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군가에게 “어땠어?”라는 질문을 받으면, 대체로 큰 고민 없이 “괜찮았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다. 조금 불편했어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어도 그 말이 습관처럼 먼저 나온다.
괜찮다는 말은 편리하다.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되고, 무엇보다 분위기를 망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나는 많은 순간들을 ‘괜찮다’는 말 하나로 지나쳐왔다. 원하지 않는 약속에도, 딱히 끌리지 않는 선택에도, 조금 무리한 일정에도 나는 늘 “괜찮아”라고 말했다.
내가 한 “괜찮아”라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다. 정말로 참을 수 없는 정도도 아니었고, 크게 화가 나거나 싫지도 않았다.
다만 조금, 마음이 불편했을 뿐이다.
그러다 문득, 그 “괜찮아”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 관계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1:1이 아닌 무리 속의 한 사람으로 있을 때는 대부분의 상황을 “괜찮아”라는 말로 무난하게 넘길 수 있다. 하지만 관계가 나와 상대, 둘 뿐일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괜찮아”가 계속 쌓이다 보면 상대는 내가 정말 괜찮아서 그렇게 말하는 건지, 아니면 그저 상황을 넘기고 싶은 건지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고민은 오해로, 오해는 서운함으로 바뀐다.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해 내뱉은 나의 “괜찮아”가 정작 나를 좋아하고 아껴주는 사람에게는 불편한 말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나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실제로 상대방에게 진지하게 한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친구는 내게 왜 그렇게 자기주장을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것은 배려가 아니라고 말했다.
“네가 나한테 맞춰주는 것처럼 나도 너한테 맞춰주고 싶은데 너는 늘 괜찮다, 네가 먹고 싶은 거 먹자, 네가 하고 싶은 거 하자라고만 말해.
그 말들이 너는 나와하고 싶은 게 없다는 느낌이 들어서 나를 힘 빠지게 해.”
그 말을 듣고서야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 이런 태도가 나를 아껴주는 사람에게는 불편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또 한 번,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내가 나를 가장 아끼고 사랑해줘야 하는데, 나는 정말 그러고 있는 걸까.
돌아보면 나는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말한 기억보다, 괜찮은지 아닌지를 아예 생각해보지 않은 순간들이 더 많았다.
괜찮다고 말하는 사이 나는 나에게 묻는 일을 자주 건너뛰었다.
지금 이 선택이 정말 괜찮은지, 이 자리에 내가 있고 싶은지. 그저 흐름을 따라가며 크게 문제없다면 괜찮다고 정리해 버렸다.
괜찮다고 말하는 동안 나는 나의 기준을 말하지 않게 되었고, 그렇게 말하지 않는 사이 그 기준은 점점 흐려졌다.
그래서 이제는 괜찮다고 말하기 전에 먼저 나에게 묻고 싶다. 누군가에게 답하기 전에, 나에게 먼저 묻는 연습을.
정말 괜찮은지, 아니면 그냥 괜찮다고 말하고 싶은 건지.
그렇게 연습하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내 기준과 내 마음을 조금은 편안하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 나처럼 “괜찮아”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 있다면,
단 한 번이라도 정말 괜찮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