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아픔 속에서만 사랑의 깊이를 알게 된다

by 타나



%ED%8A%B8%EB%A0%88%EC%9D%B4%EC%8B%9C%EC%97%90%EB%AF%BC1.png?type=w1 트레이시 에민, <네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은 날 떠나지 말아 줘였어 II> 1999



이별의 아픔 속에서만 사랑의 깊이를 알게 된다 / 조지 엘리엇



영국 소설가 조지 엘리엇은 이렇게 말했죠.

아이러니하게도 뜨거운 사랑을 표현한 그림보다 이별을 다룬 작품을 마주할 때 더 절절한 애정과 마음이 전해지기도 합니다. 사진 속 벌거벗은 여자의 유약한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 작품의 제목 <네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은 제발 날 떠나지 말아 줘였어 II>를 읽는 순간 세상의 모든 외로움이 몰아쳐 옵니다.


처음 본 여자의 살굿빛 등에서 누구보다 빛났을 그와의 첫 만남, 한없이 행복했을 시간, 그리고 마지막 떠나는 그에게 ‘날 버리지 마’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던. 그가 없이는 한없이 연약해져 버린 그녀의 사랑 모두가 스쳐 지나갑니다. 동시에 사진 속에는 세상이 무너질 것 같았던 스무 살 첫 이별을 겪은 내가 앉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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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시 에민의 <네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은 제발 날 떠나지 말아 줘였어>라는 두 개의 사진 작품은 푸른빛 오두막과 함께 전시되었습니다. 1992년 에민은 영국 위스터블(Whitstable) 바닷가의 작은 오두막을 구매하고, 동료이자 연인이었던 매트 콜리쇼(Mat Collishaw)와 여름 휴가를 보냅니다. 하지만 에민이 상상한 달콤한 시간과 달리 콜리쇼는 이 오두막에서 그녀에게 이별을 말합니다.


이별이란 그렇게 나의 속도와 다르게 덜컥 찾아오기도 합니다. 달콤한 여름 휴가를 상상하던 에민과, 같은 시간 이별의 단어들을 조심히 골라냈을 콜리쇼의 온도가 달랐던 것처럼요.


1980년대 말 영국의 현대미술을 이끈 yBa(young British artists)의 멤버인 트레이시 에민(1963~)은 자신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들을 작품 속에 고백적으로 담아냅니다. 그녀가 애인과 머물렀던 오두막은 마치 일기장 한쪽을 부욱 찢어 전시장에 옮겨 놓은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그녀의 작업은 보고 있으면 감정이 휘몰아치는 사춘기 소녀의 일기장을 몰래 훔쳐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솔직하면서도 파격적인 섹슈얼 메시지를 던지는 에민의 작품들은 종종 그녀의 불운한 어린 시절과 연결 지어 해석됩니다. 불륜 연인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열세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엄마의 애인에게 수차례 성폭행을 당하고 가출합니다. 성폭행의 트라우마는 그녀를 꾸준히 괴롭혔고, 홀로 두 번의 낙태 수술과 유산이라는 고통을 겪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작품을 볼 때마다 ‘트레이시 에민’의 이야기가 아닌 평범한 한 여자의 이야기가 들리는 것 같아요. 작품을 통해서 그녀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자신의 감정을 피하지 않고 온전히 마주하기 때문이겠죠.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우리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징그럽게 사랑하고 또 세상이 무너지듯 헤어져 보기도 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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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출신의 개념미술가 펠릭스 곤살레스-토레스(Félix González-Torres) 역시 그의 작업, <무제(완벽한 사랑)>를 통해 이별과 시간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이별 하면 떠오르는 작업 중 제일 좋아하는 작업이기도 해요.


곤살레스-토레스는 전시마다 새로 구매한 시계에 동시에 새 건전지를 넣고, 시간을 맞춰 설치합니다. 같은 시간에서 시작한 시계는 시간이 흐르면서 기계의 필연적 결함에 의해 점점 다른 시간을 가리키고, 결국 어느 하나가 먼저 멈추어 버립니다.


눈치채지 못한 채 먼저 덜컥 멈춰 버린 시계처럼, 이별도 종종 그렇게 소리 없이 덜컥 찾아옵니다.


곤살레스-토레스는 많은 작품을 통해 그의 동성 연인이었던 로스 레이콕(Ross Laycock)과의 이별을 이야기합니다. 유색인종이자 성 소수자였던 그에게 유일한 안식처였던 연인 로스는 1991년 에이즈로 먼저 세상을 떠납니다. 그리고 뒤이어 곤살레스-토레스 역시 1996년, 그의 연인 로스와 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무제(완벽한 사랑)>는 그와 로스를 떼어 놓은 생물학적 시간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바쁘게 움직이는 작품 속 초침을 보고 있으면, 매 순간 미묘하게 달리 흐르고 있는 모든 연인의 시간이 떠오릅니다. 평생을 함께해 온 가족보다도 어쩌면 나를 더 깊이 이해한다고 믿어 온 연인이지만, 눈치채지 못한 어느 순간엔가 우리의 시간은 다르게 흐르기도 합니다.


가장 열렬히 사랑하는 순간에 그는 ‘나는 더는 너를 사랑하지 않아’라는 말을 던지기도 합니다. 지쳐 가는 내 옆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앞만 보고 걸어가는 그의 등을 바라보며. 내가 먼저 이별을 말할 준비를 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가 함께 발을 맞춰 낸 시간이 더욱 소중한 건 아닐까요? 혹시 내가 혼자 성큼성큼 걸어 우리의 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새 조금 멀어지진 않았는지. 오늘은 짝꿍의 발걸음에 귀 기울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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