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에나 나올법한 멋진 문장이다. 하지만 이 문구는 읍내 편의점에서 사 먹은 인스턴트 어묵(핫바)에서 발견한 것이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는 몰라도 너무나 로맨틱한 문장이어서 기억하지 않을 수 없는 문장이다. 사실 이 문구 이야기를 하려고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편리함의 이면에 감춰진 보이지 않는 불편한 진실들이다.
"빨리빨리" 문화는 한국사회를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빨리 시스템화 시킨 일등공신임에 틀림없다. 관공서나 은행에 가도 기다리는 일이 거의 없다. 예약 없이도 가능한 일이 놀라울 정도로 많다. 내가 살고 있는 영국에 비하면 말이다. 영국은 아직도 거의 모든 일이 예약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병원은 물론이고 레스토랑에 가더라도 예약을 해야만 한다. 대부분의 중요한 고지서는 여전히 레터를 이용해서 전달된다. 영국의 레터 문화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빠른 속도로 이메일이나 텍스트로 전환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빨리빨리" 문화의 효과가 코로나 19의 대응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모든 분야에서 세계 최고와 최강을 자랑하던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도 이웃나라인 일본도 마찬가지다.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정부와 자방자치단체의 신속한 대응 시스템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어디를 여행하든 해당 지자체는 물론이고 인근 지자체에서 텍스트로 확진자의 현황과 동선을 알려주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안내 문자는 거의 폭탄 수준이었다. 이제는 그 문자들에 무뎌질 정도로 당연하고 익숙해져 버렸다. 동시에 고마움과 감동도 사그라들고 있다. 세계인들이 사우스 코리아라는 나라를 다시 보기 시작한 시점도 아이러니 하게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과 한국에서 창궐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러면 그렇지. 찌질한 아시아 나라들은 어쩔 수 없다니깐. 사우스 코리아도 중국과 다를 게 없지 않아! 전 국민이 마치 환자처럼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이상한 사람들이 사는 작고 형편없는 나라! 이젠 어떻게 할 거야! 쯧쯧쯧.. 그나마 옆에 있는 일본이 선진국은 선진국이네.
초기의 한국을 바라보던 전 세계의 언론은 지나치게 냉소적이었다. 한국의 일부 보수언론과 보수 사이트들도 마찬가지였다. 연일 정부 정책들을 비판하느라 신이 나 있었다. 마스크 수급과 수출 문제부터 중국과의 모든 통로를 차단하라며 핏대를 연일 올렸지만 몇 달 후에는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그들이 마구 퍼질로 놓은 똥을 치우는 일은 결국 정부와 지자체와 국민들의 몫이었다. 여기에 한국의 교회라는 아주 특수한 종교집단도 거들고 나섰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안타깝지만 종교의 자유를 운운하니 그냥 포기하고 만다. 그들의 존재를 뇌에서 지우고 싶어 진다. 그 방법은 뉴스를 보지 않는 걸로 해결한다.
어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편의점에서 식사를 했다. 나는 하루에 두 번 식사를 한다. 아침식사와 점심을 겸해서 먹는 브런치와 저녁 식사만 한다. 야식도 간식도 거의 먹지 않는다. 물론 허기를 느끼면 간단한 스낵이나 과일 정도는 가끔 먹는 정도다. 한국에 돌아와서 거의 2년 동안이나 배달 음식을 단 한 번도 시켜먹어 본 적이 없다.
어제는 브런치를 늦은 아침에 먹었는데도 오후가 되자 갑자기 허기가 몰려왔다. 읍내 카페에서 앉아있는데 이놈의 뱃속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그치질 않는다. 민망하고 쪽팔려서라도 뱃속에 뭔가를 넣어주어야 했다. 그렇다고 거하게 점심을 먹기에는 부담스럽다. 하루 종일 카페에 앉아서 뭔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가 부르면 졸다가 침만 흘리고 말 것이다.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소화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기가 자주 느껴진다. 글을 쓰는 일은 머리를 쥐어짜야 하는 중노동이기 때문이다.
결국 허기를 견디지 못하고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다음 달이면 한국에 온 지 2년이 되어가지만 아직까지 직접 배달음식을 시킨 적도 편의점에서 식사를 해결한 적도 없다. 이유는 단순했다. 배달음식은 맛이 없다는 오래된 편견과 인스턴트 음식은 건강에 해롭다는 인식 때문이다. 건강을 잃으면서 음식에 꽤 신경을 쓰는 편이다. 가능하면 가공음식이나 배달음식을 먹지 않으려 한다. 라면이나 전자레인지에 돌려먹는 햇반 같은 인스턴트 음식도 먹지 않는다.
심지어 육식도 완전히 끊은 지 오래다. 그렇다고 비건 생활을 유지하는 것도 아니다. 유제품과 계란 및 생선은 먹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점점 빠지는 체중을 감당할 수가 없다. 군 전역 후 항상 오차범위가 플러스 마이너스 1kg이었던 내 체중은 채식 이후 4~5kg 가까이 빠졌다. 평소에도 살찌는데 도움이 되는 보약이나 음식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찾아 먹는 체질이기는 하다. 그만큼 살찌는 게 소원이었던 사람이다. 별게 다 소원인 사람이라고 삿대질을 할 분들도 많을 것이다. 주위에도 다이어트와 요요현상 사이를 거의 평생 동안 오가는 분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내가 읍내 카페에서 있다가 근처의 편의점에 들어선 시간은 오후 3시가 조금 지나서였다. 평소에도 편의점에는 잘 가지 않는 편이다. 담배도 피우지 않고 술도 거의 마시지 않기 때문에 급하게 편의점에 갈 일이 별로 없다. 대신 가끔이기는 하지만 규모가 큰 읍내의 대형마트에 간다. 가격도 싸고 쇼핑하는 재미도 있다.
편의점에 들어서서 진열대를 몇 바퀴 돌아야만 했다.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겨우 고른 음식들이 작은 사이즈의 우유와 구운 달걀 3개 그리고 매끈하고 가는 나무 꼬치가 끼워진 어묵 하나였다. 편의점에서 인스턴트 음식을 피하려는 내가 바보였다. 우유도 염증을 유발하기 때문에 즐겨 마시지는 않는다. 하지만 편의점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당장 칼로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생수를 사서 마시기는 좀 그랬다.
계산을 마치고 자리에 앉아 먹으려는데 친절한 사장님께서 어묵을 전자레인지에 40초 데워서 먹으라고 알려주신다. 정확히 40초를 돌렸다. 데워진 어묵의 비닐 팩을 뜯자 김이 모락모락 난다. 환경호르몬은 잠깐 잊기로 하고 어묵부터 먹기 시작한다. 너무 맛이 있어서 몇 입에 다 먹어버렸다. 그래서 사진도 찍지 못하고 꼬챙이만 달랑 남았다. 우유를 마셔가며 나머지 계란 3개도 다 먹었다. 생각보다 쉽게 포만감이 밀려온다. 서울과는 달리 지방의 읍내 편의점에는 앉아서 먹을 수 있는 테이블들이 많았다.
팍팍한 계란에 목이 막혔지만 우유를 마셔가면서 겨우 먹을 수 있었다. 편의점에서 음식을 먹어보기는 처음이었다. 가끔 캔 커피나 우유를 사서 마신적은 있었다. 식사가 끝나자 어묵 포장지에 새겨진 그 문구를 천천히 음미해본다. ”지금 너를 만나서 너무 행복해! “ 이런 느낌 참 오랜만이다. 나의 밋밋했던 20대 청춘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불끈 든다. 다시 20대가 된다면 과연 불꽃 튀기는 사랑을 할 수 있을까! 가능 여부를 떠나 그런 사랑을 해보고 싶은 충동이 일렁인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어쩌면 과거를 후회하거나 그리워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과거로 돌아가거나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지지 못했다. 오직 현재만을 살아가면서 과거에 침잠되고 미래에 헛된 희망을 내어주며 아파할 뿐이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일렁였고 가슴은 요동쳤다.
혼자 살아가면서 감정의 소용돌이가 가슴속에서 몰아칠 때마다 스쳐갔던 인연이나 관계를 돌아본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고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기도 했던 시간들은 까마득하리만큼 아득하다. 대부분의 상처들은 아득한 시간만큼이나 무뎌져서 희미해져 가고 있다. 물론 어떤 상처는 지금도 집요하리만큼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 새우고 있기도 하다. 어쩌면 우주라는 공간에서 소멸되는 날까지도 지속될지 모른다. 상처란 그런 것이다. 잘 아물었다 할지라도 흉터의 모습으로 흔적을 남길 수 밖에는 없다. 어쩌면 상처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육신의 상처에 흉터가 남듯이 마음의 상처도 아물고 나면 흉터가 남는다. 그 흉터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마음은 자주 요동친다.
읍내 편의점에서 점심도 저녁도 아닌 식사를 하면서 사람들이 왜 편의점을 찾는지 이해가 갔다. 혼자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하는 데는 편의점만 한 곳이 없어 보였다. 전국에 편의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은 편리함을 추구하는 생활의 변화 때문일 것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한국인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간편한 것을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매 끼니를 집에서 해 먹는 사람들의 비율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나도 이제부터는 편의점 단골이 될지도 모른다. 편리함이 주는 매력에 나는 그렇게 무너져갈 것이다.
20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서 가장 인상적인 점이 있다면 단연 배달음식과 편의점이었다. 세상에서 이렇게까지 라이프 스타일이 편리하게 발전된 나라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24시간 운영되는 식당과 카페들도 놀랍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우리 한국인들이 바삐 살아간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수요가 창출한 문화는 또 있다. 새벽 배송과 로켓 배송이 그것이다. 마켓 컬리의 새벽 배송은 나름 성공을 거둔 모습이다. 쿠팡의 로켓 배송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편리함의 이면을 들여다보려는 사람은 아직 많지 않다. 소비자의 수요에 맞춰 시장이 최적의 서비스를 공급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원리만큼이나 말이다. 문제는 결국 노동의 시간대다. 남들이 잠들어 있는 시간에 깨어있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그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물론 영국이나 유럽에서처럼 낮에 일하는 시간보다 훨씬 많은 임금이 지급된다 할지라도 말이다.
언젠가는 우리 사회도 심야나 새벽에 일하는 분들에게 평일 낮 시간에 비해 1.5배나 2배의 임금을 지급받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참고로 영국에서는 휴일 근무나 주간이 아닌 시간에 근무하면 1.5배 이상의 임금을 더 지불해야 한다. 그래서 정직원은 물론이고 알바들까지도 100여 페이지에 가까운 채용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주말이나 휴일에 근무하는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주 몇 시간 이하의 근무로만 얼버무리기에는 충분치 않아 보인다.
우리 사회가 직장은 줄어들고 취준생은 넘쳐난다고 하지만 노동 시장의 깊숙한 곳에는 온갖 아픔과 설음과 부당노동행위들이 비일비재하다. 주당 노동 총시간을 규제하는 일만으로는 부족한 점이 너무 많다. 이제는 노동이 행해지는 시간대와 하청의 재하청 제도가 점점 이슈가 되어야만 한다. 대기업 등에서 들으면 불편하겠지만 말이다. 왜냐하면 이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개인들은 국민인 동시에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노동으로 인한 정당한 임금을 지급받아 행복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날이 우리 사회에도 빨리 오기를 바란다. 편의점과 배달 음식의 편리함처럼, 코로나 19를 대응하는 멋진 시스템처럼, 우리는 뭐든지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