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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파파 Jul 30. 2024

028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브라리언 헤어 등 저)


사피엔스가 지구의 지배종이 된 이유는 그들이 다정해서이다?


"적자생존"은 찰스 다윈을 위시한 수많은 진화생물학자들이 견지한 종의 진화 법칙이다. 환경에 적합한 종이 살아 남고 그러한 형질이 유전되어 진화가 이루어진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이러한 이론에 더해 "우자생존"을 주장한다. 서로에게 친화적인 종이 더 발전하고 생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사피엔스가 지구의 지배종으로 군림하게 된 이유도 바로 이것에서 찾을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간이란 종은 상호 호의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어 서로 간 협력이 용이하게 이루어졌고, 이로 인해 문명의 급속한 발전이 가능했다는 추론이다.

우리의 신체에서 이러한 주장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곳이 바로 눈동자이다. 동물들의 눈은 대부분 검은자위로 이루어져 있는 반면, 인간의 눈은 검은자위 주변에 흰자위가 차지하고 있다. 이는 상대방이 바라보는 곳을 인지하게 할 수 있어 서로의 소통과 협동을 용이하게 만들어 주었다.

강아지가 불과 수개월만에 성체에 가깝게 자라고 망아지는 생후 몇 개월 만에 뛰는 반면에 인간은 신체와 뇌발달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데 까지 20년에 가까운 긴 시간이 소요된다.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복잡한 사고 체계와 생물학적 구조 때문에 성장의 과정이 유독 길다. 그러나 이렇게 늦은 발달 과정에도 유아 시기 다른 종에 비해 두드려지는 특징이 하나 있다. 바로 타인의 감정과 생각을 읽고 공감하는 능력이다.

저자는 이에 대한 한 가지 예시로 손가락 지시에 대한 반응을 언급한다. 대부분의 종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면 손가락에 집중하지만 인간을 비롯한 몇몇 영장류(보노보 등)는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쳐다본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은 유아기부터 소통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소통 능력은 공감과 협력을 추동하고 이것이 바로 인류 문명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애정 호르몬 옥시토신의 함정


인간은 이렇게 자신이 속한 집단 구성원에게 친절하고 호의적인 태도를 갖춘다. 이렇게 내집단에 애정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하는 데에는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작용한다. 아기를 분만한 엄마에게 모성애를 솟구치게 하는 호르몬도 옥시토신이다. 그래서 흔히 옥시토신을 사랑의 호르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옥시토신은 외집단을 향할 때 정반대의 작용을 일으킨다. 때에 따라 집단 외부의 존재에게는 누구보다 호전적인 태도를 취하게 만든다. 출산한 엄마가 자신의 아기에게 무한한 애정을 쏟게 만들지만, 반대로 자신의 아기에게 누군가 조금의 위협을 가한다면 엄청난 분노와 공격성을 유발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작용이다.

무리 지어 생활했던 우리 조상들의 생존의 역사를 상기하면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내 것을 빼앗으러 오는 외집단의 구성원에게 친절함을 베푸는 형질을 지닌 개체들은 안타깝게도 살아남기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국가대항 스포츠 경기를 시청할 때 태극마크를 보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상대팀을 쳐부수길 바라는 마음도 바로 이러한 기제에서 나온다.

실제로 고질적으로 민족 갈등이 심한 지역에서 성장한 청소년들은 높은 옥시토신 수치를 보인다고 한다. 사랑 호르몬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옥시토신은 이렇게 양면적인 작용을 불러일으킨다.

즉 우리의 다정함이란 매우 편협하게 작용한다. 바로 자신과 동일시할 수 있는 내집단을 향해서만이다.


외집단 편향과 비인간화. 인간 사회 갈등의 원인


이러한 뇌과학적 작용으로 인간은 기본적으로 외집단에 대한 반감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 더해 외집단에 대한 비인간화는 우리에게 외집단 편향을 일으키고, 나와 다른 집단의 존재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며 공감하는 능력을 저하시킨다.  

대표적인 것이 근대 사회에 이루어진 흑인 노예에 대한 규정이다. 당시의 서구 사회는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며 인본주의가 자리 잡혀갔다. 그러나 천부인권이라는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은 흑인 노예들에게 적용되지 않는 도덕적 모순을 보였다.

이러한 딜레마는 흑인을 유인원에 비유하는 비인간화로 해결되었다. 흑인은 진화가 덜 된 백인과 유인원 중간 단계로 인간에게 적용될 윤리 규범을 적용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다.  

즉 비인간화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도덕적 배제를 일으키고, 그렇게 배제된 사람 혹은 집단은 적대시하고 공감할 필요가 없는 존재가 된다.

이러한 비인간화로 인한 집단 간의 갈등은 현대 사회에도 만연하다. 동북아 3국은 서로를 조센징, 쪽발이, 짱개 등 비속어에 빗댄 비인간화를 통해 서로를 혐오하고 상대의 고통에 둔감한 모습을 보인다. 이밖에 세계 곳곳에서 갈등이 있는 민족은 서로를 내집단과 다른 존재로 비유하고 속칭하며 서로를 반목한다.


악의 평범성. 그 근원에는 외집단에 대한 비인간화가 존재한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통해 '악의 평범성'을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이에 영향을 받은 밀그램은 유명한 '밀그램 실험*'을 통해 권위에 굴복하여 무너지는 도덕성을 보여주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평범한 인간이 권력에 굴종하여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기를 포기함으로써 반윤리적인 행태를 취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러한 한나 아렌트와 밀그램의 주장에 어딘가 부족함이 있다고 느꼈다. 어떻게 아무리 강한 외압이 있다 하더라도 나와 같은 인간에게 폭력적이고 가학적인 행위를 가함에 있어서 일말의 동정심을 전혀 느끼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아주 작은 양심의 가책이라도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는 아이히만은 만약 자신에게 주어진 직무(유태인 학살)를 수행하지 못했더라면 오히려 더 큰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라 발언하였다. 자신 때문에 목숨을 잃은 유태인들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은 없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히만의 행태가 집단과 권위에 대한 굴복이 아닌, 사실은 그가 공감기능이 결여된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 등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가진 인물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을 품었다.

그러다 이 책을 읽고 그러한 의문이 조금은 해소되었다. 당시 유럽사회에는 유태인에 대한 혐오가 만연했다. 거기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막대한 배상금 부과에 심각한 경제 침체를 겪고 있던 독일은 게르만 족을 결집하고자, 모든 문제의 근원을 유태인의 탓으로 돌린 히틀러가 장악하고 있었다.

즉 아이히만의 악행은 단순히 권위에 대한 굴종만이 아니라, 유태인에 대한 지속적인 비인간화를 접하며 같은 인간이라는 동질성을 잊게 만들었기에 잔학한 악행에도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는 설명이 더 적합하다.

이에 관해 저자는 심리학자 알버트 벤듀라의 주장을 언급한다. 바로 비인간화가 인간의 잔인성을 설명해 주는 핵심 요소라는 것이다.


* 밀그램 실험 : 1961년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 스탠리 밀그램에 의해 고안된 실험이다. 피험자가 선생님, 실험에 섭외된 연기자가 학생으로 역할을 맡아 선생이 낸 문제를 학생이 틀릴 때마다 징벌적으로 전기적 고통을 주는 실험으로, 실험 주최 측은 권위적인 태도로 전압을 올릴 것을 강요한다. 이때 피험자들의 태도를 통해 사람의 가학적인 행위는 성격이 아닌 권위적인 환경에서도 발현할 수 있음을 입증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후에 실험 설계와 과정에서 인위적이고 조작된 흔적이 많다는 의혹이 있었다.


현대에 더욱 파편화되고 만연한 집단 간의 갈등


이러한 일련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니 현대 사회 갈등의 특징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과거의 집단 구분의 기준이 주로 민족과 국가적인 요소가 주요했다면, 현대의 갈등은 과거보다 더욱 파편화되어있다.

국경과 인종을 넘어 성별, 나이, 부의 정도, 출신 지역, 학벌 등등. 심하게는 이를 넘어 탕수육 소스를 부어먹는 사람과 찍어먹는 사람 간의 다툼 또한 존재할 정도로 오만 것을 기준으로 삼아 서로를 '나'와 '너'로 구분 짓고 있다.       

나는 그 원인 중 하나를 인터넷의 발달로 본다. 각종 커뮤니티가 특정 의견을 지닌 사람들을 구합 하며 에코챔버효과를 강화한다. 거기에 인터넷이라는 장벽이 서로 간 직접적인 대면의 기회를 앗아간다. 인터넷상의 타인을 평가할 기준은 오롯이 제시된 논제에 대한 입장 차이뿐이다. 의견이 같으면 내집단, 다르면 외집단으로 구분 짓은 이분화가 수없이 자행되고 그 결과 수많은 분열이 일어난다.


현대사회의 갈등을 해결할 방법은?


저자는 본인의 경험에 입각해 개를 키워볼 것을 권한다. 개를 키우며 자신과 다른 종에 대한 포용적 태도를 길러, 다른 집단의 구성원에게도 다정하게 대할 수 있는 자세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일견 타당하나, 우리나라의 상황에는 조금 맞지 않을 것 같다.

현재 우리나라는 반려동물 시장이 엄청나게 커지고 있는 반면 육아용품 시장은 이와 반대로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이는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기보다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는 수요가 많아져서 그렇다.

인간이 구성할 수 있는 가장 작고 단단한 집단이 바로 혼인과 출산으로 결성되는 가족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러한 가족 집단 붕괴의 부산물로 반려동물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반려견에게 온 마음을 쏟고, 그들을 가족의 구성원으로 인식함으로써 전통적인 형태인 가족의 필요성을 잊고 있는 현대인들이 많다. 즉 우리 사회에서는 반려동물이 오히려 1인 가구 등 특수한 가구 형태의 구성원들의 인간관계를 더욱 단절시키는 효과가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우리 사회의 수많은 갈등을 없애기 위한 방책으로 혼인과 출산을 장려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정책이 많이 입안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독사, 1인가구, 히키코모리, 은둔청년 등 가족 구성원에서 이탈해 고립되어 가는 사회구성원들이 늘어나는 것이 현재 우리 사회가 당면한 큰 사회적 문제이다. 이러한 현상이 지금 우리 사회에 만연한 파편화된 갈등의 하나의 원인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가족 형성을 장려하는 정책들로부터, 많은 이들이 가족 구성원들과 그 구성원들로부터 파생되는 수많은 만남과 접촉을 경험하며 우리 사회가 서로를 내집단화 하며 만연한 반목이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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