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학교에 물난리가 났다.
화장실 배수관이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렸다고 했다.
교무실 벽을 보니 물이 1cm 정도 차오른 것 같다.
바닥에 있던 문제집들과 A4용지, 1년치 휴지는 버리거나 말려야 했고
물을 머금었던 콘센트는 폐기 되었으며 일부 전기 제품은 교체를 하거나 점검을 받아야 했다.
상담실 바닥 장판은 곳곳이 부풀어 올랐고 부분 교체가 어렵다는 말에 작은 언덕이라 생각하며 지내고 있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한 11월
추운 복도를 지나 화장실로 들어갔는데 어디선가 따뜻한 바람이 불어 나왔다.
그 난리가 난 후, 화장실에 히터가 설치된 것이다.
세상에, 학교 화장실이 따뜻하다니.
따뜻한 바람 때문인지, 추운 복도 때문인지 평소보다 좀 더 오래 거울을 봤다.
매해 겨울이 되면 화장실은 '늘' 물이 얼었다.
담당자에게 말했지만 결론은 '늘' [사용 중지]
하는 수 없이 멀리 있는 곳의 화장실을 가야만 했다.
그러다 날이 좀 따뜻하면 물이 나오기도 했고
방학할 때까지 물이 얼어있으면 개학할 때 나오겠거니 생각하며 지냈다.
그리고 봄이되어 개학을 하면 화장실 물은 '늘' 잘 나왔다.
누군가 물이 어는 상황을 심각하게 바라봤다면 상황이 달라졌겠지.
그러나 봄이 오면 '늘' 물이 녹는 것에 익숙해진 우리는
들여다볼 수 없는, 감추어진 곳에서,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것인지 예상할 수 없었다.
우리 마음도 비슷하다.
슬픔과 아픔을 호소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늘' 나아졌던 그들과
그것에 익숙해진 주변 사람들은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없기에
그들이 얼마나 힘들며 앞으로 어떤 문제가 발현될지 예상할 수 없었다.
그리고 정작 본인도 '늘'에 익숙해지고 무뎌져서 히터를 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졌던 기억을 강력한 무기 삼아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지 않고 살아가다가
강력한 추위가 찾아올 때 ‘펑’ 터져버리고 나서야
본인도, 주변 사람들도 힘들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수습하기 위해 그동안 외면했던 내면을 들여다보고 마음에 히터를 틀어주기 시작한다.
투시 안경도 없으면서 ‘미리 히터를 설치했다면’하고 나와 남을 탓하기도 하고
‘그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그 말에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하기도 한다.
탓도 후회도 괜찮다.
다음에 더 꼼꼼히 들여다볼 수 있는 탓과 후회라면 감시자의 역할로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날이 추워지면 물난리가 생각나 화장실 한번 들여다보고, 히터가 잘 틀어져 있는지 확인하는 것.
‘슬픔’을 이야기할 때 옆에 있어 주고, 요즘은 괜찮은지 연락 한번 해보는 것.
이런 것들이 무엇인가를 혹은 누군가를 안전하게 지키는 좋은 감시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화장실 히터를 보며 내 마음을 들여다 보았다.
결혼에 대한 걱정, 미래를 위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불안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고통받는 내담학생에 대한 염려
나의 약해진 부분들에 살포시 손을 얹었다.
오지 않은 것에 대한 걱정과 불안을 토닥이고
지금 내가 해야 할 것에 집중하는 나를 격려했다.
학생이 찾아오면 언제든 그 자리에 있는 나를 소중히 안아줬다.
그 난리가 났지만 지금 교무실은 벽을 자세히 봐야 물난리의 흔적을 찾을 수 있고
아무 일도 없던 듯 정신없는 일상이 흐르고 있다.
그 난리가 나서야 히터가 틀어졌지만
이제는 매우 강력한 한파가 아니고서는 물이 얼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물난리가 나고 나서야 히터를 틀었지만
그거면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