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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나비 Jul 13. 2024

뒷담화의 함정

뒷담화는 시선을 나에게서 타인에게로 향하게 한다

누구에게 상처를 받았을 때, 스트레스를 가장 빠르게 푸는 방법이 바로 뒷담화를 하는 것이다. 뒷담화는 빠르고 강한 효과가 있어서, 스트레스를 해소해 줄뿐 아니라 그 힘들었던 감정을 매우 유쾌한 감정으로 바꾸어 준다. 그 사람에게 당했던 것을 떠올리며 그를 욕하면, 마치 나를 괴롭혔던 그를 내 밑에 엎드리게 하고 내 지인들과 함께 짓밟는 쾌감이 느껴진다. 


나 역시 뒷담화를 매우 일상적으로 했던 때가 있었다. 때는 13년 전의,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할 적에 나를 미워하며 괴롭히던 선배 교사와의 갈등으로 매일이 힘들었을 때이다. 그때 나에게는 동기 선생님이 있었다. 그 선생님은 좀 독특했는데 막말을 하는 듯하면서도 또 배려를 하고, 화를 내는 듯하면서도 또 잘못한 일이 있으면 바로 사과를 하는 그런 분이었다. 그분은 나에게 잘해주면서 동시에 나를 힘들게도 했는데, 그러면서도 또 은근히 혹은 대놓고 나를 챙겨 주었다. 내가 그 선배 교사의 욕을 가장 많이 한 사람이 바로 그 동기 교사였다.


나는 다른 선생님들에게 다 그의 욕을 하고 다닐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동기 교사와는 묘한 친분이 있었다. 그 동기 교사도 그 선배 교사에게 괴롭힘을 당했었다. 바로 내가 당하기 직전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그 선배 교사는 타겟을 동기 교사에서 나로 바꾼 것이었다. 그러니 우리는 누구보다도 말이 잘 통했고, 그가 하는 말은 하나하나가 다 사이다였다. 그는 말을 굉장히 재미있게 하는 재주가 있어서 더 재미있었다. 특히 술과 함께 어우러진 뒷담화는 날 새는 줄 모르고 이어졌으니, 나는 뒷담화의 재미를 가르쳐 주기 위해 저 선배 교사가 존재하는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선배 교사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웃으며 인사하고, 끝까지 그를 존중하는 척을 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늘 욕을 했다. 뒷담화의 연장이었다. 어차피 조금 있다가 실컷 씹을 거니까, 지금은 인사 잘 받고 가시오.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점차, 뒷담화의 부작용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뒷담화는 할 때는 무척이나 재미있었지만 하고 나면 허무해졌다. 실컷 씹고 나서도 달라지는 것은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여전히 나를 괴롭히는 그의 앞에 가면 쪼그라졌고, 그의 눈치를 보았고, 그를 의식했다. 나도 그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저 뒷담화를 할 당시에만 조금 재미있을 뿐이었다.


결국은 그때에 내가 왜 그토록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휘둘리는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상대가 잘못한 것이니, 나는 조금도 바뀔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나를 바꾸어서 궁극적으로 나에 대한 그의 태도를 바꾸려고 하는 것은 그의 태도를 내가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에 근거한다. 뒷담화 역시 마찬가지다. 모든 것을 상대의 잘못으로 미루고 나는 조금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것은, 상대에 대한 내 반응과 태도 역시 상대가 책임져야 한다는 잘못된 믿음에 근거한다. 그러므로 뒷담화를 하면 할수록 커지는 것은 허무함이다. 문제는 그 허무함마저, 뒷담화의 재미에 묻혀버린다는 것이다.


물론 한두 번, 진짜 화가 났을 때, 너무너무 폭발할 지경이라 누구에게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는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대상에 대한 지속적인 뒷담화는, 그에 대한 나의 태도를 돌아보지 못하게 만들어 결국은 그 상황에서 나를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우를 범한다. 그러므로 상처를 받을 때마다 뒷담화를 하기 보다 '내가 왜 상처를 받았지' '어떤 지점에서 나는 휘둘렸지' '내 기분이 움직이는 부분은 어떤 부분이지'를 떠올려 보면서, 이 상황에서 나를 꺼내기 위한 건설적인 고민들을 해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그럴때에 나는 성장할 것이고, 그 미워하는 사람이 어쩌든 나는 다른 사람들과 더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결국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하는 최고의 복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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