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클아저씨는 틀렸어(10) 삶에 '예'라고 말하기

by Little Tree

빅터프랭클의 책 [그럼에도 삶에 '예'라고 답할 때]를 읽으며 인생이 내게 무엇을 원하는지, 책임지는 삶이란 무엇인지를 곱씹었다. '어제의 나'와 '미래의 나' 사이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것, 힘겨운 학생들을 만나고, 가족을 위해 인내하고, 자투리 시간에 조카의 옷을 뜨개질을 하는 나는, 인생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매 순간 경쟁에 내몰리며, 의미를 찾을 시간도 없이 등급을 올려야만 하는 현실에 던져진 아이들, 인생이 개인에게 부여한 과제보다 사회와 세상이 원하는 것을 강요받는 아이들에게 '오늘 주어진 것을 하고 만족하라'는 말이 무책임하게 들릴까 걱정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정신적 버팀목이 무너진 어르신, '3월 말'이면 해방될 것이란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어 죽음을 맞이한 어르신의 이야기 앞에서 유효기간이 있는 정신적 버팀목의 무의미함을 생각했고, 절망 속에 있는 학생들에게 유효기간을 조금씩 연장시키는 나의 애씀이 헛된 것이었나 질문하기도 했다. '내년에는 반 아이들이 괜찮을 수도 있어.' '졸업하면 조금 나아질 거야.'라는 말들로 유효기간을 늘리는 나에게 프랭클 아저씨는 뭐라고 말할지도 궁금했다. 나는 1년, 혹은 2년 뒤면 사라질 솜사탕을 파는 사람인가. 그럴 수도 있겠지. 프랭클 아저씨의 잔소리가 상상됐지만, 나의 달콤한 말에 1년라도 버티기를 바라며 내일도 아이들에게 솜사탕을 팔 것이라 고집부리기도 했다.


“아주 미미할지라도 나만의 미래, 나를 둘러싼 일과 사람들의 미래가 매 순간 나의 선택에 달렸음을 아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다. ”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과 자신을 위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자유는 모두에게 주어졌고,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는 결국 자신이 부여한 의미와 선택의 결과임에 동의했다. 인간다운 고통과 그렇지 않은 고통을 생각할 때는 내가 만나는 아이들의 고통이 수용소만큼이나 잔인했음에 마음이 아팠다.

"태어나보니 지옥이었어요." 초점이 없는 눈으로 담담하게 말하는 아이의 고통에 나는 어떤 ‘의미’를 부여했던가. "살자. 그래도 우리 살자" 라며 같이 울어줄 수밖에 없었던 날들이 아프게 떠올랐다.

스스로 의미를 찾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어른이자, 상담교사인 내가 부여했던 의미들이 언젠가는 마음에 닿기를 바라며,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란 희망을 품으면서도, 마음 한편에 있는 ‘의미고 뭐고 다 필요 없고 죽지 말고 살아다오.’라는 무력하지만 간절한 마음을 토닥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삶에 '예'라고 말하려 하네"


독일 바이마르 근교 부헨발트 강제 수용소 수감자들이 부르던 노래를 상상하며 당장 내일 죽을지 모를 수감자들,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인간 취급을 받지 못했던 사람들이 '예'라고 대답한 삶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언젠가는 해방이 될 것이란 희망, 헤어진 사람들을 향한 그리움, 고통의 순간에 함께 있는 사람들과의 연대감, 고통에 몰아넣은 이들에 대한 복수심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그저 생명체로써 가지는 생존에 대한 본능일지도 모른다.


- 누군가는 '아니요'라고도 말했겠지.

- 그럼 옆에서 '예'라고 말하자며 손 잡아줬겠지.

- 그럼 또 하루를 버텼을 거야.

- 나도 누군가가 하루를 버틸 수 있도록 손 잡아주는 사람이어야겠다.


이 말을 하며 '울컥'해지는 마음을 기억하기로 했다.

가끔, 버거울 때가 있다. 내 삶이 지칠 때 혹은 내담학생이 변할 것 같지 않을 때, 내 힘으로는 더 이상 할 수 없는 때.. 결국은 내담학생 스스로 선택하고 일어서야 하는 것을 그저 바라보고 기다려야 할 때는 '아니요'라고 말하는 이의 손을 붙잡는 것이 버겁기도 했다.


'아니요'라고 말하는 그 사람의 손이 버거울 때, 그때, 나도 누군가가 하루를 버틸 수 있도록 손 잡아주는 사람이어야겠다며 울컥했던 마음을 떠올리자.

그래. 손 잡아주는 사람이 되겠다며 울컥했던 나를 잊지 말자.

그것이 인생이 내게 부여한 의미일테니...





'그럼에도' '예'라고 말하는 삶을 사는 이들은 영광스러운 사람이다.

'그럼에도'를 생각할 수 있는 나는 영광스럽다.

'예'라고 말할 수 있는 당신도 영광스러운 사람이다.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빅터프랭클 아저씨의 영광스러운 삶에 감사하며

'그럼에도' '예'라고 말하는 영광스러운 당신을 따뜻이 안으며 짧은 독후감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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