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질을 할걸 그랬나
조끼를 뜨기 위해 실을 길게 풀어두었다.
금방 짧아지는 실들을 풀고 또 푸는 것이 귀찮아서 이전보다 세 배는 길게 늘어트렸다.
실을 풀면서, 당분간은 뜨개질을 멈추지 않아도 되겠단 생각은 했지만 실이 엉킬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고, 조금 뜨다가 엉켜버린 털실 덕분에 뜨개질은 더 오래 멈추어 있었다.
실을 빼내다 보면 어느 한 곳에서 실이 꽉 조이기 때문에 힘껏 잡아당길 수 없었다.
뭉쳐진 곳을 손가락으로 비비며 단단히 붙들고 있는 실들의 간격을 넓혀나갔다.
꽉 조여진 실이 풀리면서 그 사이사이로 실을 빼고 끼우기를 반복했다.
그냥, 가위로 잘라내 버릴까.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지만, 그러기엔 실이 너무 아까웠다.
아까워하지 않아도 될 만큼 실은 충분했지만 그냥 실을 풀어내고 싶었다.
불편하다고, 귀찮다고 잘라내 버리는 것이 익숙하지 않고, 쉽게 버리지 못하는 나는
엉킨 실조차도 그냥 잘라버리지 못했다.
결국 나는 얼마나 걸릴지 모를 긴 여행을 떠났다.
막히는 순간에는 실을 따라 처음과 끝을 확인했고
더 꼬이는 것 같을 때에는 오던 길을 되돌아가야 했다.
짜증이 나고, 그냥 버리고 새 실로 뜨겠다는 생각이 들면
뭉친 실타래를 잠깐 내려놓고, 재미난 영상을 틀었다.
좁은 구멍에 큰 실뭉치를 넣기도 하고
뭉쳐진 실들 사이사이에 바늘을 넣어 실을 풀기도 했다.
그러다 순간, 어느 매듭 하나가 풀렸고, 엉킨 실들도 술술 풀려나갔다.
실을 푸르는 것이 귀찮아도, 엉키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을 배웠다.
짧게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하라는 명언이 뜨개질에도 통하다니.
'요령 피우지 말자' 라며 피식 웃었다.
풀어낸 실을 감았다.
꽤 길다고 생각했는데, 감고 보니 그 양이 얼마 되지 않았다.
그냥 가위로 자를 걸.
괜히 시간만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 생각을 얼른 허공에 날려버렸다.
내 인생에 가위질이 필요했던 순간은 얼마나 될까.
엉킨 것을 풀겠다고 붙들고 있다가 놓쳐버리고 흘려보낸 시간들을 후회하던 때가 있었다.
빨리 포기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실타래를 붙들고 씨름하던 그 시간, 가위로 잘라야 할지 풀어내야 할지 고민하며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시간이 있었기에
나는 엉킨 실타래를 자르지도 버리지고 않은 채, 안고 살아갈 수 있었다.
그래.
인생의 한 부분에서는 엉킨 실타래로 살아가기도 해. 그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냐.
잘못된 것도 아니고.
그렇게 나는 엉킨 실타래로 살아갔다.
나는 분명 힘들었는데, 그 삶이 버거울 때도 있었는데
내 엉킨 실타래가 누군가에게 따뜻함과 위로가 되었고
어느새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어떻게든 실타래를 풀어내려고 힘주며 당기던 손을 놓자
시간이 흐르면서 엉킨 실타래가 자연스럽게 풀어지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풀어내려고 악쓰며 살았는데
10년의 긴 시간 동안, 힘을 빼자, 풀리기 시작하는 인생의 실타래가 야속하기도 했지만 고마웠다.
어.쩌.면
엉킨 것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저 내가 원하는 인생이 모습이 아니었던 것이다.
엉키지도 않은 삶을 엉켰다고, 풀어야 한다고 붙들었을 나와
싹둑 잘라내지 않은 내가 아프면서도 대견해진다.
내가 풀어낸 실은 조끼의 한 귀퉁이에 있다.
쓰레기통에 갔을 수 있을 한 조각의 실이 조끼의 예쁜 무늬로 남아있듯
내 삶에서 풀어낸 실들도 삶 한 귀퉁이에 예쁘게 수놓아져 있다.
풀어내려고 애써서 고맙고
쉽게 잘라내버리지 않아서 고마워.
그렇게, 애쓴 날 위해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