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끝자락에서

11월 인왕산에서

by 레몬트리


가끔은

어깨가 너무 무겁고, 마음이 너무 고단한 날이 있다.


1년 내내 여러 감정을 느끼며 올랐던 산이었지만

유독 이날은 오르는 걸 시도하기조차

마음이 버거운 날이었던 것 같다.


정신을 어디다 두고 나왔는지

1년 내내 들고 다니던 삼각대 리모컨을 충전한다고 빼놓고 안 들고 왔고,

그걸 핑계 삼아

오늘은 사진도 뭣도 다 귀찮다

무거운 걸음으로 털레털레 오르고 있는데




저기

까치 한 마리

누군가 던져줬을까, 누군가 흘린 것일까

머리통만 한 꿀꽈배기 하나를 입에 물고

신이 나서 갈팡질팡 하고 있다.

그 자리 머물러 먹지 않고 소중히 입에 물고 가는 걸 보니,

제 새끼 입에 오물거리고 넣어주려고 그러는구나

먹기도 전에 배가 부른 거구나

너도 나처럼.



부단히도

정직하고 성실하려 애쓰며 살아왔지만

가끔은, 어떤 날은

파이팅이고 뭐고 우선 다 내려놓고

그냥 저렇게

생각지도 못한 길모퉁이에서

행복이든 행운이든

덥석 줍는 요행을 바라게 된다.

오늘 너 좀 부럽다!





단풍이 다 떨어진 앙상한 가지 사이에

아직도 미련을 떨치지 못한 잎 두어 장

차라리

다 떨어지고 나면

미련이 없을 텐데, 뒤돌아보지 않을 텐데

꼭 야속하게,

끝끝내 남겨진 잎이

자꾸만 돌아보게 만든다

잊고 싶지만 끝끝내 남겨져

더욱 선명해지고 내려놓지 못하는

어느 날의 추억처럼


그래서 은혜로운 신은


넘어가는 계절 앞에 미련을 두지 말라고,

봄의 꽃을 시들게 하고

여름의 열기는 비로 씻어버리고,

가을의 단풍을 떨어뜨리고

겨울의 눈도 기어이 녹여버리시는구나


그런 마음으로

끝나가는 인연 앞에 아프지 말라고

눈물도 말려버리고,

기억도 흐릿하게 해 버리고,

포기하게 하시는구나


그저 애써도 안 되는 게 있다고

그저 붙잡으려 해도 보내야만 하는 것이 있다고

그저 정성을 쏟아도 속절없이 다시 쏟아지는 것들이 있다고

안간힘을 쓰는 나를

또 다른 방식으로 위로하며 내려놓음을 가르치신다.






가지 사이 초록이 다 사라지고,

남은 건 바스락 부서질 것 같은 마른 잎뿐인 가을의 끝자락에

내려오는 길 마지막 남은 단풍나무 몇 그루가

짧은 가을 보내고 떠나가지만

결코 잊진 말란 듯이

가장 선명하고 가장 흐드러진 모습으로

별 밭을 만들어두었다.

작년에 공원에서 데려온 단풍잎 한 장과 함께 놓아주려

고르고 고른 두 장.

그날의 마음도, 오늘의 마음도


신이 내려놓으라

비로, 바람으로 그리 흔들어대며 떨어뜨렸지만

결국은

슬픔을, 고통을, 인내를, 눈물을

짊어져야 한다 해도

기어이 끌어안는 마음


조용히 집어 들고, 몰래 챙겨 온 단풍잎 두장

간직한 마음, 잊고 싶지 않은 기억

시들고 색이 바래 처음의 모습과 달라진다 한들,

가슴속엔 언제나, 그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덧)

지금이 1월인데, 11월의 인왕산 이야기

가을의 끝자락이라니 새삼스럽지요?? ㅎㅎㅎ

그래도 저의 1년 인왕산 스토리라 빠짐없이 올려봅니다.


이렇게 조금씩 그때그때 써둔 글

이제 속도 내어 함께 나누어볼게요


마지막

드디어 12월의 인왕산은 말그대로 12월 마지막주 주말에 다녀왔는데 아직 글을 마무리하지는 못했어요

그래도 지난 1년 이룬게 있다면 이 인왕산 매달(열두번)가기였으니

아주 작지만 의미있는 것 하나는 남긴것 같아요 :)

1년동안 함께 읽어주시고 공감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당~ 마지막 12월 이야기까지 함께 해주세용


오늘 밤은 아기새 이야기를 좀 더 쓰고 자려고 합니다

모두 굿밤되시고 다가오는 한주도 힘차게 시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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