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그리고 반짝이는 오늘

by 타나


비가와서인지 퇴근 길 버스 밖 풍경이 왠지 우울한것 같은 저녁이네요.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그림 속 죽음의 망령처럼,

찰나의 방심에 틈새를 축축한 비 속의 습기와 함께 비집고 들어오는 우울감.


열심히 달려온것 같은데도 왠지 동료보다 한참 뒤쳐진것 같기도 하고

그림 속 고개 숙인 남녀처럼 그냥 마냥 이불에 머리를 파묻고 잠으로 회피하고 싶기도 해요.


버스 창을 힘 없이 때리는 작은 빗방울처럼

내가 한없이 보잘것 없게 느껴지는 그런 날


그런날 유독 들여다보게 되는 클림트의 <죽음과 삶>



KakaoTalk_Photo_2016-02-12-23-19-09.jpg 구스타브 클림트 <삶과 죽음>, 1911, 177.8x198.1cm


완성까지 8년이 걸렸다는 클림트의 <죽음과 삶>은 좋아하는 수많은 클림트의 그림 중에서도 유독 제가 애정하는 그림 중 하나 입니다. 금색으로 휘감아져있는 클림트의 <키스> 나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같이 화려하거나, <장미가 있는 과수원>, <닯들이 있는 정원> 처럼 마냥 아름답기만한 작업 보다도 어둠 속에서 더 밝고 절실하게 빛나고 있는 화려함을 담은 <죽음과 삶>에 첫 눈에 매료 되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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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구스타브 클림트 <The Kiss>, 1907~1908 / 우: 구스타브 클림트 <Portrait of Adele Bloch Bauer>,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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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구스타브 클림트, <Orchard with Roses>, 1907~1908 / 우: 구스타브 클림트, <Garden with Roosters>, 1917

클림트만의 특유의 다채로운 색깔의 패턴들은 <죽음과 삶> 속 죽음의 사신마저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는데요, 공동묘지가 떠오르는 십자가 옷을 입은 사신은 미소를 띄우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반대편엔 대조적인 따뜻한 색깔 속에 여러사람들이 마치 탑같이 쌓여 있습니다.


그 속에는 어여쁜 여인도 있고 노파도 보입니다. 한 사람의 성장기를 담고있듯 탄생부터 청년기, 그리고 노년의 형상까지 담긴 그림의 끝에는, 모든것을 내려놓은 채 깊은 잠에 빠져든것같은 두 남녀가 보입니다.


8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만큼, 이 그림을 그리며 클림트는 많은 고민을 하고 예술적으로도 많은 위기를 겪었다고 해요. 클림트같은 거장은 고민없이 뚝딱 명작을 만들어 낼것만 같았는데, 그도 역시 오늘의 우리처럼 색을 칠하고, 또 덧칠해보며 누구보다 오래 끈기있게 자신을 다그쳐간 끝에 이런 명화를 탄생시켰나 봅니다.



언젠가 긴 터널 끝에 이 명화처럼 반짝이는 우리가 있길 바라며,

오늘도 한 걸음이라도 소중하다며 나를 다독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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