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을 하고, 소파에 앉아서 뉴스를 보며 뜨개질을 한다. 하루 중 가장 평안한 시간이다.
오늘도 저녁을 먹고, 성경을 읽은 후 짧게 기도를 하고 뜨개질을 시작했다. 그런데 현관문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뉴스에서 나오는 소리는 아니었다.
뭐, 그냥 '소리'라 생각하고 다시 뜨개질을 했다.
-타닥-
현관문 밖에서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분명하게 들리는 타닥소리.
하고 있던 뜨개질을 멈춘 후 소리에 집중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다시 뉴스에 집중했다. 추워진 날씨 탓에 옷이 두꺼워진 시민들의 인터뷰를 보며 내일 무슨 옷을 입을지 생각했다.
-탁, 탁탁, 탁-
아까보다 커진 소리가 멈췄다가 다시 들리기를 반복했다. 하고 있던 뜨개질을 내려놓았다. 택배 수레 소리 말고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조용한 아파트에서 분명하게 들리는 낯선 소리는 나를 긴장시켰다.
'낙엽이 바람에 날려 부딪혔나보다.' 라고 안심시키며 뉴스로 시선을 돌렸고, 멈췄던 뜨개질을 들어 코수를 세었다. '하나, 둘....열셋, 열넷'
-타닷 탁............. 탁탁................타닥...........탁탁-
어떨 때는 살짝, 또 어떨 때는 좀더 크게 들리는 불규칙한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소리에 신경을 끄기로 했지만, 나의 신경은 온통 소리에 집중되었다. 시사와 정치뉴스는 지나가고 스포츠 경기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언제 스포츠뉴스로 넘어갔지?" 거슬리는 소리 때문에 생각과 마음은 문 밖을 향해있었고, 시민의 인터뷰 뒤로 무슨 내용이 나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문 밖에 누가 있나?"
마침 혼자 사는 사람의 집을 노린 범죄에 대한 기사가 떠올랐다.
-똑똑-
문 밖에 누가 있는 것이 틀림 없다. 늦은 저녁에 누가 문 밖에 서있는거지. 갑자기 무서워졌다. 왜 우리집 앞에 서 있는 거지. 지금 나 혼자 있는 걸 알고 있나. 아빠한테 전화를 해야하나.
평소 겁이 없는 나였지만, 불규칙적이게 들리는 낯선 소리와 마침 떠오른 범죄 기사로 인해 평안했던 마음은 점점 굳어졌다.
인터폰 화면을 켜봤지만 밖은 깜깜했고 아무도 없었다. 불규칙하게 들리는 소리도 더이상 들리지 않았다.
긴장했던 마음은 사그라들었고, 물을 마시러 정수기를 향해 가는데
-쿵. 쿠쿵 쿵-
거침 없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온 몸의 털이 솟았다.
나는, 확인하기로 결정했다.
"누구세요?" 라고 소리쳤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현관문 안전고리를 걸고 문을 열었다.
마음의 결정을 하고 문열 여는데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허탈할 수가.
' 허, 참'
벽면에 붙어있는 '고작' 전단지가 '고작' 바람에 날려 부딪히는 소리였다니. 안도감과 함께 헛 웃음이 나오면서, 문 밖에 붙어있던 전단지를 떼어 분리수거 통에 버렸다.
마음은 참 가볍고 요상스럽다.
종이가 벽에 부딪히는 아주 작은 소리를 마치 사람이 문 두드리는 소리처럼 커지게 만들기도 하고, 두려웠던 소리가 작은 종이였음을 확인하는 순간 금세 평온을 찾게 한다.
불규칙함과 낯섬이 여행지의 호기심과 설레임으로 느껴질 때도 있지만 누군가 나를 위협할 것 같은 불안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뉴스를 보며 뜨개질을 하고 있지만 아니, 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정작 별것 아닌 소리에 집중하여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도 마음이다.
마음은 참 복잡하다.
범죄에 대한 생각 때문에 무서워지고 몸이 긴장했는지, 아니면 낯선 소리가 들려 몸이 긴장하고 불안해져서 무서운 생각이 들었는지 알 수 없다. 무엇이 선이고 후인지 모르지만, 몸과 생각과 감정이 한데 어우러진 결과값을 우리는 마음이라 표현한다. 원인과 결과, 선과 후가 뒤섞인 엉킨 실타래 같은 마음 때문에 삶이 복잡해질 때가 많다.
복잡 미묘한 마음을 잠재울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확인' 하는 것이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추측' 대신 확인해야 한다. 두려움을 느끼던 순간 문을 열어 확인하지 않았다면 나는 밤새 불안해하며 잠도 제대로 못잤을 것이고, 다음 날 출근을 위해 문 밖을 나설 때 비로소 밤 새 두려워했던 것이 종이였음을 알게 될 것이다.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답을 하지 않는 침묵이 길어지면 '바쁜가? 내가 말 실수를 했나? 화가 났나?'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관계가 무너질까 두려워한다. '아니, 읽었으면 답을 해야지. 예의가 없네?' 라며 상대를 탓하기도 한다. 소중한 관계일 때나 이 상황을 그냥 넘기기 어려울 때는 '확인'할 필요도 있다.
"갑자기 답을 안해서 무슨 일이 있나 걱정돼서 전화해봤어."
"아, 가스관 검침을 하러 왔지 뭐야."
이렇게 간단히 해결되는 문제는 확인해야 한다.
(뭐, 전화를 안받고 콜백도 없으면 그냥 끝 내면 되는 거지!! 흥칫뿡!!)
내가 두려워 한 것은, 결론적으로 말하면 '종이' 였지만 그 끝에는 '안전의 파괴'가 있다.
인간의 두려움은 대부분 '안전'과 관련되어 있다. 특정 사건이 현재나 미래의 안전을 파괴할 것이라 인식될 경우 즉, 위험하다고 인식되어질 경우 우리의 뇌는 투쟁-도피반응을 보인다. 불규칙적인 소리가 나를 위협하는 범죄의 소리로 인식된 순간 온 몸에 털이 솟은 것 처럼 말이다.
만약, 예기치 못한 상황이 두려움이 아닌 흥미로움과 흥분됨이라면 그것은 생명이나 안전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혹여 참을 수 있는 불안함과 긴장이라면, 불편한 상황이지만 내 안전을 크게 위협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일것이다.
'생각'에 영향을 주는 것의 대부분은 경험과 관련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다양한 것을 경험할 수록 '별거 아니야'라고 넘기게 되는 것들이 많아지고, '시간이 흐르면 해결되더라' 가 된다. 크고 무거워보인 것들이 작고 별거 아님을 아는 것이 인생이 내게 준 최고의 선물이다.
성적, 대학, 안정적인 직장, 결혼이 크고 무거웠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 친구의 장례식장에서 반에서 꼴찌였던 친구가 영어유치원 교사로 내 월급의 두배를 받는 것을 보았고, 상담을 공부하면서 50대 아주머니와 함께 임용을 합격했으며, 결혼하지 않은 40대 50대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 것을 보며 큰 산처럼 여겨졌던 것들이 내 안전을 해치지 않는 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들은 '삶'을 살아가며 '확인'한 것들이기에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그 소리가 사람의 소리는 아니었음을 알았을 것이다. 그랬으니 문을 열었겠지.
그렇다면 나는 왜. 내가 만들어낸 두려움을 '실체'로 믿으려고 했을까. 평안을 깨는 각성상태를 즐겼을 지도 모르겠다.
뭐, 전단지였으니 다행이지.
문 밖에 붙어있던 전단지.
두려움 앞에서 '확인'하라고 말해준 전단지를 분리수거 통에 버려버린 것이 갑자기 아쉬워졌다.
헬스장 최초 등록시 할인해준다고 했던 것 같은데. 등록이나 할껄. 괜히 버려버렸네.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