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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난지 Jun 03. 2021

로맨스와 로맨스 판타지의 오월동주

로맨스와 로맨스 판타지의 오월동주무엇이 더 판타지인가? 


이야기는 현실을 반영한다. 이야기는 ‘삶을 은유적으로 반영’한다던가, ‘삶의 지루한 부분을 잘라놓은 것이 영화(이야기)’라는 로버트 맥기와 알프레드 히치콕의 말처럼 이야기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현실을 반영한다. 한편으로는 ‘세상을 바라보는 투명한 창이 아니라’, ‘의미가 형성되는 소통 수단’이라 말하기도 한다. 실제의 삶이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에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재현된다는 것이다. 두 가지 중 한 가지만이 옳은 답은 아닐 것이다. 두 가지의 측면 모두 이야기의 속성이라면 ‘로맨스’ 장르는 어떠할까? 현실이 반영되는 것은 물론이고 그것을 창작하고 소비하는 이들의 삶과 욕망이 담겨있을 것이다.      


로맨스는 이야기의 속성처럼 여성의 욕망이 드러나는 공간으로 작용했다. 12세기경 프랑스 로망 지역에서 개인과 개인의 사랑을 노래한 음유시에서부터 그러했다. 로망 지역의 귀부인들이 주 타깃이었던 로맨스(romanz)는 그들이 처한 현실에서 억제되지 않은 열정을 통해 모험과 이상을 추구하는 서사로 당대 여성 욕망의 대리실현체라 볼 수 있다. 19세기경 영국의 제인 오스틴과 브론테 자매들의 저작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모험의 서사’라는 대의의 로맨스의 개념은 가부장제 사회의 시스템을 유지하는 가운데, 두 사람의 사랑이 행복한 결말을 맺는 해피엔드의 서사로 정착되었다. 로맨스는 확고하게 여성의 것처럼 인식되었고, 사실, 논리, 사회의 의제를 반영하는 소설(novel)과 배치되는 것으로 취급되어 장르적 가치가 폄하되었다. 이는 로맨스를 향유하는 이들의 욕망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롯된 결과다.      


제니스 래드웨이는 로맨스 장르를 문화연구와 문학연구로 고찰한 『로맨스 읽기』에서 로맨스 소설은 ‘만족스럽지 못한 현실에 대한 보상적 교환성을 충족시켜주는 유토피아적 판타지’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 반발로서 ‘가부장적 현실에서 여성들의 삶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사실에 대한 강한 항의와 새로운 대안적 세계를 꿈꾸는 여성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보복을 품은 사랑의 판타지’로 정치적 접근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타났다. 질리언 비어는 ‘로맨스는 항상 욕망의 충족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이들의 정의에 따르면, ‘욕망’, ‘충족’, ‘판타지’가 로맨스를 규정하는 키워드로 추출될 수 있다. 흥미로운 지점은 ‘판타지’라고 끝맺음으로써 여성의 욕망과 욕망의 실현이 현실과는 동떨어졌다는 의미로 전달된다는 것이다. 현실에서 욕망하는 것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것은 ‘결핍’을 느낀다는 것이다. 욕망은 결핍을 통해 더욱 강화된다. 그래서 현실의 결핍이 반영된 욕망의 판타지로서 로맨스는 대리충족의 장르다. 이것은 근래에 웹소설과 웹툰에서 주목받는 로맨스 판타지 장르에도 적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로맨스의 주 향유자라 일컬어지는 여성의 욕망은 무엇인가? 여성의 욕망이 무엇이길래 욕망의 충족을 판타지라고 부르는 것일까?     


로맨스 서사는 대개 1) 만남 → 2) 시련(장애) → 3) 회복(점진적 발전) → 4) 해피엔딩의 플롯으로 나타난다. 이 과정에서 상처를 가졌거나 거친 남성 주인공이 여성 주인공에 의해서 변모해가며 결국 사랑이 맺어짐으로써 맞이하는 해피엔드는 로맨스에서 빠질 수 없는 장르적 관습이다. 때문에 로맨스는 여성들이 별다른 저항 없이 기존 사회구조를 수용하게 만든다는 공격을 종종 받는다. 그러나 여성의 욕망을 한 가지만으로 수렴할 수는 없다.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여성의 욕망을 주인공의 입장에서 잘 드러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주인공 유미의 행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은 로맨스 웹툰 <유미의 세포들>의 경우, 로맨스의 서사 공식을 지키면서도 유미가 자신의 욕망을 깨닫고, 일로 인정받고 사랑까지 쟁취하는 여성 중심의 성장 서사를 만들어냈다. 유미의 욕망은 거대한 가부장제 시스템을 전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개인으로서의 유미가 사회적으로 성공을 이루는 것이다. 유미의 사회적 성공은 일과 사랑의 성취로서 이뤄진다. <유미의 세포들>이 연재 내내 요일별 랭킹 상위에 랭크 됐던 것을 미루어 보아, 현대 여성들의 욕망이 무엇인지를 짐작해볼 수 있다.     


현대를 배경으로 주로 나타났던 로맨스는 가부장제 구조에 ‘소극적 저항과 소극적 수용’을 하는 이야기로 전개되며 여성의 욕망을 사랑의 확인으로 한정시켰다면 사회적 성공을 우선의 가치로 삼는 여성들도 증가하면서 <유미의 세포들>의 유미와 같은 로맨스 속 여성 주인공의 욕망은 더 다양해졌다. 유미는 남성 주인공을 변모시키거나 구원하려 노력하진 않지만, 일도 성공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가운데 남성 주인공을 변모시켜야 하는 ‘바쁜’ 임무를 가진 로맨스 웹툰의 여성 주인공들도 다수 존재한다. 웹툰 <우리사이느은>의 도가영은 대학 졸업을 앞두고 회사에서 인턴 생활을 하고 있다. 대학에서나 회사에서 자신의 능력을 인정을 받아야 하는 가운데 소꿉친구와의 사랑도 이뤄야 한다. 도가영의 상대인 현우진은 동갑이지만 도가영이 누나나 엄마처럼 돌보는 유약한 캐릭터다. 서로의 사랑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도가영이 현우진의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여 구원하는 것은 여성 주인공의 노력으로 남성 주인공이 변모해가는 로맨스 플롯의 변주로 기능한다. 인턴으로 살아남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철없는 남성을 성장시키는 미션이 더해져 해피엔딩을 위한 도가영의 고군분투는 눈물겹다. <우리사이느은>은 ‘만남, 시련, 회복, 해피엔딩’의 로맨스 플롯의 규칙을 잘 따르고 있다. 여기서 현실에 대한 불만이나 일탈은 적극적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오히려 주어진 상황에 잘 적응하고 감내하여 성공하려는 의지를 불태우는 여성 주인공이 있을 뿐이다. 현대 여성들의 사회적 성공은 현실에 대한 불만과 일탈보다는 자기계발을 통한 지식과 정보의 습득이 훨씬 유리하게 작용한다. 이러한 현실이 <우리사이느은>의 도가영에게 투영되고 있으며 나아가, 자신의 일을 인정받고 원하는 사랑까지 쟁취한 만능인으로서 도가영은 여성들의 욕망을 대리 실현하여 판타지를 제공한다.     


그러나 도가영의 판타지는 ‘모든’ 여성들의 유토피아는 아니다. 가령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성공에 이르려면 개인의 고군분투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어느 정도의 경제적 뒷받침과 꾸준한 자기계발은 기본이고 혈연, 학연, 지연 등의 배경과 운도 작용해야 간신히 취업이라는 성공의 문턱을 넘을 수 있다. 노오오력으로 되지 않는 현실이 고달픈 이들은 ‘이번 생은 망했다’라며 자포자기하는데 이들을 호명하는 ‘N4 세대’라는 고약한 이름은 호락호락하지 않은 현실에 대한 두려움을 가중시킨다. 이들이 현실에서 더 이상 희망을 갖지 못할 때, 욕망 실현의 무대는 현실이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즙처럼 짜낸 희망은 여러 가지 목표를 이루려고 노력하다 사랑도 못 해보고 이번 생은 망해 버리는 게 아니라, 다시 태어나거나(환생), 다른 누군가가 되거나(빙의), 낭만적 시대로 돌아가는 것(회귀)이다.      


로맨스 판타지의 여성 주인공은 ‘생존’ 지향적이다. 일반적인 판타지에서는 이세계로 회귀, 빙의, 환생하는 모티프들이 자주 등장하여 세계를 구원하는 형태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여기에 로맨스가 더해진 로맨스 판타지는 차원 이동한 세계에서 이성 간 로맨스가 중점적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비교적 최근의 판타지 장르에서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자’는 키워드가 세계의 구원이나 성공적인 로맨스만큼 중요하게 여겨진다. 근래의 로맨스 웹툰인 <우리사이느은>의 도가영이나 <치즈 인 더 트랩>의 홍설도 상징적 의미에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유미의 세포들>의 유미도 마찬가지다. ‘생존’은 물리적 죽음과 삶을 뜻하는 것뿐 아니라 잊혀지거나 낙오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을 뜻한다. 로맨스 판타지의 여성 주인공들은 무엇을 욕망하고 어떻게 욕망을 이뤄나가는지를 알아보면 로맨스와 로맨스 판타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로맨스 판타지 장르는 어느날 눈을 떠 보니 황제나 왕의 딸로 태어났다거나(<황제의 외동딸>, <왕의 딸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어느날 공주가 되어 버렸다> 등), 악녀가 되어 죽음이 예정되어 있다거나(<악역의 엔딩은 죽음 뿐>, <악녀의 정의> 등), 실패한 자신의 삶을 다시 되돌리려 노력하는(<외과 의사 엘리제>, <깨진 유리구두의 조각> 등) 식의 이야기 패턴이 주로 나타난다. 각 유형은, 전혀 모르지만 어린 연령의 인물, 잘 알고 있는 가상세계의 인물, 과거의 나로 회빙환하는데 공통점은 주인공의 자의식이 살아있고, 빙의한 인물보다 정보와 지식을 많이 습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은 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제국주의의 절대권력인 아버지와 화해하거나 실패한 사랑을 성공적인 사랑으로 변모시키고 죽음의 위험에서 벗어나는 등, 차원이동한 세계에서 인정받는 이야기는 어떻게 해서든 생존해야 한다는 의지와 욕망의 표현이다.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 하면서도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것이 생존이라는 점에서 그들의 결핍과 욕망을 한꺼번에 알 수 있다.     


로맨스 판타지 장르에서 주로 회빙환한 세계의 시스템은 대부분 절대권력의 제국주의 사회다. 여성의 인권이 현실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억압적인 그곳은 성차별이나 폭력이 공공연하게 나타난다. 이번 생은 망해서 도망친 곳이 현실보다 나을 것이 없는 상태지만 주인공은 빠르게 적응하는 것을 택한다. 그들은 자유롭지 못한 세계의 규율 때문인지는 몰라도 퇴행적으로 보일 정도로 가부장적 구조에 순응하는 여성성(애교, 희생, 보살핌 등)을 생존 수단으로 활용한다. 이것만 따져보면 로맨스 장르가 기존의 사회구조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만든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긴 힘들어 보인다. 


반면, 로맨스 판타지의 여성 주인공들의 재생을 통해 다시 쓰는 여성의 서사는 정형화된 캐릭터나 장르의 규칙을 전복시켜 우리가 가진 문제가 무엇인지를 바라볼 수 있게 만든다. 예를 들어, 악녀로 죽음을 맞지 않으려면 주인공의 전략을 벤치마킹하여 생존해야 한다. 이들이 이제껏 봐온 여성 주인공의 생존전략이 가부장제에 대한 순응일 수 있다. 또한 적극적으로 저항하고 주체성을 가진 이들은 악녀가 되는 것에 대한 강력한 저항과 풍자의 의미로 읽을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이해는 비판적 읽기를 통한 통찰에 의해 가능할 것이다. 이에 더하여, 이세계에 회빙환한 여성 주인공에 빙의하여 변명해보자면, 욕망을 이루기 위해 노오오력 해봤자 이미 출발선부터 다른 이들은 존재한다. 그래도 노력해야 한다는 논리는 실리 없는 정신 승리나 희망 고문과 같다. 도가영이나 홍설, 유미처럼 욕망을 쟁취한 여성 주인공도 있지만, 그것이 판타지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에게 과연 이전 세대들의 삶의 서사가 적용될 수 있을까? 노력하면 응당 보상받고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명제는 이들에게 참이 아닌 거짓이다. 어쩔 수 없이 이들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는 대신 갖은 수단을 가리지 않고 쟁취하는 것을 선택한다. 노력에 대한 배신,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낳은 결과 중심 주의가 로맨스 판타지에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작은 희망이라도 잡기 위해 ‘이생망’에서부터 시작한다. 현실에서 죽어버려야 새로 시작할 수 있으니 말이다. 세상의 끝에서 부르는 희망의 노래는 이들을 현실이 아닌 상상의 세계로 몰아넣고, 그곳에서 생존하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욕망의 화신으로 둔갑시켰다.      


이야기는 현실을 반영하고 이를 창작하고 소비하는 이들의 삶과 욕망을 드러낸다. 로맨스는 원하는 것은 뭐든 다 이뤄내는 판타지적 주인공이 있고, 로맨스 판타지는 판타지 세계로 이동해 욕망의 주인이 되려는 실리적인 주인공이 등장한다. 판타지 세계로 이동한 주인공은 현실에서 주인공으로 살지 못했기에 겉으로는 ‘이생망’을 외치지만, 이들이 미처 꺼내지 못한 진심은 이번 생이 망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하는 것을 이뤄 자신의 세계를 여는 것이다. 이들의 회빙환은 마지막 남은 보루이자 희망을 모두 버리지 않았다는 증거다. 양상은 달라도 로맨스 판타지는 로맨스를 구체적이고 강렬하게 재조명한다. 그러므로 여성이 주인공인 로맨스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로맨스 판타지를 이해할 수 있다. 로맨스의 주인공이 여성인 이상, 여성의 현재 삶과 결핍, 욕망, 욕망 충족의 작동방식을 살펴보려면 로맨스를 봐야 할 것이다. 그곳에 여성들이 해소하지 못한 결핍과 욕망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Janice A. Radway, Reading the Romance: Women, Patriarchy and Popular Literature,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2009.

이정옥, 「로맨스, 여성, 가부장제의 함수관계에 대한 독자반응비평」, 『대중서사연구』 제25권 3호, 대중서사학회, 2019.

안상원, 「한국 웹소설의 ‘책빙의물’의 특성 연구」, 『대중서사연구』 제26권 3호, 대중서사학회, 2020.


만화비평지, 『지금만화』 10호에 싣기 위해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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