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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예지 Nov 17. 2019

끊임없는 순간의 정직함을 위하여

이기준의 Keith Jarrett 강연

 흔히 재즈의 ‘자유로움’에 큰 가치를 두지만 실은 재즈는 엄격한 자율적 통제에 의해 만들어지는 음악이다. 클래식 음악이 ‘어떤 것을 만들어보자’라는 관점에서 출발한다면, 재즈는 ‘그냥 내버려 두자’에서 시작되는 음악이라 할 수 있다. ‘내버려 두기’를 위해서는 내면의 탐사와 사투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음악적으로 가장 잘 드러내는 음악가 중의 한 명이 키스 자렛이다. 그의 음악은 ‘음악’에 관한 것이 아니라 ‘깨어있음’에 관한 것이다. 그는 음악이 음악으로부터 나올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음악은 문학이나 철학 등의 음악 외적인 것들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결코 음악에 자신을 함몰시키지 않는다. 내가 이날 느낀 키스 자렛의 모습은 음악가라기보다는 차라리 철학자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릴 듯하다. 그에게 음악은 목적이 아닌 인간이 갈망하는 모든 것의 결과물일 뿐이다. 그래서 그는 연주 전에 ‘계획’하지 않는다. 음악적인 재료를 머릿속에 갖고 있다면 그것은 흘러가지 않고 딱딱하게 굳어버릴 뿐이다. 그저 내버려 둘 수 없는, 물화(物化)된 대상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고정된 것은 항상 정직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음악을 악보로 고정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는 음악을 통해 결코 재현할 수 없는 ‘실재’에 다가가고자 하기 때문이다.

“만약 제가 후대에 무언가를 남기고 떠날 수 있다면 저는 그것이 참된 것들을 향한 순수함과 진정성에서 나온 헌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음악일 필요도 없습니다. 이해가 되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남기고 싶은 것이 음악이 아니라는 것이죠. 제가 녹음한 음악도 아니구요. 저의 유산은 제가 연주를 할 수 있는 상태까지 저를 데려대 준 그 무엇이라는 거죠. 마치 아무것도 없는 동굴에서 뭘 건질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것처럼 말이죠.(New York Times Magazine, February 9, 1997)”

한 인간과 그의 음악에 대해 긴 시간에 거쳐 연구하고,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이기준 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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