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은 비껴 가지 않는다

- 이 책, 잘 쓰여진 소설 맞나요?

by 나무Y
소설: 우연은 비켜가지 않는다. (원제: Elizabeth Finch)
저자: 줄리언 반스(Julian Barnes)
옮긴이: 정영목
페이지수: 293쪽
출판사: 다산책방


올해 들어 처음으로 집은 책, '우연은 비켜가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의 소설은 처음으로 읽어 보았는데, 그의 소설 중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가 잘 알려져 있는 듯하다. 어딘가 그 제목이 익숙하다 싶었는데, 나중에서야 넷플릭스에서 영화로 보았었다는 것을 뒤늦게 기억해 냈다. 그러나, 제목만 기억이 날 뿐, 그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아, 인터넷 검색을 해 보고서야 '아하' 싶었다.



'우연은 비켜가지 않는다', 이 소설은 닐이라는 남자가 들려주는 엘리자베쓰 핀치에 대한 이야기이다. 닐은 이혼을 하고, 배우라는 직업에서도 실패를 하는 등 삶의 고비를 맞게 된 후, 일반인 대상의 '문화와 문명'이라는 강좌를 듣게 된다. '문화와 문명' 강의를 하는 엘리자베쓰 핀치 교수(이하 EF 교수)는 자신의 학생들에게 역사와 세상사에 대해, 기존의 해석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주체적으로 사고하여 스스로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이해하도록 끊임없이 독려한다. 닐은 이러한 EF 교수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는다.


닐은 EF 교수가 세상의 시류에 따라 관습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그녀는 세상을 독자적으로 인식하고 생각하며, 자신만의 가치관에 따라 비관습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자신의 삶에 대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절대로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는다. 닐은 이러한 EF에 대해 자신이 만나본 가장 어른스러운 사람이며, 스토아 철학적으로(스스로에게 도덕적으로 엄격하며, 이성적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느낀다. 닐은 그런 EF에게 매료되어 많은 영향을 받게 되고, 닐 역시 깨인 시각으로 세상사를 보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닐과 EF는 매년 두어 차례 만나며 20여 년간 인연을 이어간다. 그러다 EF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자신의 책과 서류들을 닐에게 남긴다. 닐은 그녀가 남긴 기록들을 들여다보며, EF라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던 중, EF 교수가 '율리아누스 황제'에 대한 메모들을 남겼음을 깨닫게 된다. EF의 메모들을 쫓아 율리아누스 황제에 대한 조사와 정리를 계속하게 된다. 이를 통해 닐은 과거 ’문화와 문명' 강의에서 EF 교수에게 제출하지 못했었던 에세이 작성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된다.


율리아누스 황제는 EF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 역사적 인물로 보인다. 로마제국의 황제 율리아누스는 기독교를 공식적으로 지원하던 콘스탄티누스 왕조의 흐름을 거스르고, 전통적인 다신교(이교)의 부흥을 꾀했다. 이로 인해 기독교에서는 '배교자 율리아누스'로 불린다고 한다. 그런데, 율리아누스는 어느 병사가 쏜 화살에 우연히 맞아 31살의 나이로 속절없이 죽어 버린다. 그로 인해, 다신교의 부흥은 실패하고, 로마는 기독교 사회로 일원화된다. 이는 훗날, 인류가 일원화된 중세 기독사회로 나아가는 계기가 된다. 인류의 문화와 문명의 발전에 있어서 일원화된 헤게모니는 그 폐해가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EF는 그 대표적 사례로 율리아누스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자주 언급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닐은 율리아누스 황제에 대한 기록들을 조사해 가는 과정에서 율리아누스 황제에 대한 기록이나 평가가 다양하고, 일관적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한편, 닐은 율리아누스에 대한 에세이가 거의 마무리가 되어 감에 따라, 예전 자신과 함께 '문화와 문명' 강좌를 같이 들었던 동기들에게 연락하여 EF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런데, EF에게 매료되어 그녀의 생각과 삶을 거의 추앙하다시피 쫓던 닐과 달리, 동기들 중에는 EF에 대해 매우 부정적 시각을 가진 이들도 있음을 깨닫게 된다.


마침내 닐은 깨닫는다. 율리아누스라는 역사적 인물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있듯이, 실존 인물이었던 EF 역시 만났던 사람들과 시간에 따라 서로 다르게 알고 다르게 이해된다는 것을. 즉, 닐은 자신이 '율리아누스'를 알고 이해하는 것이나 'EF'를 알고 이해하는 것이나 사실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EF의 삶을 쫓는 것을 그쯤에서 그만두어도 좋다는 통찰을 얻는다.


일단, 이 책의 원제는 Elizabeth Finch이다. '엘리자베쓰 핀치'라는 제목이 어떻게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가 되었을까? 아마도 저자의 전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와 운을 맞춘 제목인 듯하다(지극히 비즈니스적인 작명 아닌지.... 이런 거 싫구만).


그런데,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라니, 이게 무슨 뜻인가? 우연이 비켜 가지 않으면, 필연이라는 말인가? 인류의 역사,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사건들은 우연히 일어났지만.... 결국은 일어날 일(필연?)이었단 말인가? 더 나아가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가 엘리자베쓰 핀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어려우니, 예를 들어봄으로써 이해를 시도해 보자. 다신교를 꾀하던 율리아누스가 우연히 화살에 맞아 속절없이 죽어 버리는 바람에, 인류는 일원화된 기독교 사회가 되었다. 기독교가 일원화된 헤게모니를 쥐게 됨에 따라 인류가 겪은 어두운 중세 기독사회의 폐해를 고려해 보자면, 율리아누스 황제의 우연한 요절은 인류 문화와 문명의 발전 측면에서 매우 비극적인 사건이었으며, 피해 갔으면 좋았을 사건이다. 만약 그때 율리아누스가 우연히 죽지 않았다면(즉, 율리아누스가 우연한 죽음을 비켜 갔다면).... 인류는 다른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제목이 시사하는 것은, 율리아누스의 요절과 같이 우연이 일어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즉, 그 우연이 비껴 갔다고 하면 인류가 어떤 운명을 맞게 되었을까 하고 생각하는 자체가 부질없다는 의미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율리아누스의 죽음은 전적으로 우연이긴 했지만, 이미 일어났기에 그것은 결국 필연이었으며, 마찬가지로 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과거의 우연에 대해 그 우연이 비켜 간 경우를 가정하며 돌아보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지금 꿈보다 해몽에 빠져 허우적 대는 것인가?)



특히, 소설의 두 번째 장인 율리아누스 편을 읽다가 지쳤다. 재미없다. 그만 읽을까? 그러다 우연히 표지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창 밖에 달이 휘영청 떠 있다. 어떤 남자가 창문의 이쪽에 서서 달빛이 환히 비치는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다. 시야를 좀 넓혀서 창밖을 내다보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저 멀리, 어떤 이가 하얀 풍선을 날리고 있다.


저 남자는 밖에 둥근 달이 떠 있어 환한 달빛이 창문으로 쏟아지고 있다고 생각할까? 만약, 저 남자가 고개를 들어 창 밖을 내다보게 되면, (사실은 달이 아니라) 풍선임을 깨닫게 될까? 더 정신을 차려서 온전히 바깥을 내다보면, 바깥은 아직 대낮이며, 구름이 끼고 있어 우산을 갖고 나가야 한다고 깨닫게 되는 걸까?


소설 속에서 핀치 교수는 이야기한다. '모든 인간, 모든 역사에는 다양한 측면이 있다. 따라서, 큰 시야를 갖고 넓게 봐야 한다고...'


달을 보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지만, 잘 알고 보면 그저 작은 풍선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것... 그러니까, 어쩌면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모든 지식, 잘 알고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어떤 사람에 대해, 실제 우리가 보고 이해하는 것은 어느 순간의 어느 한 단면, 마치 좁은 창문을 통해 비치는 그림자의 한 순간을 보며 판단한 것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이 책, 읽기 어렵다. 통상적인 소설이라기보다는 소설과 철학서 그 중간의 어디쯤인 것 같다. 그런데, 소설로서는 재미가 너무 없고, 철학서로는 명쾌하지가 않다.


그런데,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던져 주기는 했다. 그럼에도 이것이 (잘 쓰여진) 소설(이야기?) 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소설이란 모름지기 캐릭터들이 생생히 살아서 어떤 시대, 어떤 살아있는 공간 속으로 나를 안내해 잊지 못할 서사를 만들어 가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런데, 이 소설 속의 주인공 엘리지베쓰 핀치나 닐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공간에서 어떤 삶의 서사를 엮어 가는지는 모호하다.


그런데, 어쩌면, 작가는 인간 혹은 인간의 삶, 인류의 역사라는 것이 원래 모호하며, 우연에 의해 벌어지는 사건들이 풍랑을 일으키며 우리를 뜻밖의 곳으로 끌고 간다는 것, 따라서 그럴듯한 서사로 깔끔하게 정리되기 어렵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소설 속 핀치나 닐, 율리아누스 이야기를 이렇게 난해하게 풀어놓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 소설은 읽는 사람에 따라서 소설 속 어떤 문장 하나에 우연히 꽂혀서 그 문장에 기대어 읽어 내려가다 보면, 각자 EF나 닐의 다른 그림자를 만나게 될 것이다. 어쩌면 나도 다시 읽어 보면, 다른 줄거리를 건져 올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일단은 소설가가 야심 차게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본인이 알고 있는 여러 가지 문화와 역사, 문명에 대해 이리저리 펼쳐 놓느라 길을 잠시 잃었다가(2부 전체를 할애한 율리아누스 이야기가 상당히 지루하다.), 서둘러 마무리를 지은 듯하다고나 할까... 그러나, 알만한 평론가들이 최고의 소설이라고 했다 하니, 조금 당황스럽다. 아마도 내가 그 깊이를 못 따라간 것이겠지?


책을 다 읽었으나, 하나의 이야기로서 명확하게 완성되어 이해가 되지 않았기에, 잊히지 않고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금방 잊히지 않고, 자꾸 생각해 보게 된다는 것 만으로, 어쩌면 이 책은 잘 쓰여진 책 일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어떤 문장은 여러 번 읽어봐도 의미가 잘 와닿지 않는다. 그냥 모호한 단어들이 서로 꿰어지지 않은 채 나열되어 있는 듯 했다. 답답하여 ChatGPT에게 물어보았다. 이 문장이 무슨 뜻이냐고... ChatGPT로 횡설 수설... 번역이 잘... 못...? 설마? 원... 서에는 도대체 뭐라고 쓰여 있는지 궁금하다.


#줄리언 반스 #우연은 비껴 가지 않는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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