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야고보 6

사랑의 비대칭성

by 나무나비

그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예수님의 형제들이 온다. 그들은 바깥에 서서 사람을 들여보내, 예수님을 불러 달라고 했다. 무리가 예수님 둘레에 앉아 있다가 말한다. "보십시오, 선생님의 어머니와 선생님의 형제들이 그리고 선생님의 누이들이 바깥에서 선생님을 찾고 계십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그들에게 대답하신다. "누가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입니까?" 예수님이 자기 둘레에 빙 둘러앉아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시고 말씀하신다. "보십시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입니다. 누구라도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면 그 사람이 내 형제이고 자매이고 어머니이거든요." (마가복음 3장 31절 - 35절, 새한글성경)


----------------------------------------------------------------------------------------------------


“선생님, 밖에 선생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와 있습니다. 지금 뵙고 싶다고 하는데 어떻게 말씀을 전할까요?”

마침 요한이 예수에게 말했다. 예수는 야고보를 바라본 채로 요한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 곧 형을 만나겠구나.’

만나서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 할까. 왜 이러고 지내는 것인지 물어봐야 하나. 그러면 너무 다그치는 것처럼 들리려나. 야고보는 긴장하며 예수를 마주보고 있었다. 요한의 말이 끝나자 예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야고보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는 다른 이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 내 어머니와 형제가 왔다고 합니다.”

저렇게 말하고 이제 우리를 만나러 오겠구나. 야고보는 긴장으로 몸이 빳빳해지는 것을 느끼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토록 친했던 형인데 이렇게 떨리는 것이 우습기도 했다. 야고보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올라가는 순간, 이어지는 말에 그는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누가 내 어머니와 형제들입니까? 내 어머니와 형제들은, 이곳에 앉아 내 말을 듣고 내게 순종하는 이들입니다.”

예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 말을 할 뿐, 다른 행동을 취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야고보는 예수의 말과 행동을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혹시 나를 보지 못한 것인가. 아니면 가르칠 것이 더 남아 있어서 잠시 기다리라는 것인가.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면서. 가버나움과 이곳이 하룻길이고 우리가 뭘 포기하고 여기까지 이르렀는지 다 알면서.

“저, 가족들이 계속 기다리고 있습니다.”

요한 역시 당황한 듯이 야고보를 한 번 바라보고는 다시 예수를 보았다. 그러자 예수가 미간을 살짝 좁혔다. 그는 다소 꾸짖는 듯한 어조로 요한에게 말했다.

“내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구나. 내 가족은 이곳에 모인 이들이라고 말했다. 따로 만날 가족은 없다는 뜻이다. 잘 이야기해서 돌아가라고 하거라.”

냉정하고 차가운 어조였다. 표정과 말에서 느껴지는 생생한 거부의 기운에 야고보는 무어라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가슴까지 욱신거렸다. 요한의 곤란한 얼굴이 야고보를 향했다. 야고보는 그것조차 수치스러웠다. 그는 자신의 스승의 가족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할 것인가. 우리가 얼마나 예수에게 못되게 굴었으면 저렇게 대놓고 내치나 싶지 않을까. 억울하고 답답한 심정으로 야고보는 돌아섰다.

“야고보, 예수를 만나고 오는 거니? 뭐라고 하든?”

어떻게 나왔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 보니 마리아가 야고보의 손을 붙들고 묻고 있었다. 야고보는 차마 진실을 말할 수가 없어서 둘러대었다.

“형은 조금 바쁜가 봐요. 사람들이 계속 몰려오고 있어서요. 어머니는 그만 돌아가서 쉬고 계세요. 제가 좀 더 기다리다가 형을 만날게요.”

그러자 요셉이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형을 데려가려고 왔는데 그냥 돌아가라니! 우리는 오늘 일도 포기하고 하루 종일 걸어서 여기까지 왔는데!”

시몬과 안나도 당황한 얼굴로 각각 불만을 토했다.

“형이 가야지 우리도 가지!”

“우리가 여기까지 왔는데 나와보지도 않는 거야?”

야고보는 그들 앞에서까지 예수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은 원치 않았다. 오해가 있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뭐든, 그가 이제는 가장으로서 가족을 지켜야 했다.

“마음이야 굴뚝 같겠지. 그래도 형이 워낙 책임감이 강하잖아. 자기 보려고 이렇게 사람이 몰려왔는데, 그걸 다 뿌리치고 우리를 만나러 나올 상황이 안 되었던 거지. 내가 기다리다가 만나고 갈 테니까, 일단 갈렙 아저씨 지인분 집에 가 있어.”

그 말에 가족들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듯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래, 돌아가자. 야고보가 말해본다고 하잖아.”

마리아가 다른 형제들을 달래며 말했다. 사람들이 계속 모여들고 있어서 이곳에 계속 서 있기도 어려웠다.

“내가 기다렸다가 만나고 나서 내일 다시 약속을 잡아볼게. 약속 없이 오니까 만날 수가 없잖아. 조금만 기다려.”

야고보의 말에 동생들도 결국은 수긍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 때문에 예수를 만날 수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서운해하면서 돌아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데 마리아가 야고보에게 다가왔다.

“너도 기다리다가 안 되겠다 싶으면 그냥 만났다고 하고 와.”

다른 형제들에게는 들리지 않게 속삭이는 말에 야고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만나서 얘기를 하고 가야죠.”

“네가 무리할까 봐 그러지.”

마리아는 야고보의 등을 한 번 쓰다듬어 주고는 돌아섰다. 무언가 알고 있는 걸까. 더 묻고 싶었으나 야고보는 입술을 깨물었다. 왠지 그것이 무엇이든, 알면 안 될 것 같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다만 형을 만나는 일이었다. 마리아를 보내고 돌아선 야고보는 그 사이 사람들이 더 몰려든 것을 보았다. 밤이 깊어도 그들은 집에 가지 않을 것 같았다. 야고보는 옆집의 벽에 기대어 앉았다. 자꾸만 예수의 얼굴과 그 말이 생각났다. 그는 완전히 변해버린 걸까. 사람들의 기대와 소망에 완전히 취해버린 걸까. 확실한 것은 이야기를 해 보아야 알 것 같았다. 그는 눈을 감았다. 무거운 다리와 어깨가 몸을 짓눌렀다. 그는 잠을 자는 것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닌, 괴로운 꿈자리에 시달리며 끙끙거렸다.

얼마나 잤을까. 누군가 그를 흔드는 느낌에 야고보는 고개를 들었다.

“아직도 안 가셨어요?”

요한이 놀란 눈으로 야고보를 보고 있었다. 아까는 그래도 해가 있었는데, 날이 완전히 캄캄해져서 하늘을 가득히 수놓은 별이 보였다. 둘러보니 사람들도 대개 돌아간 모양이었다.

“아, 네. 어쩌다 보니.”

“아이쿠, 이럴 줄 알았으면 안에서 기다리시게 할 것을. 제가 선생님 모시고 나올 테니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요한은 집안으로 들어가려다가 멈칫 섰다. 누군가 집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는 바로 야고보에게로 걸어왔다.

“야고보.”

야고보는 고개를 들었다.

“형.”

예수는 요한에게 가 보라고 하고는 다시 야고보를 바라보았다. 야고보는 눈을 내리깔았다. 아까는 보자마자 반가움에 눈물이 났었는데, 이제는 또 다른 의미로 눈물이 나려고 했다.

“어머니하고 동생들이 왔었어. 마을에 자꾸 이상한 소문이 돌아서. 형이 걱정되어서 새벽부터 출발해서 하룻길을 걸어서 왔어.”

야고보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예수를 바라보았다. 예수는, 묵묵히 야고보를 보고 있었다. 그 표정에는 다정함과 따스함보다도 왠지 모를 안타까움이 어려 있는 것 같았다. 그 얼굴을 마주하며, 야고보는 이 간극의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했다. 너무 오래 떨어져 있어서일까. 내 마음 속의 형과 지금의 형이 이렇게 다른 이유는.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

“그렇게 왔는데, 듣는 말이 너희는 가족이 아니라는 말이어서 속상했겠구나.”

정곡을 찌르는 말에 야고보의 눈이 커졌다. 그러면 그 마음을 다 알고서 한 말이었단 말인가. 야고보의 입술이 비틀렸다.

“그래, 차마 어머니랑 동생들한테 그 말을 전할 수는 없었어. 나 혼자 아프고 말자 싶어서. 그런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일단 들어가자.”

예수는 그렇게 말하고 몸을 돌이켰다. 집안에 들어선 예수는 포도주를 따라서 야고보의 앞에 놓아 주었다. 빵과 올리브도 내어 주었으나 야고보는 하루종일 먹지 못했는데도 식욕이 돌지 않았다.

“오느라 고생 많았어. 새벽부터 서둘러 일어나야 했을 텐데.”

예수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빵을 잘라서 야고보에게 내밀었다. 야고보는 빵을 받기는 했으되 그것을 먹지는 않고 내려놓았다.

“나에게 할 말 있으면 해.”

예수 역시 빵을 먹지 않은 채 말했다. 야고보는 아까 했던 말을 이어서 할까 하다가, 예수를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서는 그에게 서운함을 드러내는 것보다도 저의 간절함을 이야기하는 게 더 낫겠다 싶어 마음을 고쳐먹었다.

“우리가 여기 온 건, 형이 걱정이 되어서였어. 알잖아, 로마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나사렛까지 소문이 들릴 정도라면 형이 큰일나겠다 싶었어. 그렇게 사람들에게 주목받아서 좋을 건 아무것도 없어.”

최대한의 진심이 느껴지도록 야고보는 간절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를 바라보는 예수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야고보의 말을 못 알아듣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아버지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을 하는 거야.”

예수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고 나서 말을 이었다.

“그것을 방해하는 이들은 비록 가족이라도 용납할 수가 없어. 난 내가 받은 사명을 완수해야 해. 누가 뭐라든.”

야고보의 얼굴도 덩달아 굳고 말았다. 예수는 지금 엉뚱한 것에 빠져버린 것 같았다. 그래서 자신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도 자각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나뭇가지를 지고 불구덩이로 가는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이었다. 십자가에 달린 그 무수한 사람들처럼.

“가족이니까 걱정하는 거야. 누가 이렇게 형을 걱정해? 그 제자들? 요한? 다들 자기 욕심으로 옆에 있는 거지. 결정적인 순간엔 다 도망갈 거야. 형도 알잖아, 자기를 선지자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이끌었던 이들이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지!”

야고보는 답답함에 제 발을 굴렀다. 예수는 그 말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고개를 다른 편으로 돌렸다. 야고보만큼이나, 예수 역시 마음 속의 말들을 참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떤 결말이든, 나는 아버지의 뜻에 순종할 수밖에 없어.”

잠시 침묵했던 예수가 눈을 뜨고 야고보를 바라보며 말했다. 야고보는 고개를 저었다. 아까부터 자꾸 거슬리는 말이 있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잖아.”

“그 아버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내 아버지셔. 나는 아버지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이 땅에 왔어. 네 마음은 알아. 가족들 마음이 어떤지도 알고. 하지만 나는 그 뜻에 따를 수가 없어.”

하나님은 그들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신 분이라는 것을 야고보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버지가 아니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아버지는 집에 계신 가족이었다. 누구보다도 토라를 많이 아는 예수가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런 하나님을 함부로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도 부족한지, 예수는 그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라도 되는 것처럼 뜻을 실현하기 위해 이 땅에 왔다고 하고 있었다. 아무리 믿음이 깊은 사람도 그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을 야고보는 들어보지 못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하나님이 아버지라니?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리고 왜 형이 하나님의 뜻을 실현해? 형이 도대체 뭔데? 메시아라도 된다는 거야?”

야고보의 호흡이 가빠지면서 말이 빠르게 쏟아졌다. 예수는 묵묵히 그 말을 듣고 있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괴로운 듯 찌푸려지는 미간을 보고 있으니 야고보는 미안해졌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심했나 싶었다.

“아니야, 메시아라는 말은 그냥 해 본 거고 마음에 두지 마,”

“메시아 맞아.”

눈을 뜬 예수가 야고보를 보며 말했다.

“내가 메시아라고, 야고보.”



--------------------------------------------------------------------------



오늘과 내일까지는 원고가 있어서 내일도 오겠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야고보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