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비대칭성
예루살렘성은 순례객들로 가득했다. 저녁부터 시작되는 유월절 준비를 위해서 몰려든 사람들이었다. 곳곳에서는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태우느라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야고보는 인파에 휩싸인 채 걷고 있었다. 분명 가족들과 함께 성안으로 들어왔는데 혼자 외따로 떨어져 버렸다. 그래도 가다 보면 만나겠지 하고 계속 걷는 중이었다. 야고보는 성전 한쪽에서 찬양을 하고 있는 성가대를 보았다. 예루살렘 성에는 성가대가 늘 아름다운 찬양을 하고 있었는데 특히 명절 때에는 순례객들을 위해서 더 장엄한 곡들을 부르곤 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편 23편 1절)
야고보는 저도 모르게 성가대가 부르는 찬양을 따라 했다. 생각해 보니, 그 노래는 예수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였다. 매일 먹을 것이 없어서 굶고 온몸이 땀으로 덮이도록 일하면서 부족함이 없다니. 참 형이 좋아할 만한 노래였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야고보는 미간을 좁혔다. 형과 헤어진 지 벌써 몇 년이었다. 그러고 나서 이제는 생각할 일이 없다고 여겼는데 어느새 그는 제 마음에 또 들어와 있었다.
‘잘 지내고 있을까. 형도 명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올라왔을까.’
형을 생각하면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곤 했다. 그는 성가대의 찬양을 더는 듣기가 어려웠다. 몸을 돌려 반대편으로 걸었다. 그렇게 몇 걸음 걷지 않아서였다. 누군가 야고보의 어깨를 잡아 챘고, 돌아선 야고보는 처음 보는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 모양에 덩달아 미간을 좁혔다.
“누구세요?”
그는 무척이나 슬픈 얼굴로 헉헉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는 손으로 야고보의 손을 덥썩 잡았다. 그제야 야고보는 그가 초면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에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디서 보았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저 모르십니까, 요한, 요한입니다. 나사렛 예수의 제자입니다.”
그의 손은 불이라도 잡은 듯 뜨거웠다. 야고보는 그제야 그를 기억해 내고는 이상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요한이 저를 보고 이토록 뜨거운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한 가지일 것이었다.
“형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요한은 그 말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일그러진 눈에서 눈물이 비어져 나왔다. 줄줄 흐르는 눈물을, 야고보도 긴장한 채 보고 있었다. 제발 아주 나쁜 소문은 아니기를.
“선생님이.”
요한의 입이 열렸다. 그 순간, 야고보는 저를 지나가던 이들이 하는 웅성임을 들었다.
“나사렛 예수가 체포됐다고?”
“어젯밤에 그렇게 됐대.”
야고보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평범한 유대인으로 보이는 이들이 걸어가고 있었다. 야고보는 다시 요한을 돌아보았다.
“아니죠? 나사렛 예수라는 게, 우리 형을 말하는 게 아니죠?”
예수라는 이름은 흔했지만 워낙 작은 마을인 나사렛에서는 야고보의 형이 유일했다. 그것을 알면서도 야고보는 부인하고 싶었다. 저도 모르는 새에 나사렛에 예수라는 이가 한 명이 더 있었던 거라고. 그렇게라도 믿고 싶었다.
“맞습니다. 선생님이 어젯밤에 체포되셨고, 조금 전에 십자가형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네?”
야고보는 요한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십자가형은 로마의 판결로만 가능한 형벌이었다. 그리고 인간이 당할 수 있는 가장 큰 수치와 고통을 주는 형벌이었다.
“왜요? 형이 무슨 잘못을 저질러서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바리새인들과 몇 번 충돌하시긴 하셨지만 그것으로 어떻게 십자가형이 내려질 수 있는지. 아, 어젯밤에는 저희에게 길게 말씀을 전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고도 하셨고요. 곧 떠나실 거라는 말씀도 하셨는데요.”
“살과 피를 먹다니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야고보는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물었다. 왜 예수는 그런 기괴한 말을 했을까.
“저도 정확한 의미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만, 그 피는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리는 언약의 피라고 하셨습니다. 마치 스스로 희생이라도 하시는 듯한 말씀이셨어요.”
야고보는, 예수를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를 떠올렸다. 제 가족마저도 무정하게 내치며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이 있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그 사명이라는 것이 혹시 언약의 피니 내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는 것과 관련된 것일까.
“무슨 그런 게 다 있습니까? 메시아라면서요. 그러면 유대 민족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구해내야지 십자가에 왜 달립니까? 스스로 희생이라뇨,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결론입니까?”
야고보는 요한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그때 말렸어야 했습니다. 더는 이러지 말고 집으로 가자고 했어야 했어요. 언약의 피니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니 무슨 그런 미친 말이 다 있습니까? 그런 말을 듣고 가만히 있었어요?”
“아닙니다. 선생님께서는 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젯밤, 선생님은 여느 때보다도 더 맑은 정신이셨습니다.”
요한이 도리질을 치며 말했다. 마구 요한의 몸을 흔들어대던 야고보는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렸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요한의 어깨를 놓은 그가 붉어진 얼굴로 물었다.
“그래서, 집행이 되는 곳은 어디입니까?”
“아마 골고다로 갈 겁니다. 이 성을 나가서 북쪽으로 가야 합니다.”
요한의 물음에 야고보는 마른 침을 삼켰다. 십자가형을 당하는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 보았었다. 벗겨진 채 피투성이가 되어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들을 보고 야고보는 그 끔찍함에 치를 떨다가 결국 먹은 것을 다 토해버렸다. 그날 밤늦도록 잠이 들지 못하는 야고보를 곁에서 달래준 이가 바로 예수였다.
“저는 일단 다른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고 나서 그쪽으로 갈 생각입니다.”
요한의 말을 듣자 야고보 역시 제 가족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요한이 인사를 하고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던 야고보는, 일시에 온몸에서 힘이 풀리는 것을 느끼고 제자리 주저앉고 말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어.’
어떻게 예수가 그렇게 죽을 수가 있을까. 그 벌레 한 마리도 못 죽이는 위인이. 내가 그때 메시아라고 말하는 형을 억지로라도 데리고 와야 했을까. 정신 차리라고 집에 묶어놓기라도 했어야 했을까. 그러면 이렇게 허망하게 떠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래, 제 사명을 완수하겠다고 했었지. 그런데 왜 하필 십자가형이야. 왜 그렇게 수치스럽고 끔찍하고 고통스럽운 형벌이냐고. 심지어 성경에는 나무에 달린 자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는 말씀도 있는데. 형은 정말 저주를 받은 걸까. 그렇다면 왜. 설마 자신을 메시아라고 멋대로 이야기하고 다녀서 벌을 주신 걸까. 정말 그런 걸까. 야고보는 두 손으로 얼굴을 싸쥐었다. 저를 스쳐가는 인파들이 모두 저와 상관없는 이들처럼 느껴졌다. 유월절을 앞둔 유대인들의 흥분과 환희가 야고보에게는 다른 세상의 일 같았다.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내 형이 어떻게 살았는지 아시면서, 평생 당신만 사랑했던 사람에게 어떻게 이렇게 하실 수가 있습니까.’
원망스러운 이는 미쳐버린 예수가 아니라, 그를 그렇게 만든 하나님이었다. 그렇게 똑똑하고 사려 깊으며 가족들을 깊이 사랑했던, 야고보가 존경해 마지않았던 형이 이러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 것을 그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악귀의 지배를 받았다면 쫓아내 주셨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죽을 상황이라면 구해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하나님의 직무 유기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정신을 차린 것은, 누군가가 그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껴서였다. 몸을 일으킨 그는 눈앞에 서 있는 요셉을 바라보았다. 요셉의 표정에서 야고보는 깨달았다. 그 역시 이미 알고 있음을.
“형.”
요셉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옆에는 유다가 시뻘게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인 채 서 있었다.
“어머니는?”
야고보는 뭘 먼저 말해야 할지 몰라서 물었다. 요셉은 한참을 묵묵히 서 있다가 입을 열었다.
“어머니는, 그곳으로 가셨어. 형을, 보러.”
다 알고 있구나. 그래, 소문이 퍼졌겠지. 나도 지나가던 이들에게 들었으니까. 야고보는 무어라고 할 말이 없어서 눈만 빠르게 깜박였다.
“우리는 집으로 가려고.”
요셉은 그렇게 말하고 유다를 돌아보았다가 다시 야고보를 바라보았다.
“유월절을 즐길 수 있는 기분도 아니고, 그렇다고 형을 보러 가는 것도. 형은 어떻게 할 거야?”
요셉의 물음에 야고보는 잠시 침묵했다. 가족 중에 한 명이 십자가형을 받는다는 것은, 그 가족이 절대로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은 한 사람에게만 가해진 형벌이 아니었다. 그를 기억하는 모든 이들에게, 특별히 가족들에게 그것은 지워지지 않을 상처가 될 것이었다.
“나는 조금 있다가 내려갈게.”
그를 보지 못한다고 해도, 그를 이곳에 두고 내려갈 수는 없었다. 야고보의 말에 요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해. 참, 어머니는 당분간 안 내려오실 거야. 아까 크게 다투었어. 어머니는, 형이 메시아인 것을 믿고 있더라고.”
요셉이 기가 막히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것 때문에 저주를 받아서 죽게 되었는데도. 이제 우린 나사렛에서 살지 못할지도 몰라. 메시아 노릇 하다가 십자가에 달려 죽은 가족을 누가 환영하겠어?”
“그만해.”
야고보는 자꾸만 생각이 더 밑으로 가라앉는 것을 느끼며 요셉을 제지했다.
“형이 죽게 된 이유를, 아직은 정확히 모르는 거잖아.”
“뻔하잖아. 그때 가버나움 갔던 일 기억 못 해? 그때 형만 잘했으면 예수 형은 구할 수 있었어, 형이 우리 먼저 보내서 이렇게 된 거잖아!”
그 다음 날, 소식을 들은 가족들이 가버나움에 있는 예수의 집으로 갔으나 이미 예수는 떠난 후였다. 계속 생업을 놓고 있을 수 없어서 결국은 도로 나사렛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둘 다 그만해.”
묵묵히 있던 유다가 입을 열었다.
“이유는 말하지 마. 그냥, 지금은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 야고보 형 가지 않을 거면, 요셉 형, 우린 그만 돌아가자.”
유다와 요셉이 몸을 돌렸다. 걸어가는 그들을 보면서 야고보는 또 한 번 마음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꼈다. 어머니와 요셉도 틀어졌고, 저 역시 요셉과 유다와 다투고 말았다. 어릴 때는 다투어도 늘 그것을 해결해주는 예수가 있었다. 때로는 엄하게, 때로는 자애롭게 그들을 타이르고 나서 두 사람 모두에게 교훈이 될 만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남자 형제가 다섯이나 되어도 서로 다투지 않고 화목하게 지냈던 것은 그 중심에 예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다시는 그런 날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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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하나마 쓴 것은 끝까지 올려보려고 합니다. 수정하려고 했는데, 그냥 올릴게요. 내일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