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도 쉽지 않은 인생이다.
나는 좀 늦은 인생을 살았다.
지금도 n수가 흔한 경험인지는 모르겠는데, 나 때는 재수/삼수하는 친구들이 꽤 많았던 것 같다. 나는 어쩌다 보니 재수를 했고, 떠밀려 한 재수생활이 만족스럽지 않아 삼수까지 하게 됐다. 그러니 내 또래들보다 2년이 뒤쳐진 셈인데, 그래서 엄마는 내가 대학교 1학년이었던 22살부터 나이와 관련된 잔소리를 했다.
내가 동기들이랑 노는 걸 허락받거나 얘기할 때면 항상 "걔 몇 살인데?"를 물었다. 내 대학 친구들은 나보다 최소 두 살이 어렸는데 그럼 엄마는 "네가 지금 어린애랑 시시덕거릴 때냐?"라고 혀를 찼고, 나는 그때마다 "엄마, 나 삼수했으니까 친구들이 당연히 나보다 어리지, 내 정체성을 부정하면 안 돼"라고 반박했다.
엄마가 나와 내 주변의 나이를 비교하는 건 내가 회사를 가서도 이어졌다.
"그 대리는 몇 살인데?"
"나랑 동갑"
"이그, 너는 언제 대리다냐?"
"다 각자 때가 있는 거지"
대충 이런 패턴의 대화였다. 나는 엄마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 인생의 진리를 통달한 사람처럼 말하곤 했지만, 엄마와 대화를 하고 난 후에는 조금 우울하기도 했던 것 같다. 뭐 이미 삼수를 해버렸고, 내가 나이를 먹은 걸 어쩌겠냐만, 엄마의 생각이 내 무의식에 박힐 때도 있어 내가 친구에게 나이를 운운하는 적도 많았다.
"야, 니는 아직 어리잖아"
"언니, 언니랑 나랑 두 살 차이밖에 안나. 언니는 맨날 언니 나이가 엄청 많은 것처럼 말하더라?"
그치. 두 살 차이밖에 안나. 근데 한국에서는 그 두 살이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처럼 말하더라고.
얼마 전에 회사에서 모든 3년 차 사원들을 다 대리로 진급시켰다. (3년 차가 대리가 되는 것이 신기하지 않나요? 광고회사는 가능하답니다. 사람이 정말 귀하거든요.) 우르르 많은 인원들이 진급했고, 진급 대상자에 나는 없었다. 웃기게도 대리로 진급하는 시기를 기점으로 우리 본부의 팀이 개편됐는데, 그 이유는 나이순대로 직급이 매칭 되지 않을 경우, 불화가 있을 수 있어 이를 방지하고자 하는 부장의 큰 뜻이었다.
조직 개편의 속 뜻을 알자, 나보다 두 살이 어리나 대리로 진급한 나랑 친한 팀원이 불만을 토로했다. "아니, 지금이 무슨 시댄데, 나이 어린 사람이 진급했다고 사이가 틀어져요? 친구 없는 거 티 내는 거 아니에요?"
물론, 나는 그 동료가 대리로 진급했다고 사이가 틀어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난 삼수생이어서 나이 어린 선배들을 대하는 게 익숙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거랑 별개로 이런 생각은 들었다. '아, 나 서른인데 아직도 햇병아리 짬빠네'
1년 전 29살 때는 그래서 그렇게 우울했다. 내 가장 친한 친구는 5년의 사회 경험을 끝내고 대학원에 진학해서 2회 차 인생을 살고 있었는데, 나는 그때도 사회 경험이 1년을 갓 넘긴 사회초년생이었다. 나의 서른은 스무 살 때보다는 조금 더 단단하고, 조금 더 똑 부러진 모습으로 자유로운 인생을 살고 있을 줄 알았다.
나는 스스로에게 약속한 게 있다. 서른이 되면, 내 인생 경험을 바탕으로 나만의 인생을 살아보자고. 어디에도 얽매이지 말고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는 거였다. 내 서른이 끝나기까지 네 달이 남았다. 이때쯤이면 나는 자유인의 신분이었어야 하는데, 시국이 시국인만큼 무턱대고 고용 종료를 외치기가 무섭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든다. 시국이 아니었어도 내가 자유를 선언할 수 있었을까?
서른도 쉽지 않은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