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원한 집, 엄마에게
나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학교가 끝나고 돌아오면 언제나 집에는 모락모락 김이 나는 고구마가 있었어. 그때는 학교 끝나고 과자를 사가는 친구들이 마냥 부러웠었거든? 나는 집에 오면 감자나 고구마 옥수수였고, 가끔 엄마가 사두는 아이스크림마저 나보다 일찍 하교하는 동생들과 치열하게 겨루어야 했으니까. 그래도 내가 돌아오는 집은 늘 복작복작 따뜻했었던 것 같아. 그때는 몰랐지만 자라면서 '하교 시간에 맞춰 따뜻하게 삶아졌던 고구마가 나를 이렇게 따뜻하게 크게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어쩌면 늘 하굣길이 나는 집에 돌아간다기보다 엄마의 품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던 것 같아. 그래서일까. 나는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1911-2010)의 초기 작품 시리즈인 '여성의 집(Femme Masion)'을 보자마자 단번에 엄마가 떠올랐어. 얼굴 대신 집을 우뚝 들고 서 있는 몸을 보면서, 나에게도 엄마는 저렇게 든든한 집이었는데 하면서 말이야.
루이스 부르주아는 리움 미술관 앞의 9M가 넘는 커다란 거미 작품인 마망으로 친숙하잖아. 자신의 삶을 고백적으로 작품에 담아내는 부르주아에게 마망은 그녀의 어린 시절과 엄마에 대한 마음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 같아. 부르주아의 부모님은 카펫을 짜고 수선하는 태피스트리(tapestry) 공장을 운영했었는데 부르주아는 매일 실을 짜는 엄마가 거미와 닮았다고 생각했었데. 몸이 약했던 엄마는 아빠가 일하지 않는 날에도, 아빠의 외도를 알게 되었을 때에도 묵묵히 출근을 하고 실을 뽑으며 일을 했다고 해. 부르주아에게 엄마는 부서질 것처럼 가냘픈 여성이었지만 동시에 가느다란 다리로 단단히 서서 누구보다 크고 단단하게 서서 자신의 알, 새끼를 지켜내는 커다란 거미 같은 존재였나 봐. 약한 몸으로 평생 가정을 지키기 위해 고생하다 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엄마였기에 그녀에게 '엄마'라는 단어의 의미는 더욱이 특별했을 것 같아.
부르주아가 그린 '여성의 집(Femme Maison)' 시리즈는 비교적 초기 작품이야. 마망이 그녀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라면 '여성의 집' 시리즈는 엄마로서의 작가 자신의 초상화였을지도 모르겠어. 세 아이의 엄마였던 부르주아 역시 '엄마'라는 이름 아래 종종 자신의 이름,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지워야 했을꺼야. 우리의 엄마들이 그래왔듯이 이름으로 불리기 보다 누구 누구의 엄마로 더 많이 불렸을테지. 스물 넷, 어리디 어린 나이에 나를 낳은 엄마도 가정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했을까? 혹여 그렇게 얼굴을 덮어 버린 집이 엄마의 숨을 막히게 하진 않았을까.
얼마 전에 엄마가 큰 수술을 했잖아. 다행히 수술이 무사히 끝나 생각보다 일찍 퇴원했는데, 아직 성치도 않은 몸으로 퇴근하는 아빠랑 남동생 밥을 해줘야 한다며 퇴원한 지 이틀도 안 돼서 나물을 무치고 김치를 담그는 얼마가 안쓰러우면서도 얼마나 답답했는지 몰라. “그래도 일하고 왔는데 어떻게 대충해서 먹이니. 아빠가 또 이렇게 나물 하나 무쳐주면 얼마나 맛있게 먹는데” 하는 엄마를 보며, 몇 주쯤은 적당히 시켜 먹거나 찌개 하나에만 먹어도 괜찮은데 힘든 몸으로 왜 자꾸만 일을 벌이나 하고 속상했어. 처음에는 하지 말라고 다그치기만 했었는데, 그렇게 며칠을 엄마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니 그것이 엄마만의 프로의식이었던 것 같아. 그렇게 해야지만 마음이 놓이는 게 '엄마'라는 존재인걸까?
엄마를 생각하며 루이스 부르주아의 '여성의 집'을 바라보면 그녀의 그림 속 여성의 몸이 답답해 보이기 보다 위대하고 숭고하게 느껴져. 엄마이기 때문에 저 무거운 집도 꼿꼿이 들어 올릴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엄마가 있었기에. 그렇게 단단하게 서서 울타리가 되어주었기에. 나는 늘 안전했어.
그래도 엄마. 이제는 엄마 혼자 우뚝 집을 짊어지고 있지 말아줘. 엄마가 애지중지 키워온 덕분에 건강히 자란 우리들이 있잖아. 이제는 집, 가정이 아닌 엄마의 얼굴로만 살았으면 좋겠어. 가끔은 배달음식도 괜찮으니까 어릴적 배우고 싶었던 피아노도 다시 배우고, 아빠랑 여행도 더 자주 다니며 공부한 영어도 마음껏 써먹고 말이야.
언제나 나한테 일찍 결혼해서 너희를 낳은게 정말 큰 행복이라고. 그러니 너도 얼른 시집가서 빨리 아들, 딸 낳으라는 우리엄마. 언제나 따뜻한 집이 되어주는 사랑하는 나의 엄마. 오래 오래 함께 있어줘, 사랑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