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한 것 이상으로 더 위대한 힘.
오랜만에 연달아서 영화를 보았다. 첫 영화는 '싱글맨' 두 번째 영화가 바로 '이퀄스'이다. 의도치 않았지만, 이 두 영화의 공통된 주제가 있다면 '사랑' 과 '외로움'이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인 감상평과 함께 스포일러도 있습니다.※
모든 감정이 통제되고, 사랑만이 유일한 범죄가 된 감정통제구역. 어느 날 동료의 죽음을 목격한 사일러스(니콜라스 홀트)는 현장에서 니아(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보고 그녀가 감정보균자임을 알게 된다. 니아를 관찰하던 사일러스는 생전 처음으로 낯선 감정을 느끼고 감정 억제 치료를 받지만, 니아를 향한 마음은 점점 커져만 간다. 처음으로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게 된 사일러스와 니아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사랑을 나누지만 뜻하지 않은 위기에 처한다. 결국 두 사람은 사랑을 지키기 위한 탈출을 결심하는데…
영화를 보면서 내내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자유라는 건 정말 좋은 거구나..' 사랑이 질병으로 분류되는 시대. 영화에서는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생각을 주입시킨다. 사랑을 질병으로 보라고. 감정을 느끼면 바로 신고하라는 말도 덧붙이며. 남녀 주인공을 비롯하여 나오는 몇몇 사람은 감정을 느낄 새면 언제 끌려갈지 모르는 두려움과 마주하고 있으며, 낯선 감정을 느끼면 어린아이처럼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사랑은 정말 질병일까? 이 질문이 얼마나 바보같이 보일지 나도 잘 안다. 그렇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 계속 곱씹게 되었으며 '사랑'이란 '감정'에 대해서도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든다. 사람이 살아감에 있어서 감정이란 건 참 중요한데, 특히나 사랑은 꼭 필요한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1.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2.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3. 남을 이해하고 돕는 마음. 또는 그런 일. (출처 : 네이버 사전)이라 나온다. 세상은 결코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남에게 도움을 받거나 주었던 경험이 있지 않나. 이렇듯 나도 모르는 사이에 타인과의 교류는 물 흐르듯이 이어져 왔다. 내가 한 말과 행동도 타인에게 적지 않는 영향을 주곤 하는데.. 사랑이란 감정 또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샌가, 빠져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 상대가 누구인지는 상관이 없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가족일 수도 연인일 수도 친구일 수도.. 그 애틋하고 마음속 깊이 애정 하는 마음이 우러러 나오는 그 감정을 우리가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종종 듣는다. '머리로 이해하지만 마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이것은 사랑과도 긴밀히 연관되어 있지 않을까? 머리로는 안다. 이 사람이 어떤 면이 좋고, 어느 면이 사랑스럽고.. 등등 내가 상대방을 좋아하는 이유들을 주절주절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 상대방을 보는 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내가 알 수 없는 감정들이 깊이 솟구쳐 나오는데 그런 것들을 이성적인 언어로 설명하자니 참 어렵다.
니아(크리스틴 스튜어트)와 사일러스(니콜라스 홀트)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은밀한 장소에서 서로를 알아가는 장면이 참으로 안타까우면서 공감되고, 어느 면에선 사랑스러움을 느꼈다. 사랑을 금기시하는 세상에서 니아와 사일러스는 서로가 있기에 행복하면서 언제 들킬지 몰라 무서웠을 것이고, 또 사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사랑이란 감정을 지배하고 금기하려는 세계관이 이따금 무서웠다. '내가 과연 저런 곳에서 산다면 버틸 수 있을까?'. 질문을 나에게 던지면서 보았다. 개인적으로 사랑과 슬픔, 행복, 연민, 아픔 등 수많은 감정들로 인해 내가 성장했으며 세상에 나아갈 힘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오늘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있는데, 적재적소의 햇빛과 내가 좋아하는 음악과 또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상상해보자. 들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맛있는 음식과 나를 따사롭게 비추는 햇빛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하는.. 기뻐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일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런 것들이 내 하루를 버티게 해 주는,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하나의 원동력이다. 니아와 사일러스가 차라리 감정을 느끼지 못했으면 좋겠다고 말할 때, 얼마나 힘들면 저렇게 말할까 싶었다. 지금 서로를 애타게 그리워하는데 표현하지 못하고, 꾹 누르며 살아가는 그 하루하루가 얼마나 지치고 아플지 상상조차 안 간다. 은밀한 장소에서 나누는 서로를 향한 언어들. 그 언어들이 있기에 니아와 사일러스는 또 하루를 버텨낸 것이지 않을까. 그 작고 소중한 언어들이 있기에,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과 숨소리가 있기에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사랑이란 참으로 위대하다.
사일러스는 니아에게 말한다. 네가 옆에 있는데 어떻게 감정을 억누를 수 있겠느냐고. 몇 번을 곱씹어 보아도 참 맞는 말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에 있는데 어떻게 무시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외면할 수 있겠는가.. 후반부에 갈수록 '로미오와 줄리엣'이 생각났다. 서로 안타깝게 엇나간 순간들. 사일러스가 니아의 죽음(타인과의 몸 바꿔치기)을 들은 이후, 자살을 하려고 한다. 그때 온몸으로 막고 싶었다. 아냐! 죽지 마! 곧장 집으로 가! 속으로 몇 번이고 외치며 사일러스를 막고 싶었다. 휴.. 다행히 사일러스는 자살을 시도하지 않았고... 감정을 완전히 제거하는 신약을 몸속에 투여한 후 집으로 왔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줄로만 알았던 사일러스는 스스로 최선의 선택을 했다. 차라리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 그 감정을 죽이고 왔건만, 알고 보니 상대방은 살아 있던 것이다. (정말 비극은 사일러스가 자살을 하는 것이고, 그래도 살아서 왔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개인적으로 그 장면은 압도적이었다. 니아가 살아있음을 확인 한 사일러스의 표정 변화가 대단했다. 안도 후 본인의 감정이 사라지게 될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는 그 표정 변화.
신약을 투여받은 다음날. 사일러스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내가 니아였으면 여기서 멘탈이 와장창 났을 것이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나를 사랑한다던 연인의 표정이 하루아침에 남 보듯이 변하면.. 그렇지만 니아는 포기하지 않고 사일러스와 함께 기차를 타러 간다. 기차를 타러 가는 내내 그리고 기차를 타면서까지 니아와 적정거리를 유지하던 사일러스는 어찌 된 영문인지, 니아 곁에 앉으며 서로를 교감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진부한 말일 수도 있지만, 사일러스의 감정은 니아와 함께 있음으로써 다시 되살아난 것이 아닐까 싶다. 중반부에 사일러스가 말한다. 곁에 네가 있는데, 어떻게 감정을 억누를 수 있겠냐고. 이 대사는 후반 마지막 장면을 대변해주는 말이 아닐까 싶다. 감정을 사라지게 하는 약을 투여받았지만, 내가 사랑하는 (혹은 사랑했던) 연인이 옆에 있다. 연인과 함께 있었던 그 기억들, 감정, 행동, 말 그 다양한 것들이 온갖 내 안에 있는데 어떻게 억누를 수만 있을까. 기차 타기 전날 밤. 사일러스가 니아에게 했던 말이 애틋하게 다가온다.
내가 어떻게 돼도 나를 사랑할 거지? 내가 사랑할 수 없어도 말이야.
나 이렇게 안간힘 쓰잖아. 아직 살아있어. 나를 포기하지 마. 나를 버리면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