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살아내는 힘, 비 오는 날의 성실함 (무농)

감사한 일

by 나무나루주인

오늘을 살아내는 힘, 비 오는 날의 성실함 (무농)


봄비가 하루 종일 내렸다. 산불 위험을 낮춰주는 고마운 비이자, 농사를 준비하는 이들에게는 반가운 단비일 것이다. 그러나 같은 비가 모두에게 같은 얼굴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저기압은 나이 든 이들의 관절에 통증을 얹고, 몸 어딘가에 숨겨둔 약한 부분을 조용히 깨운다. 나 역시 이제는 비가 오기 전부터 어깨와 무릎이 먼저 반응한다. 자연의 변화가 몸을 통해 전해지는 나이가 되었음을, 나는 비 오는 날마다 실감한다.


지난 주말 둘레길을 걸으며 조금 무리를 했던 탓인지 어제부터 몸 여기저기서 신호를 보냈다. 예전 같으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통증이 오늘은 유난히 또렷하다. 점심을 먹고 나니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와 잠시 몸을 눕혔다.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억지로 버티기보다 잠깐 멈추는 쪽을 택했다. 쉬는 것도 하루를 성실히 보내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짧은 휴식 후에야 몸은 조금 가벼워졌고, 다시 일어설 힘이 생겼다.


완벽히 회복된 상태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오늘을 통째로 흘려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평소보다 강도를 낮춰 홈트를 시작했다. 기록을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흐트러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는 마음으로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운동을 마칠 즈음에는 통증보다 개운함이 더 또렷하게 남았다. 움직임은 나를 소진시키지 않고, 오히려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이런 날이면 문득 깨닫는다. 오늘을 성실히 살아낸다는 것은 눈부신 성취를 이루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멀리 있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일도 중요하지만, 삶을 단단히 받쳐주는 힘은 결국 지금 이 하루를 책임 있게 감당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통증을 이유로 모든 것을 내려놓지도 않고, 그렇다고 오기로 자신을 몰아붙이지도 않는 것. 그 사이에서 균형을 지키려는 작은 결단들이 쌓여 나를 흔들림 없이 세워준다.


우리는 종종 ‘언젠가’를 위해 오늘을 희생한다. 그러나 붙잡을 수 있는 시간은 늘 지금뿐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도망치지 않고 마주했다면, 그 하루는 이미 충분하다. 성실은 눈에 띄지 않지만 가장 확실한 힘이며, 결과 이전에 나를 증명하는 태도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이고, 누군가에게는 축복일 그 비 아래에서 나는 오늘도 나의 몫을 살아냈다. 핑곗거리를 찾지 않고 짜인 일상을 지켜낸 하루. 그리고 다시 내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 그 소박하지만 분명한 진실 속에서 나는 잔잔한 행복과 깊은 감사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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