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이의 마음
크리스마스 겸 송년 모임은 7시였다.
배달 음식이 싫어 소박하더라도 직접 요리를 하기로 했다.
다행히 오늘은 학생들이 일찍 집에 가는 날이라 조퇴를 할 수 있었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채소들을 씻어 채반에 올려두었다.
'물이 쏙쏙 빠져서 뽀송해지겠지.'
전날 만들어둔 소스와 미리 끓여둔 육수를 맛보는데 뭔가 부족했다.
맹숭맹숭하여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맛. 맛이라고 하기에도 뭐 한 맛에 당황하여 배달을 시켜야 하나 고민했다.
'그냥 배달할까. 준비한 재료들은 나 혼자 2주 정도면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다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음식 맛은 별로였지만 웃으며 수다를 떨던 기억이 떠올랐다. 따뜻했었다.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과 손님들의 너그러운 마음을 기대하며 소스와 육수에 이것저것 추가하고는 물기가 빠진 야채를 쟁반에 예쁘게 담았다.
대충 준비를 마친 후 시계를 보니 손님들이 오기까지 4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어제 청소했지만, 잠깐 사이에 떨어진 머리카락들이 곳곳에 보였다. 즐겨 듣는 콘텐츠를 틀고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예쁘게 꾸며진 집을 자랑하고 싶기보다는 이들이 좀 더 환영받는다고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 누군가 나를 위해 집을 정리하고 꾸미고 음식을 준비했다고 생각하면 고맙지 않은가? 나는 그랬다. 그런 마음을 담은 청소는 꽤나 즐거웠다.
이곳저곳. 눈에 보이는 곳곳들을 정리하고 닦았음에도 5시였다.
소파에 앉아 오디오북을 틀고 뜨개질을 했다. 빨리 왔으면 하는 설레는 마음과 열심히 준비했지만 부족한 것 같은 마음이 교차했다. 한참이 지난 것 같아 시계를 보니 5시 20분이었다. 왠지 모를 긴장과 지루함이 뒤섞여 스마트폰을 열었다. 한 친구가 남긴 ‘7시에 만납시다.’라는 문구 뒤로 아무런 대화가 없었다.
‘다들 일하고 있겠지. 혹시나 피곤하거나 아픈 사람은 없으려나. 주차할 곳은 있겠지.’
손님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보고 싶은 마음이 잔잔히 올라왔다.
의자에 앉아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송년회를 준비하며 보고 싶은 이들을 기다리는 마음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 소설을 주문한 후 기다리는 마음
사랑하는 연인에게 준비한 선물을 들고 카페 문을 바라보는 마음
눈사람을 만들기 위해 창문에 매달려 눈이 쌓이기를 바라는 아이의 마음
이들에게 기다림은 설렘이겠지. 그 설렘으로 마음이 몽글몽글해질 것이다.
기다림의 시간은 아름다운 상상으로, 차오르는 따뜻함으로 충만할 것이다.
마침내 기다리던 것이 내 앞에 도착했을 때, 봄 햇살처럼 눈부신 기쁨을 온몸으로 표현할 것이다.
부푼 마음. (마음이 부푼다고 맨 처음 말한 사람은 아마, 시인일 것이다.) 설렘으로 가득 차 부풀어지는 마음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는데, 나는 무엇인가에 기대하고 설레는 것을 충만히 느끼고 있을까.
나는 설레는 기다림을 오롯이 느끼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다. 새로운 사람들이나 새로운 일터를 마주하기 전, 설렘이었는지 긴장이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해외여행을 가거나 단기 선교를 가기 전에도 설렌 적은 없었다. 마음이 부풀다가 실망할 것이 두려워, 풍선에 바람을 빼듯 살금살금 희망과 설렘을 빼냈을 수도 있겠지. 40년을 살면서 무수히 기대했고 무수히 실망했을 테니까. 그래서 삶의 일부 영역에서는 기대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을 수도 있다.
(물론, 가서 아름다운 풍경을 볼 때나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감탄한다.)
어쩌면 태생이 기대도 없고 실망도 없는 무던한 사람일 수도 있다. 심리검사 결과를 보면 새로운 것을 추구하지도, 새로운 것에 불안하지도 않은 사람이다. 원하는 것이 없으니 실망도 하지 않고, 익숙하든 새로운 것이든 감정이 크게 요동하지 않는다.
초등학교를 4곳을 다녔다. 이것이 특정한 것에 감정을 싣지 않고 정을 주지 않게 된 이유가 될 수도 있겠지. 변화가 익숙하고 만남과 헤어짐도 익숙하니 설렘도 아쉬움도 '그닥' 이라고 말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좋아하는 것을 대할 때는 기쁘고 이별은 슬프다. 조금 무던할 뿐이다.)
그러다 조카가 설렘의 기다림을 충만히 누리는 것을 보며, 실망이 두렵더라도 혹은 기질과 성격 때문일지라도 부푼 마음을 온전히 바라보고 좀 더 세게 안아주고 싶었다. 잔잔하게 찾아오는 기다림을 설레발치면서, 호들갑 떨면서 맞으면 기다림의 시간이 더 기분 좋아지겠지.
또 다른 기다림에 대해 생각했다.
새벽 2시, 연락도 없는 중학생 아들을 기다리는 마음
면접을 보고 결과를 기다리는 고3 수험생과 취준생의 마음
죽은 아들을 가해한 사람의 심판 결과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
갑자기 쓰러진 아버지를 응급차에 태우고 어디라도 좋으니 받아주기를 기도하는 마음
결코 맞이하고 싶지 않은 기다림도 있다. 기다리는 시간이 아프고 슬프고 화가 나고 불안하여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을 것이다. 잠을 청해도 뒤척이게 되고, 한숨과 함께 바라보는 달력과 시계가 원망스럽기도 할 것이다. 다시 되돌릴 수 없음을 알기에 후회가 차오를 것이다. 너무 빨리 흐르기에 야속하기도 하고 너무 늦게 흐르기에 답답하기도 할 것이다.
애간장이 녹고 애달픈 마음. 간이 녹아내리는 시간을 견뎌낸 사람들의 마음은 얼마나 단단할까. 어떤 폭풍우가 와도 흔들리지 않겠지. 아픈 기다림을 인내한 사람들은 성찰하고 성숙해지니까.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니까. 아픔도 시간이 지나면서 무뎌지거나 견뎌지는 것을 경험했으니까.
떠올리기 싫은 10년의 시간. 나는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뎠을까. 차라리 죽으면 편할 텐데라는 생각을 했고, 내 아픔보다 가족의 한숨이 더 아팠으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의연하고 긍정적인 사람인 척, 믿음으로 이겨내는 사람인 척 웃어냈던 시간을 보낸 후 성찰하고 성숙해졌을까.
그 시간을 보내며 '꿈'을 이루는 것보다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나의 노력이 빛나고 값진 것임을 알았다. '무엇'이 되기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내가 꾼 꿈이 어쩌면 나의 것이 아닐지도 모르며, 내가 생각한 내 모습이 생각보다 작을지도 모르며, 조금은 보잘것없는 나를 여전히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 여길 수 있었다. 작은 일이라도 주어진 것에 감사할 수 있었고, 무시했던 사람들과 직업들을 귀하게 볼 수 있었다. 이기적이고 교만하고 개인주의적인 나를 겸손하고, 보이지 않지만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였다.
고통스러운 기다림을 지나는 동안 나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종교는 나 혼자가 아닌 기댈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고 말해주었고, 고난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며 필요한 시간이라는 것, 그리고 끝이 있다고 말해주었고 나는 그것을 붙들었다. 심리와 상담을 공부하며 가족관계, 삶과 경험, 성격과 기질 등 나를 깊이 이해할 수 있었고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수용하며 고통과 함께 살아내는 나와 너에게 찬사를 보낼 수 있었다.
기다림에 대한 생각을 마치고 시계를 보았으나 아직도 6시였다.
시간이라는 틀 안에 살기에 기다림은 필연적이다.
시간의 세계 속에서 필연적인, 1시간이란 기다림을 나는 부푼 마음으로 기다리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