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옹지마의 하루, 아내에게 배우다 (무농)

감사한 일

by 나무나루주인

새옹지마의 하루, 아내에게 배우다 (무농)


얼마 전부터 나는 아내에게 주식을 사보라고 권했다. 평생 주식과 거리를 두고 살던 사람에게, 이제는 시장 분위기가 달라졌으니 한 번 경험해 보라고 등을 떠민 셈이었다. 그런데 하필 첫 거래 날에 주가는 폭락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이 있을까. 주식시세표에 찍힌 마이너스 숫자를 보는 순간, 미안함과 함께 체면이 구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과거에 아내가 코인 투자를 이야기했을 때 나는 선뜻 동의하지 않았다. 그 선택이 옳았는지 틀렸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혹시 아내의 기회를 막은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이 오래 남아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달라진 국내 주식시장의 흐름을 근거로 조심스럽게, 그러나 어쩌면 섣불리 권했다.


하지만 나는 중요한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주식은 기술적 분석만으로 설명되는 세계가 아니라는 점, 결국 사람의 심리와 외부 변수에 크게 흔들리는 시장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국제 정세의 변화와 예측 불가능한 사건들까지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내 판단이 못내 아쉬웠다.


아침 일찍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락한 주가에 조금이나마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 그런데 돌아온 말은 오히려 나를 놀라게 했다.

“사고팔려고 시작한 건 아니잖아. 11월까지는 들여다보지 말고 기다려보면 되지.”

아내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내가 말했던 중장기적 가능성을 기억하며, 일시적인 급등락에 흔들리지 말자고 웃으며 말한다. 그 여유와 침착함은 내가 예상했던 반응과는 정반대였다.


나는 계획적으로 모아둔 아내의 돈을 불려주지는 못할망정, 당장 수십만 원의 손실을 안긴 사람이 되었다. 미안함은 여전했지만, 그 통화 속에서 또 하나의 깨달음이 찾아왔다. 내가 위로하려 했던 시간이, 오히려 나를 위로하는 시간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아내는 손익의 숫자보다 마음의 평온을 먼저 붙들고 있었다.


세상만사 새옹지마라 하지 않는가. 오늘의 하락이 내일의 기회가 될지, 또 다른 배움이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번 일을 통해 나는 아내의 신뢰와 여유를 다시 배우게 되었다는 점이다. 숫자에 더 흔들렸던 사람은 어쩌면 나였을지도 모른다.


조급한 나를 붙들어 준 아내에게 고맙다. 손실을 만회하겠다는 다짐보다, 그 믿음에 걸맞은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이 먼저임을 깨닫는다. 폭락의 기억은 언젠가 희미해지겠지만, 오늘 들은 아내의 차분한 목소리는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아 나를 단단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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