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윌리엄슨, 노승림 역 (바다출판사)
우리는 모두가 낯선 세계에 던져진 이후로 쭉 안정을 갈구하고 있는 존재임은 확실한 듯하다. 실제 경험을 통해, 혹은 학습을 통해 특정 대상 혹은 상황에 대한 인지구조를 확립하여, 이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려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알고 있는 대로’ 행동하기를 좋아한다. 아마도 우리가 익숙한, 혹은 좋아하는 음악을 자꾸 듣게 되는 이유도 이러한 ‘안정’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문득 생각했다. 익숙한 음악에 대한 선호는 고전적 조건화와 조작적 조건화 중 어느 쪽으로 설명하는 게 좋을까(참고로 고전적 조건화는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그 유명한 ‘침 흘리는 개’가 우리에게 준 깨달음이고, 조작적 조건화는 쉽게 말해 칭찬과 처벌이 우리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것이다). 공부와는 철저히 담을 쌓았던 대학교 시절 조교님, 김태훈 오빠를 만나러 가기 바로 전이었다. 오빠는 지금 심리학과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다. 그래, 만나서 물어보자. 그리고 오빠는 이 책을 집으로 친절히 보내주셨다.
‘당신이 흐르는 동안, 당신은 음악이다’, 제목은 음악과 관련된 가벼운 에세이같지만 음악과 관련된 여러 심리학 실험들을 통해 생애주기 별, 혹은 삶에서 겪는 여러 상황에서 음악이 우리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매우 ‘쉬운 말’로 설명해주고 있다.
유년기의 음악 학습은 언어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평소 음악이 ‘매우 구체적으로’ 언어와 같은 체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던 나로서는 매우 동의함), 청소년기에 들은 음악은 ‘감정’과 결합하여 생애 전체를 지배할 만큼의 영향력을 갖게 된다는 것, 기억이나 운동능력, 영화감상 등등에서 음악의 힘에 대해, 깊게 파고들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게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정보를 전달해준다. 개중에는 스포츠 가방을 멘 사람이나 아무것도 들지 않은 사람에 비해 기타케이스를 들고 있는 사람이 ‘이성에게 번호를 따는 과제’에 있어 더 높은 성공률을 보였다는, 음악하는 우리로서는 도무지 믿기 힘든 연구결과도 있긴 했다.
내가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비록 짧은 챕터였지만 음악을 들을 때의 ‘기대효과’에 대한 것이었다. 이것이 아마도 내가 서두에서 이야기한 ‘안정감’과 관련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물론, 현대음악이나 재즈를 즐겨듣는 사람들은 예측불가능성에서 매력을 느낄 가능성이 높겠지만) 음악을 들을 때 ‘예측해서’ 듣는다. 내가 알고 있는 대로 음악이 진행되었을 때 우리는 ‘안정감’을 얻고, 심지어 그 음악이 ‘좋다’라고 느낄 확률이 높다.
다시 내가 가진 의문으로 돌아가, 특정 음악에 대해 느끼는 이러한 ‘익숙함’이라는 것이 과연 선천적인 것이냐 아니면 학습된 것이냐에 따라 고전적 조건화, 조작적 조건화 중 어느 쪽이 설명의 도구로 유용할 것인지가 판가름 날 것이다. 난 책을 읽으며 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예를 들면 엄마의 규칙적인 심박동에 익숙해진 태아가 세상에 태어나 변 박이나 홀수 박보다는 짝수 박에 안정감을 느낀다고 한다면 음악에 대한 익숙함은 선천적인 것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 엄마가 자주 들려주던 음악에 대해 출생 후 아기가 보이는 긍정적인 반응은 선천적인 것인가 학습에 의한 것인가. 혼란이 시작되었다. 음악에 대해 더욱 근원적인 질문으로 올라가, 우리가 ‘음악’을 ‘음악’이라 인식하는 것 자체가 학습에 의한 것이 아닐까? 우리가 말하는 음악이란 자연이 아니지 않은가. 심지어 우리가 거의 ‘자연’처럼 받아들이는 평균율도 실은 만들어진, 루카치가 처음 사용하고 아도르노가 재활용했다는 ‘제2의 자연’이지 않은가. 이쯤 되니 내가 가진 의문이라는 것은 어차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의 답이 나올 것이란 생각이 들며, 나의 호기심이 다소 부질없어짐을 느꼈다. 역시 과학이 완전할 것이란 믿음은 환상이란 결론이 나오며 철학에 더욱 매진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건 이 책은 정말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