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한 일
일상의 멈춤이 일깨운 감사 (무농)
오늘 바깥은 화사한 봄빛으로 가득했다. 공원으로 향하는 길은 싱그러움으로 충만했고, 나무들은 새순을 틔우며 분주히 계절을 준비하고 있었다. 숲 속에서는 산새들이 저마다의 소리로 봄을 노래했다. 동네 공원을 몇 바퀴 가볍게 돌고 돌아온 오전, 그 평온한 일상은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느껴졌다.
점심을 마친 뒤, 거실에 앉아 책장을 넘기고 있을 때였다. 갑작스럽게 실내가 어둠에 잠겼다. 예상치 못한 정전이었다. 당황한 마음에 두꺼비집을 확인했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불안한 기운 속에서 수돗물을 틀어보았지만, 물마저 나오지 않았다. 익숙했던 일상이 한순간에 멈춰버린 듯한 낯선 정적이 공간을 채웠다.
서둘러 경비실로 내려가 상황을 전하자, 이미 공지된 설비 점검으로 인해 전기와 수도가 일시 중단된 것이라는 설명이 돌아왔다. 며칠 전부터 게시판에 안내가 있었다는 말에, 순간 머쓱함과 함께 스스로의 무심함이 떠올랐다. 평소 무심히 지나쳤던 게시판이 오늘따라 유난히 또렷하게 다가왔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비상등을 켜고 책을 펼쳤지만, 이전처럼 글이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전기와 수도가 멈춘 공간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일상의 리듬 자체를 흐트러뜨리고 있었다.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누려왔던 편리함이 얼마나 많은 손길과 노력 위에 유지되고 있었는지를.
우리는 익숙함 속에서 소중함을 쉽게 잊는다. 전기와 물, 가스처럼 일상을 지탱하는 기본적인 요소들조차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지나쳐버린다. 그러나 그것들이 잠시 멈추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그 가치를 또렷이 마주하게 된다.
오늘의 작은 불편은 오히려 조용한 깨달음으로 남았다.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으며, 지금 내가 누리는 모든 편리함은 결코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이들의 노고와, 평범한 하루를 가능하게 하는 수많은 조건들에 대해 자연스럽게 감사의 마음이 일어났다.
어쩌면 감사란 특별한 순간에만 찾아오는 감정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렇게 일상이 잠시 멈추는 순간, 오히려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감정일 것이다. 오늘 나는 불편함 속에서, 다시 한번 감사의 의미를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