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은 예민하다.
딸아이의 몸무게 300g이 빠진 걸 보고 당뇨일지 모른다며
병원에 가보자던 그날도 남편이 예민하다 생각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 한 번 내 귀를 스쳐간 당뇨라는 두 글자가 온종일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여름이 되면서부터 유달리 말라 보이던 팔과 다리.
딸의 소변을 정리하느라 하루에도 여러 번 화장실을 드나들었던 일.
그리고,
고작 4살짜리 아이 입에 어울리지 않게 붙어있는
피곤하다는 말.
그럴 리가 없는데.
남편이 예민한 건데.
근데 왜 이렇게 불안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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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지 못하는 밤이 지나고 해가 밝자 서둘러 병원에 갔다.
우리 이야기를 다 듣고 이어지는 소아내분비 전문의의 대답에 난 꽤나 민망했다.
"유의미하게 살 빠진 것도 아니고... 소변을 자주 본다면
요로감염을 의심하는 게 맞지 않나요?
엄마 아빠가 왜 당뇨를 의심하는지 모르겠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우리가 너무 유난스러웠나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지워지지 않는 불안이 남았다.
아이의 당화혈색소 수치를 꼭 보고 싶다고 부탁드렸다.
그렇게 검사 항목 중 당화혈색소가 마지못해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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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생일파티 주인공인 딸을 예쁘게 차려 입히고
어린이집에 데려다준 뒤 우린 서둘러 병원으로 발을 옮겼다.
검사결과를 찬찬히 보던 의사는 굳은 표정으로 검사실에 전화를 걸었다. 우리 딸의 이름과 검사결과를 몇 차례 다시 확인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사이 아주 잠깐.
5초도 되지 않을 침묵 속에서 불안은 확신이 되었다.
당화혈색소 8.6
지금 바로 대학병원으로 가보라는 말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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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대학병원 소아과 외래를 찾아갔다.
예약 취소 환자가 있어서 당일 진료가 가능했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진료와 입원을 위해 딸을 데리러 어린이집으로 갔다.
생일파티가 즐거웠는지 한껏 행복한 얼굴로 나오는 우리 딸.
참을 수 없는 눈물을 꾸역꾸역 삼키며 딸에게 말했다.
"우리 병원 캠핑 갈까?"
그날, 남편의 예민함이 우리 딸을 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