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즐거움에 집중하기

by 타나

가끔 정신없이 앞만보고 뛰어가다보면, 내가 왜 뛰고있었는지를 잃어버리고 빨리 이 뜀박질을 끝내줄 결승선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에 휩싸일때가 있어요. 요즘은 특히나 더 그런것 같아요.


언제나 좋아하는 것을 선택해왔었는데, 어른이 되고나니, 내가 하는 선택이 철없는 아이같은 아집은 아닐까, 혹은 이 선택이 성과를 낼 수 있을까. 그러다 보니 불안해지고 결국 행복하지도 못했던 것 같아요.


2.jpg 구스타 클림트 <다나에> (1969)


클림트의 <다니에> 는 그렇게 불안해하며 손톱을 뜯고 있는 제게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는 그림이예요. 엄마 뱃속에 있는 태아같은 포즈로 정말 평온한 잠을 자고 있는것 같은 그녀의 얼굴 때문일까요? 그림 속의 그녀는 네 부질 없는 고민들과 명예, 부귀영화도 다 던져버리고 나처럼. 그저 아기처럼 달콤한 꿈을 꾸라고 이야기 하는것 같아요.


오늘도 갑자기 툭,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꿈틀대는 불안이 튀어나올지 모르지만.

관능적이면서도, 가장 순수한 자세로 벌거벗은채로 세상모르게 잠든 그녀처럼,

조금 더 내 안의 본질과 본능, 그리고 오늘의 행복에 충실하며

조금 더 달달한 꿈 속을 헤엄쳐보려고 합니다.






클림트의 <다니에>는 1907년 그리스/로마 신화의 이야기 속의 다니에와 아크리스오스왕의 이야기를

그려낸 작품입니다. 그리스의 왕 아크리스오스는 딸 다니에가 낳은 아들에게 살해당할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신탁을 듣게 됩니다.


가혹한 신탁의 운명을 막아보고자 아크리스오스 왕은 날이 갈수록 아름다워지는 자신의 딸 다니에를 청동탑에 가두어 이 세상의 모든 남자들로부터 격리시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다니에에 관한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나가 제우스의 귀에 닿았고, 황금비로 변신한 제우스는 다니아를 유혹하여 페르세우스라는 사내아이가 태어나게 되죠. 그러나 아크리스오스 왕은 그렇게 모질지는 못한 사람이었나봐요. 손자를 차마 죽이지 못하고, 딸과 아이를 상자에 넣어 멀리 바다로 던지도록 합니다.


그러나 운명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쳤던 아크리스오스 왕은 결국은 신탁대로 손자 페르세우스에게 살해 당하고 맙니다.



클림트의 명화 속 다니에는 자신의 사랑의 결과물인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말 것이라는 비극적인 운명을 가진 여인임에도 비극적이고 슬픈 모습 보다는, 어떤 남성이라도 당장 다가가 그녀의 살결 냄새를 맡고싶을 만큼 탐스러운 여성의 모습을 하고있습니다. 그런 모습이 제게는 오히려 때뭍지 않은 순수함으로 다가오기도 했어요.





신화 속의 이야기 처럼 내게 어떠한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일어날 일이라면 일어나고 말테니.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기보다는 그냥 받아들이고 즐겨볼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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