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쫄쫄이와 쫑쫑이 이야기를 마치며
내 친정 엄마는 정성과 희생으로 다섯 남매를 기르셨다. 육칠십년대, 물자가 귀했던 시절이었고, 국민학교 교사이셨던 아버지의 박봉은 다섯 남매를 먹이고 가르치는데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남매는 ‘엄마는 고기나 과일 같은 맛난 것은 아예 먹을 줄 모르는 사람’ 이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삼시 세끼 갓 지은 따뜻한 밥과 새로 한 반찬이 있어야 하셨던 까다로운 아버지와 올망졸망한 자식들을 키우면서도, 엄마는 가계에 보탬이 되는 무슨 일인가를 늘 하셨었다. 솜씨가 좋으셨던 엄마는 하숙집도 하고, 바느질도 하고, 나중에는 이런 저런 장사까지 억척스럽게 하시며, 우리의 교육에 헌신하셨다. 자식 배 불릴 생각에 생선 한 토막도 애틋이 구워내고, 어쩌다 들어온 떡 한 조각도 당신 입 보다는 자식 입 생각하며 귀해하신 엄마. 부처님 앞에 엎디어 자식들의 무탈함을 빌며 무수히 절을 올리고, 벌레 한 마리 잡을 때에도 자식 생각하며 조심스러워 하셨었다.
그렇게 엄마의 눈물겨운 희생과 정성으로 자라나, 나 또한 어미가 되었다. 다행히 세상이 좋아져 모든 것이 풍족하다. 어미 배 곯으며 자식 배 불리는 애틋함이 없으니, 아무래도 모성도 짠하고 애틋함이 덜하지 않을까 싶다. 나의 기도는 ‘아이구 나 좀 살려 주시라’고, 아직도 ‘나’가 화두인 채로 그렇게 시작되고는 한다. 아이 둘을 키우고 있으나, 내 친정 엄마의 발꿈치도 못 따라가는 어미인 것이다. 생각해 보면 두려운 일이다. 친정 엄마의 그 지극한 희생과 공덕이 없었다면 어찌 오늘의 나의 삶이 있겠는가? 그런데, 어미가 된 나는 자식들을 이 어지러운 세상에 내 보내놓고 어떤 공덕을 쌓고 있는가…
나 어릴 적, 사는게 힘들었을 친정 엄마는 여름날 밤에 이른 저녁을 먹인 우리 남매들을 평상에 뉘어 놓고 가끔씩 낮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셨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밝은 달만 쳐다보니...."
엄마의 나직한 한숨같은 노랫소리를 들으며 올려 다 보는 여름 밤하늘에는 별들이 쏟아질 듯 반짝였고, 엄마는 거친 손으로 우리들의 등을 한없이 쓸어주었다. 세상은 부족한 것 천지였으나, 우리들은 평화롭고 모성은 넘쳐 흘렀다.
세상은 이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들이 흘러 넘치고, 어미인 나는 그 흘러 넘치는 모든 것들을 왠만큼 부족함 없도록 자식에게 베푼다. 그러나, 일하느라 바빴던 나는 함께 하늘을 보며 누워, 한가로이 자식 등을 쓸어주는 여유를 부리지는 못했다. 별들이 쏟아질 듯한 밤 하늘도 어느새 사라졌다. 문득, 세상이 이래도 되나, 아이들을 이렇게 키워도 되나 싶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 밤 하늘의 별 구경도 느긋이 못하며 자라난 내 아이들은 어쩌면 사실은 딱한 세대일지도 모른다.
진작에 엄마가 되고서도 철이 안 들었다가 부모 잃은 늙은 고아가 되고서야, 비로소 친정 엄마가 나에게 베푼 귀한 것들, 그 눈물겨운 희생의 삶을 깨닫는 중이다. 심지어, 내 친정 엄마는 그 희생과 정성을 대를 건너 우리 아이들에게도 베풀어 주셨다. 내 아이들이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길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친정 엄마의 공덕이 딸을 지나 내 아이들에게 까지 닿아 있어서 일 것이다. 이 은덕을 나는 어디에다 갚아야 하며, 이 생에 갚기는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