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0년 가까운 긴 시간 동안 전 세계는 세계화의 흐름에 따라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었고, 디플레이션을 걱정할 정도의 안정적인 물가 속에 지내왔다. 하지만 브렉시트와 미-중 무역분쟁 등 탈세계화라는 거대한 분열과 코로나19,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격변의 사태를 겪으며 지난 수십 년 동안 겪어보지 못한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경험하고 있다. 항상 시장의 편에 있을 것만 같았던 연준의 강경한 매파적 기조에 ’ 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을 경험해보지 못한 시장 참여자들은 어리둥절하고, 급격한 금리 인상과 같은 통화 긴축으로 시장은 강력한 침체를 두려워하고 있다. 그럼에도 자산시장의 향방은 경제지표보다 FOMO 등의 이상 심리가 지배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세계와 각국의 경제 상황은 각종 변수에 따라 등락을 반복하였다. 경기 사이클이라 불리는 순환 주기를 반복하는 경제적 특성으로, 경제만큼 역사를 아는 게 미래에 도움이 되는 분야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시대’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경제학 이론서라기보다 20세기 이후 미국을 필두로 하는 경제사에 관한 책이다. 지금의 당혹스러운 경기 상황에 대한 유연하고 의연한 대처를 위해, 무엇보다 선례로부터 학습 필요성이 높아가는 시기, 매우 두껍고 작은 글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과감히 선택해 보았다.
시민권의 향상과 부의 증가에 경제학자들의 위상이 높아졌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경제학자들의 사회적, 정치적 위상이 높아졌다고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근현대로 넘어오며 왕정과 군주제에서 민주주의로 체제 전환이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세계는 소수의 기득권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 비록 그 기득권이 시민과 국민을 대변한다는 의회라는 탈을 썼더라도, 그들이 보호하는 권리는 소수의 특권에 머물렀다. 정보의 폐쇄성이 짙었던 시기, 일반 대중은 일정량의 의식주가 보장되는 한 국정운영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렇기에 정책결정권자들은 명목적으로는 대중을 위한다고 부르짖으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소수의 기득권을 위한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사회의 다수를 이루고 있는 일반 대중의 가치판단 능력이 향상되었다. 또한 다양성의 증가로 집단 간 갈등이 점점 심해졌다. 그로 인해 정책입안자들은 다양한 갈등 속에 있는 다수의 대중을 설득하고, 납득시킬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해야 했다. 설득을 위한 논리는 더욱 중요해졌고, 첨예한 대립에서 가장 강력한 논리는 객관적인 수치들이다.
빵과 사과 중의 선호에는 정답이 없으나, 1보다 2가 더 크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렇기에 복잡다단한 사회를 손쉽게 설명하는 분야로 수학을 앞세우는 경제학이 적합하다. 거기에 사회의 부가 급격히 팽창하는 시기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더 많은 과실을 열망하며 경제학자들의 위상이 높아져 갔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경제학은 모든 것에 가격을 매긴다. 심지어 사람의 생명까지도. 사회를 명징하게 기술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떻게 보면 가장 냉혈한 학문이 아닌지 씁쓸한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경제학자들이 사회의 전면에 나서면서 등장한 담론은 무엇일까?
20세기 경제사는 시장 vs정부의 싸움이다
지난 한 세기 간 경제사의 거대한 흐름은 경제학사의 위대한 두 거장과 그 후학들의 싸움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한쪽은 시장에 철저한 자유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 밀턴 프리드먼이며, 그 반대에는 자유방임의 폐해를 막기 위해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존 메이너드 케인즈가 위치한다.
1차 세계대전 이후 1920년대 미국은 엄청난 호황기를 경험한다. 광적인 수준의 활황에 버블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고, 그 결과 1930년 대공황으로 터진다. 대공황 시기 케인즈 식 처방이 세계의 경제를 구했고, 케인즈학파의 집권은 정부의 방만함을 키웠다. 그에 대한 폐해로 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이 다시금 세계 경제를 수렁으로 빠뜨린다. 대처와 레이건을 위시한 작은 정부가 '80년대 세계 경제의 부흥을 구가하며, 프리드먼을 대표한 시카고학파가 세를 잡는다. 각종 규제의 완화 등 작은 정부의 지향이 결국 시장에 대한 관리 감독을 소홀하게 하였고, ’07년 리먼브라더스를 비롯한 방탕한 운영을 이어온 은행들의 파산으로 세계의 경제는 다시 위험에 빠졌다. 다시 케인즈 학파의 집권을 예상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과도한 재정정책으로 인한 유럽발 재정위기가 발생하였다. 이후 크고 작은 경기 부침이 이어졌고, 코로나19 사태 이후 대규모 양적완화를 단행한 세계는 과도한 부채와 40여 년 만에 부활한 인플레이션으로 거대한 위기를 목전에 두고 있다.
물론 경제에 미치는 변수가 무궁무진하기에, 위기마다 특정 이념의 잘못으로 결론짓기는 매우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도식화는 지금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국가, 시장의 역할을 조금은 명확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성장 일변도 보다 분배를 동반한 발전이 더 효율적이다
경제의 부흥과 위기의 공과에 대해 시장과 정부 간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경제사를 보면 어느 한쪽의 정답이 없다고 보인다. 그러나 이 책은 분배를 외면한 시장 만능주의자들이 지배한 세상이 어떤 문제점들을 낳았는지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주로 하여, 이로부터 분배의 정의에도 고민할 여지를 준다.
공산주의와 같이 분배에만 초점을 둔 사회는 생산성 하락을 막지 못해 전체의 부가 줄어든다. 반면에 극단적 자본주의 같이 성장일로의 사회는 빈부격차를 극심하게 만들어 사회의 공리가 감소하게 된다.
규제도 마찬가지다. 독과점을 우려하며 지나친 규제를 가하게 되면 성장성이 훼손되고, 극도의 자율 경쟁으로 독과점 시장이 형성되면 피해는 국민이 지게 된다. (물론 자유시장주의자들은 독과점의 폐해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시장에 맥주 제조업체가 100개가 있든, 1개가 있든 수요자는 맥주 값이 싸기만 하면 그만인데, 독과점의 경우라고 자율 경쟁보다 가격이 높아진다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어느 한쪽이 정답이 아닌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그런 점에서 9장의 비교는 흥미롭다. 비슷한 수준의 중후진국이었던 칠레와 대만의 전후 상반된 방식의 경제 발전이 어떤 결과를 이룩하였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칠레는 철저한 자유시장주의를 택했다. 규제를 없애고, 많은 공기업을 민영화하였다. 그 결과 부의 분배가 이뤄지지 않았다. 물론 부의 편중이 오롯이 시장주의 때문만은 아니라 독재도 한몫했다.
반면 대만은 경자유전원칙에 따라 토지개혁을 시행하고 소작료도 낮추어 부의 분배가 이뤄지도록 했다. 그 후 산업화로 국가 발전의 방향을 성공적으로 전환하며, 불과 6, 70년 전 칠레 생산의 1/4에 불과하던 대만은 지금은 칠레 생산량의 2배에 육박한다. 경기부양에 소비는 필수적이다. 부가 소수에게 집중된 사회보다, 고루 퍼져있는 사회에서 더 많은 소비가 이뤄진다.
물론 시장주도냐 정부주도냐의 단적인 요소만 가지고 두 나라의 발전 과정을 평가하기는 무리가 있지만, 지금의 두 나라의 차이를 설명하는데 주요한 이유임에는 틀림없다.
시장주의자들은 선 성장 후 분배를 생각했지만 대만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분배를 동반하는 성장이 더 좋은 효율을 낼 수 있음을 우리는 역사에서 알 수 있다.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는 경제성장에 따라 불평등은 늘어나지만, 점차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 시장주의를 채택한 국가들의 불평등 지수를 보면, 계속해서 높아지기만 할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부’란 곧 권력이다. 왕정, 제정의 시대에 권력의 이동이 결코 정상적인 방법으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떠올려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공평한 분배는 결코 쉽게 이뤄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충분히 부가 축적된 국가에서 분배란, 부유층이 빈민에게 적선하는 시혜적인 과정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세상은 극단의 주장과 이념이 아닌 정반합의 과정에서 발전한다.
결국 어느 하나의 정답은 없다. 케인즈vs프리드먼, 분배vs성장, 규제vs비규제 등 서로 대척점에 있는 사상들의 싸움으로부터, 결국 세상의 발전은 정반합 과정의 반복이라는 헤겔의 변증법적 실증 사례를 깨달을 수 있다. 세상은 두 극단의 피 튀기는 싸움이 희석되는 과정에서 더 나은 곳으로 나가는 것이 생각한다.
그렇게 수많은 논의와 다툼과 투쟁과 싸움 속에서 세상은 발전했지만, 아직도 서로 다른 사상을 내세우며 분란이 계속되고 있다. 지금의 탈세계화, 신냉전이라 불리는 분열의 시기의 원인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엄청난 위기가 온다는 많은 전문가의 예측이 다가올 세상의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증폭시킨다. 하지만 그러한 경고가 더 나은 세상을 대비하기 위함이며, 결국 그간의 정반합의 과정처럼 세상은 다시 발전하는 과정으로 나아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