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클 아저씨는 틀렸어(1) 자기(Self)

by Little Tree

상담을 하게 되면서 인간이 '존재' 해야 하는 이유, 그럼에도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대화를 하게 된다.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현시대에는 '이유'를 찾는 것이 당연하며 특히, 우리나라는 사람들에게 목표와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압박 혹은 조장하는 것 같다. 학교는 이러한 압박의 최고점에 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생기부를 위해, 대학교 입시에 '성공' 하기 위해 최대한 빨리 진로를 결정하고 그에 맞는 책을 읽고 동아리 활동을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성향과 맞는 진로를 정하는 학생들도 많다. 여러 고민을 하면서 진로를 바꾸는 학생들도 그 과정에서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성적에 맞는 전공 과목들을 비교하며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한다.

한국의 교육과정에서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준비하며 건강한 어른이 되는 학생들이 많으니, 이 사회가 아직 유지되는 것이라 믿는다.


각설하고

상담실에 있는 나는 이런 교육과정에서 '자기'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포기하고 불안해하는 학생들을 만나다 보니 좋아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도 모르고 공부도 포기하고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학생에게 그럼에도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게 하는, 참으로도 어려운 길을 가야 한다.

잘 살고 있다가 갑자기 부모님이 이혼을 하거나, 부모님이 자살을 하고, 누리던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리고 남겨졌음에도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

태어나보니 가정폭력의 현장 한가운데 놓여 있고, 발달과업에 맞는 사회성과 도덕성, 심리정서 발달을 다 놓쳐버리고, 사회 부적응자로 낙인찍혀 돈을 버는 방법이라곤 범죄밖에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학생과 함께 한숨을 쉬어야 한다.


"그래. 사는 게 힘들지.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 이왕 살 거면 좀 더 의미 있게, 행복하게 살자."라고 말하는 나를

아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바라볼까.


(참고로, 청소년들은 고작,10년여 정도의 경험, 그것도 집-학교라는 한정된 경험을 가졌으며, 논리와 이성을 담당하는 뇌가 발달 과정 중에 있고. 다양한 호르몬의 분비로 신체적, 정서적 혼란을 경험하기에 별것 아닌 것 같은 고통스런 경험이 상당한 불안을 가지고 올 수 있다. 특히, 인생의 고통이 주는 의미를 깨닫고 인내하고 성장의 도구로 삼으라는 조언도 필요하지만, 30년 이상 다양한 삶을 맛본 어른들에게나 와닿는 말인 듯하다.)


나는, 그 어떤 상담 이론들보다 '빅터프랭클'의 로고테라피, 의미치료가 참 좋다. 고통과 죽음의 현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민낯을 보면서 '의미 있는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았고, 수용소의 경험 이후 암과 싸우는 사람들, 질병 속에서 무너지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서 '삶'을 정의하는 말들이 뭉글뭉글하게 와닿는다.


다시, 각설하고

'그럼에도 삶에 '예'라고 답할 때'에서 빅터프랭클은 '자기(self)'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라고 말한다.

가진 것을 모조리 빼앗길 때 나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자기(Self)' 이다.

'돈' '명예' '권력' 등이 의심스러워지거나 이를 잃어버렸을 때, 무엇이 삶을 본질적이고, 가치 있고, 의미 있게 만드는가.


나는 한참 고민하다가 이렇게 답했다.

" 영혼에 대한 사랑. 사람의 내면에 깃든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 자연 속에서 통찰을 얻거나 깨닫게 될 때의 희열, 나만의 창작물을 만드는 것"


런데 내가 수용소 독방에서 철저히 혼자가 되고 아무것도 없는 공간 속에 있다면, 사람도 만나지 못하고, 그 어떤 창조물도 바라볼 수 없다면 무슨 힘으로 살아갈지 더 한참을 고민했다.


"생각하고 깨닫는 과정에서 창조를 경험하는 나를 붙들기"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면, 나는 '사유'함으로 생을 붙들 것 같다. 내 삶의 한 자락 한 자락을 곱씹고, 절망 가운데에서 살기 위해 애쓰는 나를 곱씹고, 선과 악, 생과 사, 진리와 거짓, 진정한 아름다움, 정의로움 등등 '사유'할 수 있는 모든 단어들을 떠올리며, 내 안에 있는 수많은 나를 꺼내어 논쟁하고 타협하며 한 문장의 결론을 내릴 것이다.

그렇게 살아있는 나를 느끼며, 살아있다 쇠뇌하며, '생각'만큼은 자유하다는 것에 (그래도)감사하며 살지 않을까 .


'자기(self)' 대한 질문에 답하고 있는데 갑자기 '헛되다' 라는 말이 내 마음을 후 드려 쳤다. 아이들에게 '자기'를 찾기 위해 질문하고 그 답을 찾아가다가도 학생들이

'다 아는데, 그래도 싫어요.' 라고 말해버리면

맥이 확 풀리면서 할 말을 잃게 되는 무력한 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좋은 대학 가는 것이 성공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돈 없으면 못 살잖아요."


아니, 기껏 자기(Self)를 찾았는데 너는 왜 원점으로 온 거니.

'그럼에도'를 어디에 붙여야 하는지 내가 선택해 줄 수 없는데?


"너무 힘들어요. 그럼에도 살아야죠"

"살아야죠. 그럼에도 너무 힘들어요."


이 두 개의 말 중 어떤 것을 선택하는지는 자신의 몫이고, 네 삶에 도움 되는 말을 선택하라고 권하는 것이, 내 마지막 말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상담은 끝이 나고, 문 밖으로 나가는 학생을 보면서 "그럼에도 살아야지."라고 말하는 어른이 된 너를, 너 대신 꿈꿔본다.

글을 쓰면서, 상담을 마치고 찝찝하게 나가는 학생들을 떠올리며, 프랭클 아저씨가 틀렸을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빅터프랭클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가서 자기(self)를 발견하였고, 나 역시 인생의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걸으며, 심리상담을 공부하면서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는데

고작 10년을 사는 너희들에게 '자기'를 찾으라고 하는 것이 맞나 싶다.


프랭클 아저씨에게 미안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어쩌면

" 야! 일단 닥치고, 살아. 살다 보면 나아져."라고 말하는 게 백번 낫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