만 총도 쏴보고 행군도 해본 군인은 군인이었다. 군화만 신어도 딴다는 태권도 블랙벨트 유단자이기도 하였다. 단지 전쟁에 출전하지 못해서 베테랑은 아니었을 뿐이었다.    

  

참을까 말까를 수도 없이 고민했다. 영국에서 미성년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날에는 모든 것이 끝장이다. H처럼 추방을 당할 확률이 아주 높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사정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착한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이 녀석들을 그대로 방치하고 도망치는 것은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갑자가 돌아서서 뛰기 시작하였다. 3마리의 하이에나 중 오직 한 마리가  목표였다. 한 놈을 잡아서 죽을 만큼 패주려고 하였다. 문제는 그 녀석들이 더 빠르다는 것이었다.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사자에게 찍힌 녀석은 자신의 집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목표물을 바꾸면 안 된다. 오직 한 놈만 패면 된다. 그 녀석은 결국 자기 집으로 들어갔고 현관문을 닫아버렸다. 현관문을 두드리며 나오라고 소리쳤다. 아무도 없는지 인기척이 없었다. 아마 집안에서 혼자 떨고 있었을 것이다. 집 앞에서 30분을 기다리자 엄마로 보이는 사람이 오고 있었다. 복장이 아웃렛에서 일하는 직원처럼 깔끔하였다.

     

아이의 엄마에게 이러이러한 일을 당했다고 하자 오히려 아이를 겁박하고 무단으로 주거 침입을 했다고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하였다. 제발 신고해 달라고 했더니 정말 신고를 했고 5분도 안되어서 경찰차 한 대가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경광들을 깜빡이며 달려왔다. 경찰들은 상황판단이 끝나자 아이의 신체 부위부터 확인하였다. 인종차별보다 더 큰 문제는 아이의 몸에 손을 대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이의 신체 체크가 끝나자 서로 억울하다는 변론이 이어졌다. 그보다 오히려 아이의 엄마가 더 적극적이었다. 아이는 입을 다문 채 말이 없었다. 엄마는 침묵을 지키는 아이를 가리키며 자기 아이는 그런 아이가 아니라고 끝까지 잡아 때었다. 그리고 이 사람이 지금 아이를 어떻게 해보려고 여기서 몇 시간 째 죽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자칫하면 상황이 역전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문제는 증거였다. 아이가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하고 조롱까지 했다는 증거가 필요했다. 하지만 증거를 제시할 수 있는 방법은 아이의 실토 외에는 없었다. 결국 유야무야 끝나고 말았다. 그 와중에도 그는 넉살 좋게 경찰차를 얻어 타고 기차역까지 갔다. 다행히 런던으로 가는 기차시간에 맞출 수 있었다.


그가 영국에서 당한 첫 번째 인종차별이었다. 그 뒤로도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한 받아들여야 하는 일중 하나에 불과하였다. 자존감이 높아진 지금은 그 정도의 일쯤은 한술 더 떠 가볍게 유머로 넘길 수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젊었고 정의에 불타 있던 그에게는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자존감이 낮아도 너무 낮았기 때문이었다.



영국의 오만과 편견 1권 이방인 (2019년 11월 25일 / 하루 만에 책 쓰기로 제작된 책의 일부임)


참고로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반부터 9시 반까지는 삼성동 아지트리에서 "나는 매주 한 권 책 쓴다" 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루 만에 책을 쓰고 매월 또는 매주 책을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 저자처럼 매주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이 15명 이상 되었다. 앞으로도 그 숫자는 늘어날 것이다. 강의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https://www.onoffmix.com/)에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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