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사는 육지사람의 귀향길.
전주에서 나름 똑똑하다 자부했던 나는 서울에서 16년을 사는 동안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었다. 그저 한강물만큼 많은 보통 사람 중에 하나, 어떻게든 서울에 자리 잡아 성공하고 싶은 어리숙한 지방 아이. 반짝이는 서울의 야경 안에 내 집하나 내 힘으로 마련하지 못하는 그저 일반인. 그냥 그런 사람이 되었다.
그런 나는 제주도에 가서 서울 사람이 되었다. 나도 모르게 아, 제주도는 그렇군요.라는 말을 하고, 왜 여기에는 버거킹이 없는지, 주말에도 여는 쇼핑몰이 없는지에 대해 거리낌 없이 말하는 육지 것이 돼버렸다. 어느 지방이나 타향 사람에겐 상냥하지 않다는 것을 고려하면 제주도가 그리 낯선 이에게 불친절한 곳은 아니다. 낯선 이의 기대치가 서울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불친절한 게 아니라 스스로 불평하는 것이니까.
내가 딱 그렇다.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의 광활함에 숨도 못 쉬었던 19살의 어떤 날도, 맥주 캔 하나 들고 한강 둔치에 앉아 건너편의 반짝이는 저 별빛 하나 가지고 싶다고 칭얼대던 날도, 어떻게든 더 잘해보겠다며 치열하게 사느라 지쳤던 날은 기억나지 않는다. 서울살이가 내게 남긴 육지 사람이라는 흔적은 빡빡한 도시살이가 아니라 편리함과 세련됨에 대한 아쉬움이다. 그러나 서울에 도착하는 순간 깨닫는다. 역시 서울이구나. 바쁜 사람들이 많고 길 위는 꽉 차있고 하늘은 흐린 도시. 그 도시, 서울로 가는 날이다.
비가 오는 아침, 산맥을 넘었다. 서울살이 시절, 가장 좋아하던 장거리 라이딩 코스는 속초였다. 라이더의 성지인 ‘양만장’까지 가는 동안 온 진이 다 빠져버리지만 강원도의 길은 언제나 한결같이 우람하고 하늘은 청명했으며 바람은 시원했다. 서울을 빠져나가는 지옥 같은 라이딩을 견디는 건 곧 강원도라는 기쁨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강원도를 떠나 서울로 간다. 비까지 온다. 조식도 챙겨 먹지 못하는 이른 시간, 주유소도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서늘한 아침이다.
“ 그래도 소나기가 아니야. 완전 상쾌한데.”
“ 이 정도면 달릴만하지. 계속 비가 와도 괜찮겠다. 서울 가서나 멈췄으면 좋겠다.”
눈 앞을 가릴 소나기가 아니라면 괜찮다. 이런 날을 위해 투어링 기어를 마련했으니 옷이 젖을 일이 없다. 신발도 젖지 않는다. 바이크도 비싸지만 안전장비도 만만치 않은 가격이다. 한창 장비 빨을 세울 때 바이크용품이 소비의 기준이었다. 아, 저걸 아끼면 헬멧 하나, 부츠 하나, 아! 저건 앞, 뒤 타이어. 뭐, 이런 식이다. 그럼에도 안전장비에 대한 투자는 아끼지 않는다. 지난 남편의 생일에 선물한 형광 찬란한 투어링 기어가 반짝인다. 월급에 맞먹는 가격이었지만, 오늘처럼 비 오는 날, 그 선택이 탁월했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색에 마음이 한결 놓인다. 물론 기어를 입는 순간 우리는 갑옷을 입은 마냥 전사가 돼버린다.
촉촉한 아침 비는 라이딩에 또 다른 즐거움이라고 서로를 다독이며 오대산으로 내달렸다. 출근시간보다 한참 앞섰기에 도로는 텅 비어있다. 오대산에 들어서자마자 산을 에워싼 구름이 길까지 내려앉았다. 펜션의 불빛이 열심히 반짝거리지만 도통 차도, 사람도 없다. 이제 진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높이 올라갈수록 구름 속으로 깊이 들어가고 있었다. 분명 내가 경험했던 길이 맞을 텐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겁이 나는 순간 몸이 굳어버릴 것이다. 미끄러지는 바이크의 엔진 소리만이 산속에 가득 차고 헬멧 속은 고요하다. 나의 작은 숨소리 하나가 그의 마음을 흔들어놓을까 숨마저도 조심스레 핸들을 잡은 손도 조심스레 쥐었다 놓는다. 빗소리만 맴도는 그 시각, 기계적으로 기어를 풀고 브레이크를 잡고 다시 스로틀을 당긴다. 자연스럽게 몸의 무게 중심을 길을 따라 바꾼다. 혹시라도 튀어나갈까 싶어 속도를 늦추고 남편 뒤로 간격을 더 벌려놓는다. 산세가 아름다운 그 길이 구름에 완전히 잠겨버리자 남편의 바이크의 불빛만이 내 유일한 등대가 된다. 저 불빛 따라 천천히 가는 거야. 겁먹을 것도 없잖아. 언제나 그렇듯, 그를 따라 나는 달린다. 그렇게 우리는 나란히 구름 속을 달렸다.
22살, 배낭여행을 앞두고 사진기를 챙기는 내게 글을 참 잘 썼던 언니가 말했다.
사진기처럼 찰칵, 이제 너만 보는 유일한 사진 한 장이 생긴 거야.
가만히 눈을 깜박인다. 이 무섭고 위험한 구름 속 길을 미끄러지듯 달리는 우리를 찍는다. 이윽고 가장 높은 지점에 올랐다. 이제는 더 위험한 내리막이 시작되지만 서서히 구름이 옅어진다. 순식간에 다시 평지로 돌아온다. 꿈을 꾼 것일까. 꿈같은 라이딩이다.
서울까지 가는 길의 1/4을 지났지만 큰 고비를 넘긴 기분이다. 비는 계속 내리지만 저 멀리 파란 하늘이 회색 구름 사이로 빼꼼 드러난다. 도시에서라면 생각할 수 없는 풍경이다. 한 치 앞의 하늘 조차 고개를 번쩍 들어야 볼 수 있는 빌딩 숲에서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다 보면 구름의 색이 아니라 핸드폰의 앱으로 날씨를 알게 된다. 고개를 들지 않아도 하늘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는 것, 지방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매력이다.
구름 사이로 조금 보였던 파란 하늘이 점점 넓어지고 진해지는 사이 익숙한 속초 가는 길로 접어든다. 정확히 말하자면 속초에서 서울로 가는 길이다. 양만장이 속초 가는 길의 참새 방앗간이라면 토마토 휴게소가 돌아오는 길에 인사를 나누던 곳이다. 서울로 들어가지 전에 비에 젖은 방수장갑을 벗고 쉬어가기 위해 토마토 휴게소를 찾았지만 아쉽게도 문이 닫혀 있다. 휴게소와 주유소를 겸한 곳을 찾아 재정비를 한다. 저 멀리 서울 하늘이 보인다. 지나온 길의 먹구름과 달리 밝다. 이때까지만 해도 날씨가 좋은 것에 기쁘기 그지없었다. 서울이 어떤 곳인지를 잊고 있었다.
본격적인 서울 투어를 앞두고 분당에 들러 바이크 정비를 하기로 했다. 일 년을 넘긴 제주도 생활 동안 한 번도 제대로 점검을 받지 못했다. 조금의 이상한 점만 생겨도 점검을 받았기에 이렇게 오랜 기간 바이크를 방치한 것이 처음이다. 덕분에 지난겨울 처음으로 방전을 경험했고, 엔진 오일이 말라버린 걸 도로 위에서 발견했다. 안전하게 유라시아 횡단을 도와준 스크룡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간만의 정비라 이것저것 다 체크하고 타이어를 갈고 브레이크 패드도 바꾸고 휘어버린 사이드 미러도 조정한다. 무려 4시간이 걸렸다. 두카티를 알게 된 후로 가장 도움을 많이 준 정비 팀장님은 어느새 사장님이 되셨다. 두카티 분당의 사장님으로 만난 그는 예전보다 날렵했고 사장님의 포스를 뿜어냈다. 바이크를 타는 사람에게 정비를 잘하는 곳이란 천국과도 같은 곳이다. 특히, 나처럼 타기는 해도 바이크는 몰라요 스타일에겐 꼭 필요한 소중한 장소이다.
정비를 하는 날은 바이크를 세차하는 날이기도 하기에 깔끔하게 새 타이어를 장착한 스크룡은 반짝거렸다. 내 기분마저 반짝반짝.
그러나! 나는 잊고 있었다. 무려 4시간이 지났음을, 추석 전날!! 분당에서 홍대까지 가는 무시무시한 서울의 교통지옥을 말이다. 맑은 날씨도 지옥의 일부였다.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 아래 사이드 박스를 달아 부피가 커진 우리는 꼼짝없이 도로에 갇혔다. 무려 30km에 불과한 그 도로는 두 시간을 소비하게 만들었다. 전혀 즐겁지 않은 지옥이었다. 뜨거운 바이크의 열기에 땀이 흘러내린다. 달리지 못하는 바이크는 덥다. 달리면 안 덥다.
서울은 정말이지 서울다운 라이딩을 선사했다. 십 년 넘게 단골인 홍대 카페에 도착하자마자 헬멧을 벗어던지고 아이스라테를 외쳤다. 익숙한 커피맛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고 편안함이 밀려오자 내게 고향은 이곳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처럼 변하지 않고 그곳에 있었으면 하는 작은 가게들 덕분이다. 함께 하던 이들은 모두 그 때와는 다른 위치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이마저도 사라지면 내 고향은 어디가 될까. 그때쯤이면 제주도가 고향처럼 느껴질까.
지방에서 청소년기를 지냈지만 대학과 직장생활, 젊은 날의 수많은 날들은 이 곳 서울에서 만들어졌다. 고향 같은 서울이지만 결코 고향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제주도로 훌쩍 떠난 거였다. 일 년이 지난 지금 한편으로 그리웠고 아쉬운 서울에 여행자로 돌아왔다. 아름다운 서울 속에 이십 대의 추억이 방울방울 넘쳐난다. 그 추억 속에 함께였던 이들이 보고 싶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