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너무나도 유명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이다. 여타 그의 소설에서 느낄 수 있듯 이번 작품도 정말이지 참신한 소재로 쓰여있어, 한번 독서를 시작하니 책을 놓기가 어려웠다. 군시절에 처음 읽었던 작품인데 십수 년이 흐른 최근 다시 한번 읽고 싶어서 책장을 열었다.
파피용은 나비 혹은 나방을 뜻하는 불어이다. 작중 배경은 황폐화되어 가는 지구이다. 환경오염이 심해지며 지구는 점점 사람이 살기 어려운 행성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도 인류 존속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14만 명을 태운 우주선이 새로운 지구를 찾아 탐험에 나서는 것이 전반적인 줄거리이다.
유기적 시스템인 지구의 순환 구조를 파괴하는 인간들
14만 명이라는 엄청난 다수의 인원을 탑승시킨 우주선이 대기권을 돌파하는 것이 가능한가?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적 고증은 SF소설의 장치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그보다 내가 관심이 갔던 부분은 14만 명의 사람이 우주선에서 하나의 사회를 창조했다는 점이다.
지구의 자원은 유한하다. 핵융합이나, 핵분열이 아니고서야 없던 원자가 갑자기 생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인간이 계속해서 재화를 소비하고 식량을 섭취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환원이라는 순환구조 덕분이다. 가축을 잡아먹고, 그 가축의 사체와 인간의 배설물이 토양에 있는 박테리아들로부터 분해되어 새로운 양분이 된다. 비-강물, 바다-수증기-구름-비의 물의 순환과 수십 억 년 동안 지구를 비춰주고 있는 태양이 합세해 나무에서 열매가 열리고, 각종 식물들이 자란다. 이러한 식물은 인간의 식량이 되고 가축의 먹이가 되며, 지구의 순환 시스템은 지속된다.
인간이라는 단일 개체에 비해 지구가 너무 크기 때문에 환원 과정을 우리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모기가 멸종하면 먹이생태계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연구결과에서 볼 수 있듯, 작은 균열이 지구 순환의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을 정도로 유기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소설 마션에서도 이러한 환원 체계를 접할 수 있다. 화성에 고립된 마크 와트니는 간이 막사에서 한정된 에너지원을 순환시켜 감자밭을 일구어 내는 장면이 나온다. 인간의 위대함과 자연 시스템의 유기성을 느꼈던 장면이다.
평소 우주와 천문학에 관심이 많은 나이지만, 진공인 우주에서 계속된 가속으로 시속 260만 km로 운항한다던지 태양계를 빠져나가는 것에만 수 십 년이 걸린다던지 이런 우주과학 분야보다 유기적인 환원 시스템에 관심을 갖은 이유는 지금의 지구와 우리가 직면한 상황과 유관하다.
급격한 경제 성장에 따른 자원의 무분별한 사용, 순간의 편의성에 치중한 과도한 일회용품 사용 등 우리는 지구를 낭비하고 있다. 산림을 훼손하고, 오염물질을 마구 배출해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는 등 순환 시스템의 요소별 타격은 민감하고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전체 시스템의 오류를 초래한다. 지구상에 등장한 지 수십만 년 밖에 되지 않은 호모 사피엔스가 불과 200년이 채 지나지 않은 찰나의 순간만에 45 억년 간 점진적으로 안착해 온 지구 생태계에 중차대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
인간의 이기심이 인류의 발전을 초래하였지만, 결국 그 이기심이 우리의 보금자리인 지구를 위협하고 있다. 살아남겠다는 인간의 의지가 이러한 환경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을 위해 전 세계가 공조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은 요원하다. 소설 내에서도 지구를 탈출하는 하나의 이유로 환경문제를 들고 있지만, 우리의 기술로는 지구를 탈출할 수 없다. 그리고 애초에 수 십 만년 인류의 보금자리인 지구를 탈출하는 것보다, 일부 불편함을 감수하는 한이 있더라도 지구의 순환시스템을 안정화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인 방안이 아닐까.
인간의 본성에 뿌리 박힌 폭력성
위에서도 언급했듯 환경오염을 초래한 것은 인간의 이기심이다. 이러한 이기심은 인간의 향상심 하고도 맞닿아 있는데, 이것이 기술의 발전이라는 긍정적인 요소로 발현되는 경우도 있지만 보다 간단하고 원초적인 행태, 즉 약탈과 같은 폭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인류는 끊임없이 폭력과 파괴를 자행해 왔다.
파피용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의 전쟁은 자멸이다. 파피용의 목적이 1000년의 여행을 통해 인류의 씨앗을 새로운 지구에 발아시키는 것인 만큼 많은 인원을 유지할수록 계획의 성공률은 올라간다. 때문에 프로젝트 발기인들은 파피용의 탑승인원의 선발에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을 폭력성이 없는 인간으로 정하였다.
그런데 단 2세대를 못 가 파피용에도 인간의 폭력성이 발현된다. 누구에게나 폭력성은 내재되어 있을 뿐이다. 다만 그 정도의 차이로 상대적으로 온순한 사람들이 파피용의 탑승자로 선발되었겠지만, 그중에서도 상대적으로 폭력성이 높은 사람들의 성향이 발현되었다.
마치 지구의 역사처럼 파피용에서도 1000년의 세월 동안 수없는 전쟁과 평화를 반복한다. 결국 새로운 행성에 다다랐을 때 남은 나비인(저자는 파피용에 탑승한 인류를 지구인간과 구별하기 위해 나비인이라 칭한다.)은 고작 6명이다. 인간의 이기심이, 폭력성이 자칫하면 인류의 자멸을 초래할 뻔했으나 어쨌든 인류는 다시 새로운 지구에 뿌리를 내린다.
하지만 자원의 제약 때문에 새로운 행성에는 남, 녀 1쌍이 착륙한다. 그럼에도 프로젝트의 말미에 이 두 명의 사이에 새로운 갈등이 생겨 남자 혼자 남게 된다. 그렇게 파피용 프로젝트는 실패할 뻔했지만 다행히 인공 수정 시스템의 수정란이 있었다. 수정을 위해 인간의 골수가 필요했고, 최후의 나비인은 자신의 갈비뼈를 이용해 배양에 성공하며 여자 인간이 탄생한다. 태생적으로 난청이 있는 여자 인간은 자신을 이브로, 남자를 에덴으로 발음한다.
작중 파피용이 도달한 행성은 공룡 같은 생명체가 존재하고 나무와 산, 물과 바다 등 푸르름이 만연한 곳이다. 마치 수백만 년 전의 지구와 같은 모습을 한 행성에서 이브가 탄생하는 모습은 성경 속 인류의 탄생과 흡사하다. 이렇게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이브 신화와 지구 생명체의 외계 기원설인 판스페르미아 설이 적절히 혼합된 결말이 매우 참신하고 재미있다. 인간의 상상력의 위대함을 느꼈던 부분이다.
우주공학기술의 발전은 우주여행에만 쓰이길 바라본다
이렇게 소설 <파피용>은 현재 지구의 상황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주고,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고찰을 할 기회를 선사하며, 다양한 상상력으로 SF 소설 특유의 재미를 전달해 준다.
올해의 여름은 역대급 무더위라 한다. 혹자는 앞으로 우리가 경험할 여름 중 가장 시원한 여름일 것이라는 자조 섞인 농담을 하기도 한다. 그만큼 기후 변화의 위기가 체감되는 요즘이다. 마치 소설 속의 과학자들처럼 일론 머스크나 제프 베이조스와 같은 천재 백만장자들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우주 산업에 투자하고 있다. 작중 과학자들은 지구와 흡사한 행성으로 가기 위해 노력했고 현실의 투자자들은 화성 같은 곳을 테라포밍 하기 위한 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지만, 수십억 인류가 조금은 더 지구를 위한 마음을 품고 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하여 우리가 지구를 버리고 떠나는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그래서 우주공학기술의 발전은 단지 우주여행의 수단으로 사용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