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 못함의 끝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이해 (무농)

감사한 일

by 나무나루주인


알지 못함의 끝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이해 (무농)


사십여 년 전, 『꿈의 해석』을 처음 펼쳤을 때의 기억은 이제 희미하다. 그저 호기심으로 시작했을 뿐, 그 깊이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던 듯하다. 그러나 최근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생애를 다룬 전기를 접하며, 나는 그가 살았던 시대와 학문이 태동한 배경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19세기말의 억압적인 사회 구조와 엄격한 위계, 그리고 인간 내면에 축적된 불안과 갈등이 ‘히스테리’라는 형태로 표출되었고, 그것이 정신분석학이라는 새로운 사유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사실은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일상 속에서 꿈을 가볍게 이야기하고, 나름의 해석을 덧붙이며 의미를 부여하곤 한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 사소한 질문을 흘려보내지 않고 끝까지 파고들어 하나의 체계로 완성해 냈다. 그 집요함과 통찰은 단순한 지식의 축적을 넘어, 인간을 이해하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 앞에서 나는 자연스레 고개를 낮추게 된다.


요즘 들어 나는 스스로에게 자주 묻는다. 과연 나는 무엇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책을 읽고 지식을 쌓아간다고 믿어왔지만,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깨달음은 당혹감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더 신중하고 겸허하게 만든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내가 보고 있는 세계, 내가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 현실은 과연 얼마나 온전한 것일까. 이 질문 앞에서 나는 확신을 앞세우기보다 여백을 남기는 태도를 배운다. 어쩌면 진정한 앎이란 무엇인가를 단정하는 데 있지 않고, ‘모른다’는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완전한 이해에 이르지 못한 채, 조용히 한 걸음을 내딛는다. 알고자 하는 마음과 배우고자 하는 의지, 그리고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는 겸손. 이 세 가지가 어우러질 때, 우리는 비로소 더 깊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무지의 지’를 온전히 이해하는 날은 끝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깨달음에 다가가려는 이 여정 자체가, 이미 하나의 앎으로 빛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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