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 다루기

내 안의 감정을 내가 안아주는 법

by 나무나비

심리학을 대중들에게 재미있게 설명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의 강의를 요즘 즐겨 듣고 있다. 김경일 교수가 말하는, '성격장애인 사람들에게서 나를 지키는 방법' 강의를 들었다. 성격장애인 사람들이란 대표적으로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자기애성 성격장애가 있는 이들을 이르는 것이었는데, 다른 심리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김경일 교수도 그들을 당신의 삶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했다.


김경일 교수가 소개하는 가장 첫번째 할 일은, 휴대전화에서 그 사람을 지우는 것이다. 그러니 그 사람에 대해서 더 생각도 하지 말고, 말을 섞지도 말고, 전화가 와도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받으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첫번째부터 이미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 어린이집 관련 톡방이 몇 개가 되고, 그 톡방에서 다 나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전화는 하지 않으니 저장이 되어 있으나 아니나 상관은 없지만 톡방에서 자꾸 이름이 보이고 말하는 것이 보이는 것을 내 눈에서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그 사람과 만난지 며칠이 지났다. 만나서도 인사를 한 것이 전부요, 따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한 것은 전혀 아니다. 그는 몇 달 전에는 그래도 인사는 받아 주었는데, 이제는 인사를 해도 '에에' 이러면서 고개만 5도 각도로 까딱하고 말뿐이다. 사람이 아니라 개가 인사해도 그렇게는 안 받겠다 싶지만 어쩌겠는가. 그는 나를 미워하기로 결정을 했고 그 결정을 번복할 생각이 없으니.


그가 나를 미워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얼추 정리가 되었다. 수없이 그와 틀어진 날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그 상황에 대해서 솔직히 말하고 주변의 조언을 들었다. 물론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객관적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남편을 제외하고는 그 상황을 공유한 사람 중에 그를 아는 사람은 없다. 나 역시도 열심히 생각해 보았다. 내가 정말 잘못한 일이면 다시 한 번 사과를 해서라도 그의 마음을 돌리고 싶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 결론은 '그가 지나치다'는 것이었다. 그는 확실히 지나쳤다. 너무 심할 정도로 지나쳐서, 내가 정말 잘못한 일인가 다시 반추해 보고 반추해 보아도 결론은 한 가지였다. 그는 내 잘못이 아닌 다른 엉뚱한 것을 가지고 화를 내고 있었고, 그 엉뚱한 것이 무엇인지 나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매우 소중한 종이가 있었다. 그 종이는 그에게 너무도 소중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종이가 그에게 그렇게 소중한 것인 줄 모른다. 한 사람이 지나가다가 그 종이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 사람은 종이를 주워서 책상에 도로 올려놓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 종이를 그곳에 둔 그 사람에게도 책임은 있었지만, 그래도 떨어뜨렸으니 사과를 했다. 그런데 그 종이 주인은 사과를 받고도 여전히 그 사람을 미워했다. 그 종이가 그 사람에게 너무도 소중했기 때문이다. 소중한 종이를 떨어뜨렸으니, 사과를 해도 용서를 해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종이가 떨어진 것이 왜 그렇게 화가 나는 것인지, 그 이유는 그 종이 주인만 알고 있다. 종이에 관련된 트라우마가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아주 오래 전에 종이가 떨어졌는데 하필 자전거가 지나가서 그가 다친 기억이 있어서 그것 때문에 화가 가라앉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종이를 떨어뜨린 사람은 그 사실을 모르고, 그러니 종이 주인이 화를 내는 것은 사실상 종이를 떨어뜨린 사람의 책임이 아니다. 종이를 다시 올려주고 사과까지 했으니 그는 할 것을 다 한 것이다. 하지만 종이 주인이 그 책임을 계속 종이를 떨어뜨린 사람에게 돌리면서 화를 내고 있다면, 그것은 그 종이 주인의 마음이 건강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그가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그에게는 그와 관련된 내가 모르는 기억이 있고, 그 기억 때문에 화가 난 것 같은데 그는 그것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하는 것 같다. 문제는 그의 이러한 반응이 내게 수치심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가 인사를 하지 않아 같이 인사를 하지 않아도 내게는 죄책감이 남고, 그가 인사를 하건 말건 내가 인사를 하면 내게는 수치심이 남는다. 죄책감은 내가 그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에 그 원인이 있고, 수치심은 그가 내 인사를 받지 않았다는 것에 원인이 있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그가 성격장애라고 생각한다. 비단 나에게 이렇게 대해서만이 아니고 여러 정황들이 있다. 성격장애는 드물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그러니 유투브 채널에서 그렇게 성격장애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는 것이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또 다른 어떤 곳에서 성격장애인 사람들은 튀어나올 수 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이런 성격장애인 사람들을 대할 때 내게서 느껴지는 죄책감과 수치심을 어떻게 다룰 것이냐는 것이다.


<분노 죄책감 수치심>이라는 책에서는, 일단 이 감정을 내가 수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느낀다고 멀리할 것이 아니라, 이것들을 내가 느끼는 상태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숨은 욕망을 알아내어 읽어주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죄책감은 바르게 살고 싶은 욕망, 그리고 수치심은 내가 다른 사람과 긴밀히 연결되고 싶은 욕망이 있을 때 느껴지는 감정이다. 그러므로 죄책감이 느껴졌을 때는, '내가 다른 사람의 반응과는 상관 없이 나는 올바르게 살고 싶은 마음이 있구나'하고 내 마음을 읽어주고 수치심이 느껴졌을 때는 '내가 다른 사람과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 있구나'하고 읽어주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이야기해도 좋지만 스스로 내가 내 마음을 읽어주어도 충분히 효과가 있다고 한다.


성격장애는 자신의 감정을 자신이 다루지 못할 때에 일어난다. 다양한 성격장애가 있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취약함을 인정하지 못하고 그것을 타인에게 전가한다는 것이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바로 그런 행동을 하고 있다. 이럴 때에 가장 좋은 대응은, 그와는 달리 나는 내 감정을 읽어주고 안아주는 것일 것이다. 나는 이러한 감정을 느끼고 있고, 이것은 불편하고 멀리해야 할 감정이 아니며, 내 욕구를 반영한 감정일 뿐이라고. 그렇게 나를 인정하고 수용할 때, 나는 내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나 자신을 훨씬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될 것이다. 타인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 후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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