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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나비 Jul 15. 2024

받아들이기

나를 미워하는 이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좋은 양육자는 아이가 잘못했을 때 그 아이의 잘못을 지적하고 고치도록 권유한다. 하지만 내가 어릴 때, 나의 어머니를 비롯한 대부분의 양육자는 아이가 잘못했을 때, 아이의 잘못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그 아이 자체에 대해서 거부하는 모습을 보인다. 화를 내고 때리며 '너 같은 걸 내가 키우다니' 따위의 말로 아이에게 상처를 준다. 이것은 좋은 양육이 아니며 분명 양육자가 잘못하는 것인데도 양육자는 자신이 히스테리를 부리고 아이를 함부로 대한 원인을 아이에게 돌린다. '네가 잘못해서 내가 널 미워하는 거야.' '엄마가 이러지 않기를 바라면 네가 똑바로 잘해.'


이렇게 자란 어린 아이는, 주변 사람이 자신을 미워하는 것을 자신의 탓으로 알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애초에 그의 양육자가 그에게 잘못 가르친 것이다. 그는 양육자를 너무나도 사랑하여, 그 말을 진실로 알고 양육자의 잘못조차 자신이 책임지려고 하였으나 그렇게 하면 결국 그들은 바른 관계가 되지 못한다. 서로의 잘못은 서로의 책임으로 가져가야 한다. 


어릴 때 양육자와 바른 관계가 되지 못하였다면, 성인이 되어서 스스로 그것을 깨닫고 더는 어린 아이처럼 주변의 미움까지 끌어안지 않기로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저 사람이 나를 미워하는 것이 너무도 신경쓰이는 까닭은, 그 사람이 나를 미워하는 사실 그 자체 때문이기 보다는 어릴 적에 부모님이 나를 미워하는 원인을 나에게 돌렸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부모님의 잘못은 부모님에게로, 나를 미워하는 이의 잘못은 그에게로,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내가 결정해야 한다. 그렇게 되었을 때 올바르며 건강한 관계가 바로잡히게 된다.


하지만 나는 오래도록 어린아이로 머물러 있었다. 그것은, 내 자라는 환경도 그렇고 그다지 미움을 받을 만한 환경에서 자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부모님은 나를 대학까지는 충분히 교육시킬만한 재력이 있었고 내가 대학과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기본적인 교양을 갖춘 이들이기에 나를 이유없이 미워하는 적은 거의 없었다. 아마 13년전의 그 동료 교사가 거의 유일했는데, 그 이후에는 없었던 것을 보면 그것은 내가 뭐가 잘나서라기 보다는 그저 내 환경이 좋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내가 잘해서'라고 멋대로 생각해 버렸다. 그래서 계속 미움을 받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니,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 어찌나 당황스러운지. 왜 없어야 할 것이 나타났지?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처음에는 관계가 좋았던 사람이니 더 그랬던 것 같다. 과거로 돌아가서 선택을 바꾸어 보기도 하고, 그가 나를 미워하는 것을 부인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나를 미워한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내 잘못과 관계 없이 사람은, 나를 미워할 수 있다. 


어릴 때의 양육자는, 자신의 미움을 자녀에게 투영했기에 자녀가 용서를 빌고 벌을 받고 매를 맞고 나면 용서를 해 주었다. 그러나 나를 미워하는 이와의 관계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여기서 일어나는 것이 바로 '성장'이다. 더는 예전의 세상이 아니라는, 내가 믿었던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자아가 깨지며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성장이다.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이가 나타난 것은 오히려 감사해야 할 거리가 되는데 그것은 내가 그를 통해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갔고, 거짓된 세상에서 진실된 세상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나를 미워하는 이가 나타난 것은 그러므로 새로운 공부의 장이다. 이제는 어린 아이로서 양육자와 소통하는 것이 아닌, 어른으로서 어른으로 소통하는 법을 배워나가는 세상인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많이 힘들다. 마치 새로운 운동을 할 때 아직 개발되지 않은 근육을 키우면서 고통스러운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고통은 고통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고통으로 근육은 강해지고, 몸은 건강해지고, 결과적으로 나에게 매우 이로운 몸이 만들어진다. 나를 미워하는 이가 존재하는 세상도 그러하다. 처음에는 고통스러워도 그 미움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개발되지 못했던, 하지만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근육이 키워지기 시작한다. 


나는 지금 그 시작점에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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