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나라에서 20%가 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김'씨 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름도 그만큼 평범하다. 학창 시절 같은 이름을 가진 친구가 같은 학교에 꼭 한 명 이상 있었고, 심지어 나와 이름이 같은 친구와 같은 반이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이런 특색 없는 이름처럼, 나는 내 성격 또한 특색 없이 어딘가 애매하다고 느끼며 자라왔다.
요즘은 하나의 자기소개처럼 자리 잡은 MBTI 검사에서도 나는 늘 네 가지 유형의 중간값을 오락가락한다.
그날의 기분이나 컨디션에 따라 MBTI 결과가 달라지고, 덕분에 누구와도 무난하게 잘 어울리지만 나는 이것이 꼭 내 장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직도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분명히 알지 못한다. 이를테면 정말 사소한 질문 -찍먹이냐 부먹이냐-에도 나는 "같이 먹는 사람이 먹는 대로! 나는 그냥 먹는 게 좋아!"라고 대답한다. 여행 취향을 묻는 질문에도 "누구랑 가느냐에 따라 달라!"라고 웃으며 넘긴다. 누군가에게 맞추려는 마음도 있지만, 실제로 나는 내가 어떤 여행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즐기고 어떤 방식으로 쉬는 사람인지 깊게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주변 사람들은 나를 두고 "성격이 둥글둥글하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말속에는 내가 어느 곳에서도 특별히 중심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 조용히 깔려 있다. 나 자체에 무관심하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나와 함께할 때 자연스레 집중하게 되는 대상은 내가 아닌 자기주장이 뚜렷한 친구들이다.
나는 무리 속에서 큰 파동을 만들지도,
선명한 색을 드러내지도 않는 사람으로 남는다.
보통 누구를 떠올리면 그 사람이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정작 나를 떠올리면 그런 이미지가 뚜렷하게 잡히지 않는다. 그게 때때로 나는 슬프게 만들곤 한다. 어쩌면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사이, 나라는 사람이 흐려지고 있는 것만 같아서.
오랜 친구들과 여행을 갔다가, 이러한 감정이 조금 더 또렷해진 순간이 있었다. 거의 무계획에 가까운 여행 중, A라는 친구가 "여긴 꼭 가보고 싶어"라고 말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장소를 일정에 넣고 함께 이동했다.
하지만 이동하는 동안 B가 몇 번의 좋지 않은 감정을 내비쳤고, 분위기는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곳을 가자고 했던 A마저 금세 흥미를 잃고 "그냥 다른 데로 가자"라고 말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흐름을 따라가면서도, 속으로 B에게 불편함을 느끼며 부정적인 감정을 쌓았다.
그 여행의 마지막 날, 편지 쓰기를 좋아하는 C가 우리가 잠든 사이 우리 모두에게 편지를 써주었다. 그리고 C가 B에게 건넨 편지를 읽은 나는 잠시 멍한 감정을 느꼈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너의 솔직함과 용기,
그리고 건강한 마음을 나는 언제나 동경해."
같은 장면을 보고도 나는 혼자 불편함만을 키우고 있었는데, C는 그 솔직함을 장점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사실은 나를 한 번 더 멈춰 세웠다.
B는 나와 10년이 넘은 친구였고, 지금까지도 여행을 함께 갈 만큼 소중한 친구다. 그런데도 나는 왜 그 순간만큼은 B를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았을까.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친구들이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나 역시 내 감정을 조금은 꺼내도 받아들여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과 함께, 자기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낼 줄 아는 사람들은 정말 건강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사람들과 있을 때 조금의 어색한 분위기조차 만들지 않기 위해,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도 웃는 척을 하곤 했다. 누군가 "어땠어?"라고 물어보면 늘 괜찮다고, 좋았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런 행동들이 정말 상대방을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슬프게도 나라는 사람을 흐릿하게 만드는 또 다른 방식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이제, 말로는 쉽게 꺼내지 못했던 마음들을 글로 써보려고 한다. 일상 속에서 스쳐 보냈던 감정들을 기록하며, 흐릿했던 나의 취향과 마음에도 조금씩 색을 채워 넣고 싶다. 누구에게는 사소하게 느껴질 이야기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작은 위로나 공감이 되기를 바라며 담백하고 솔직한 글을 계속 써 내려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